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서랑과 리아 활동가가 지난달 29일 브런치(brunch.co.kr)에 쓴 글을 동의 하에 게재합니다. 글에 대한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 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한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불법 도촬과 개인 성행위 유출 영상물 범죄에 대한 ‘보험 상품’을 기획 중이라고, 좀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매달 보험비를 내면 나중에 유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영상삭제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의 보험이라고 한다.

 

정신이 멍해졌다. 우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모든 여성은 언제나 유출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 별다른 마케팅 비용도 필요 없이 흥할 것 같다. 장사 아이템 하나는 정말 기깔나게 잘 뽑았다. 그래. 이들은 여자의 공포와 불안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여성 인권단체에 이런 전화를 걸었는지 모르겠다. 기업은 여성을 타깃으로 돈을 벌 건데, 언젠가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가 될 때를 대비해서 보험을 들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여성의 인권을 돈으로 환원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전화를 받은 팀원 분이 화가 난 말투로 대답했다. “피해 영상삭제는 우리 단체가 무료로 지원하고 있으며, 현재 국가 차원에서 대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법 도촬과 영상유출 피해는 명백한 성폭력입니다. 이것이 산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체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겠다고 사이버 성폭력 피해 여성까지 건드릴까. 우리나라의 올해 수출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넘어 껑충 뛰었다는데, 혼자 큰 손실을 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너무 궁금해서 홈페이지의 경영공시 내용을 찾아 읽어 보았다. 굉장한 돈을 쌓아두고 있더라. 사회공헌 활동은 그래 얼마나 했는지 보니 우리 단체 피해자 지원 텀블벅 규모와 비슷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죽는 게 더 빠르겠다.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활동비가 없어서 활동가들이 주말에 알바를 하고, 외주를 뛰고, 다른 곳에서 인턴을 하고, 그렇게 생계를 이어가면서 힘들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 우리가 무료로 영상삭제를 진행하는 동안 너희는 그따위 장사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국가의 지원체계가 미비한 현실 속에서 여성들의 피해는 산업이 되어간다. 범죄자가 불법 도촬 영상을 팔아서 돈을 벌고, 유통 플랫폼 사업자는 그 영상으로 돈을 벌고, 플랫폼에 올라간 영상을 삭제하면서 디지털 장의사가 돈을 벌고…. 그리고 지금 그 고리에 보험사까지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오늘날, 돈은 인권보다 중하다. 너무나도 중요해서 여성 착취의 굴레가 명확히 보임에도 그것을 착취가 아닌 거래라고 우긴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팀원은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본인이 죽는 게 빠르겠다면서.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세상의 구조를 바꿀 자신이 없으니 차라리 죽어서 아무것도 모르기라도 한다면. 아, 그래도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일 못 해. 우리는 여기에 살아서, 전화를 받고 대답을 해야 한다. 피해복구 무료로 진행한다고, 성폭력은 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존재로 살아 있어야 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사이버 공간의 성폭력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입니다. 자세한 정보나 상담을 원한다면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cyber-l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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