여가부,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내년 예산 7억4000만원 배정

영상물 삭제, 외부 업체에 의존 안돼

정부, 법적 체계 만들어 관리해야

 

“음란한 동영상 파일을 게시한 혐의가 인정되나, 이후 곧바로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이트를 탈퇴했다. 사이트 측은 탈퇴 회원 정보 확인이 불가능해 정보를 줄 수 없다고 한다. 유포자들을 특정할 단서가 없는 점, 피의자들의 혐의를 입증할 정보 확인이 불가능한 점 등 수사 개시의 실익이 없어 내사종결 하였다.” 

디지털 성폭력 근절 운동 단체인 한국사이버성폭력센터(이하 한사성)가 ‘몰카’ 등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온라인상 유포한 이들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받은 답변이다. “피해자에겐 공권력의 도움이 절실한데, 경찰의 수사 의지는 낮고 분명한 처벌 근거 조항도 없습니다.” 서랑 한사성 대표는 “정부가 나설 문제”라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2000년대 들어 폭증한 새로운 유형의 범죄다. 몰카, 음란물, 몸캠 피싱 등 다양한 형태의 범죄 산업을 형성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영상물에서 신상이 드러난 피해자는 신변과 사회 활동에 위협과 지장을 겪고, 일부는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디지털 성폭력 피해 통계조차 아직 없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명예와 피해 회복을 돕기 위한 사업을 추진한다. 여성가족부는 내년 예산 7억4000여만원을 들여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가칭)’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상담, 수사 지원, 무료 법률 지원, 유포 영상물 삭제와 재유통 여부 모니터링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특히 영상물 삭제 비용 지원 방안이 주목을 받았다. 디지털 성폭력 영상물이 온라인에 한번 퍼지면 개인의 힘만으로는 추적하거나 삭제하기 어렵다. 많은 피해자들이 수백만원을 들여 ‘디지털 장의사’(온라인상 데이터 삭제 전문업체)에 영상물 삭제를 의뢰하는 이유다. 장형경 여가부 권익정책과 사무관은 “디지털 성범죄는 삭제가 중요해서 삭제 서비스 관련 부분을 신규 반영했다”며 “소요 비용은 상상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한 많은 분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겠다. 아직 국회 통과가 남았으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먼저 성폭력상담기관에서 시범 사업을 진행하며 기틀을 잡은 후, 차차 지원 범위를 늘릴 계획이다.

정부 방침은 환영하나, “기업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고 활동가들은 입을 모았다. “국가가 책임지고 디지털 성폭력 영상 삭제를 위한 법적 체계를 만들고 감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기업의 돈벌이에 그칠 수 있어요.” (하예나 DSO 대표) “정부가 외부 업체에 무작정 의존한다면 위험합니다. 비용 책정 기준과 운영·관리 체계가 불투명하고, 관리자의 젠더 감수성이 바닥 수준인 삭제업체가 많아요. 자칫하면 돈 들여 2차 가해만 유발할 수도 있죠.”(서랑 한사성 대표)  

이들은 “만연한 강간문화부터 뿌리 뽑지 않으면 디지털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엄중한 법 집행’은 그 첫걸음이다. 국내에 서버를 둔 웹하드 업체들은 디지털 성폭력 영상물과 음란물의 대표 유통 루트다. 이들을 집중 수사하고 유포자들을 엄벌해 사회적인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한사성 활동가들은 주장했다. “음란물 유포자들이 고작 벌금 30만원을 내고 풀려나는 게 관행입니다. 영상이 재유포되는 한 피해자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재유포자도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해야 합니다. 경찰과 방송통신위원회도 관련 규제를 신설해 면밀한 사후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영상을 재유포하는 개인이나 사업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몰카’ ‘리벤지 포르노’ 등 주요 용어부터 바꾸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나왔다. “흔히 쓰이는 말들이지만, 피해자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반영하지 못하는 2차 가해적 언어라는 비판도 많죠. 저희는 이런 콘텐츠가 ‘야동’ ‘포르노’가 아닌 범죄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용어로 바꿔 쓰자는 제안도 펼칠 계획입니다.”(여파 한사성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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