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적 혐오 민원 공세 받는

성평등 교육하는 초등교사들

교육청, 교권 보호보다

“시민 정서”라며 교사 탓

페미니즘 교육 보장 위한

연대체 9월에 출범 전망

“교육부, 성평등 교육 적극 지원해야”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이 혐오 민원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교육청은 교권을 보호하기는커녕 “그게 시민 정서”라며 해당 교사의 문제로 치부했다. “교육 내용에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해당 교사에게 해명을 요구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이달 초 여성신문에 자신의 ‘성평등한 성교육’ 수업 내용을 밝힌 대구 지역 A 초등교사(관련기사▶ 1453호 페미니즘 교육이 학교를 구원한다)는 지난 8월 25일부터 집단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A교사의 ‘성평등 교육 원칙’ 중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자신의 소수자성을 커밍아웃할 수 있는 학급이 되도록 계기를 마련할 것”이 시빗거리가 됐다. 국민신문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엔 A교사가 “동성애와 남성혐오를 조장한다” “성교육을 빙자해 잘못된 성 윤리를 가르친다” 등 비난과 파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학교와 대구교육청 측은 8월 25일 A교사를 긴급 면담하고,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을 준수하도록 지도했다. A교사는 교육청에 해당 수업에 관한 경위서를 제출해야 했다.

대구교육청 측은 “(혐오 공격도) 시민 정서”라며 이번 사안을 교사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를 보였다. 대구교육청 김모 장학사는 “(A교사가 교육 목표로 든) ‘성감대와 성적 쾌락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분위기, 나의 섹슈얼리티와 성적지향 찾기’ 등은 누가 봐도 ‘초등학교 성교육에 이런 게 나온다니’ 하고 걱정할 만한 내용이다. 특히 ‘소수자도 커밍아웃할 수 있는 환경’은 성교육 표준안에서 벗어난 내용이다. (A교사를 비난하는) 기사 댓글 보셨냐. 그게 지금 시민 정서다. A교사 보호 차원에서라도 기사를 내리는 게 좋지 않겠냐고 A교사에게 조언했다”라고 말했다.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쏟아진 혐오 민원 공격. ⓒ네이버 뉴스 댓글란 캡처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쏟아진 혐오 민원 공격. ⓒ네이버 뉴스 댓글란 캡처

<여성신문>을 통해 페미니즘 수업 내용을 소개한 경기 지역 B 초등교사도 비슷한 항의를 받았다. 그가 진행한 젠더 고정관념을 깬 동화 함께 읽기, 남녀가 함께 팔씨름 힘겨루기, 서로 다른 옷 입혀보기 등 수업 내용을 두고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뒤섞어 혼란을 야기하고 아이들에게 남성혐오를 가르친다” “이런 교사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없으니 해고하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경기도교육청 측은 “수업 내용엔 문제가 없다”면서도, “B교사가 어느 정도 선까지 가르치는지 사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이모 장학사는 지난 8월 25일 <여성신문>에 “최근 관내 학부모로부터 ‘해당 교사가 내 아들의 담당 교사는 아닐까, 우리 아이가 그런 수업을 받고 극단적으로 남성을 혐오하게 될까 봐 걱정된다. 누구인지 알려 달라’는 민원을 받았다. 기사를 보니 우리 교육청 입장에선 해당 수업 내용에 크게 문제 될 부분이 없다. 가치관 차이의 문제라고 본다”면서도 “그래도 민원에는 응대해야 한다. B교사에게 사실 여부, 어느 선까지 가르치는지 확인했으면 좋겠다”라며 B교사의 연락처를 요청했다.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이 단체 카톡방 등 SNS를 통해 ▲동성애만 비판하지 말고 남성혐오도 섞어라 ▲앞으로 해당 교사는 다시는 교단에 서게 하지 마라 등 페미니즘 지지 교사에 대한 민원 작성 요령을 공유한 정황도 발견됐다. ⓒ제보자 제공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이 단체 카톡방 등 SNS를 통해 ▲동성애만 비판하지 말고 남성혐오도 섞어라 ▲앞으로 해당 교사는 다시는 교단에 서게 하지 마라 등 페미니즘 지지 교사에 대한 민원 작성 요령을 공유한 정황도 발견됐다. ⓒ제보자 제공

이런 민원 공격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전개된 정황도 포착됐다. 최근 SNS에선 보수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단체 카톡방을 통해 △동성애만 비판하지 말고 남성혐오도 섞어라 △앞으로 해당 교사는 다시는 교단에 서게 하지 마라 등 페미니즘 지지 교사에 대한 민원 작성 요령을 공유했음을 보여주는 캡처 파일이 등장해 파문이 일었다. 실제로 대구교육청에 따르면 A교사가 받은 민원의 절반 이상은 서울 등 타 지역 학부모들이 보냈다는데, ‘조직적 민원공격’을 의심케 한다.

 

교사 636명 중 59.2%가 학교에서 여성혐오를 경험했는데, 20대 교사(70.0%)가 특히 높았다. 고등학교(73.6%), 사립학교(71.1%) 순으로 여성혐오가 만연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교조 여성위원회 ‘2017 유·초·중·고등학교 성평등 인식 실태’
교사 636명 중 59.2%가 학교에서 여성혐오를 경험했는데, 20대 교사(70.0%)가 특히 높았다. 고등학교(73.6%), 사립학교(71.1%) 순으로 여성혐오가 만연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교조 여성위원회 ‘2017 유·초·중·고등학교 성평등 인식 실태’

학교 안의 여성혐오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전교조 여성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2017 유·초·중·고등학교 성평등 인식 실태’를 보면, 20~30대 교사 10명중 4명은 ‘학교가 성평등하지 않다’고 느꼈다. 교사 636명 중 약 60%가 학교에서 여성혐오를 경험했으며, 20대 교사의 경우 70%가 여성 혐오 표현을 접했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고등학교(73.6%), 사립학교(71.1%)에서 가장 혐오 표현을 많이 겪었지만, 초등학교 내 여성혐오 경험률(56.5%)도 낮지 않다. 

혐오공격이 계속되면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교사들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반 페미니즘 세력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 교사의 신상을 유포하는 등 인신공격까지 벌이고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서한솔 교사는 “누구나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 위치와 전화번호를 인터넷으로 손쉽게 찾을 수 있다. 학부모라고 우기면 신원확인 절차 없이 모든 모욕적인 말에 응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가 직접 대응하고 싶어도 학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부 학교에선 페미니즘 지지를 둘러싸고 구성원들 간 내부 갈등이 일고 있다. 페미니스트 교사들은 안팎의 긴장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정부가 페미니즘 교육을 보호하고 진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사)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성평등 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라며 “교육부는 각 지자체 교육청과 함께 성평등 교육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초등성평등연구회의 ‘별아’ 교사도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천명했고, 교육청도 이미 성평등 교육 강화를 이야기한 이상 페미니즘 교육은 정당한 명분을 갖춘 교육”이라며 “적극적인 교육 지원과 교권 보호가 함께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안의 소수자 혐오 실태를 파악하고 성평등 교육 확산을 주도해야 할 교육부가, 조직적 혐오 민원 공격에 일일이 응답해야 하는가는 고민할 문제다.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해당 교사나 수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자기 신분조차 밝히지 않는 사람들이 민원을 제기할 때에도 교육청이 응답해야 하는가는 다 함께 고민해볼 문제다. 교육부에 이에 대해 문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교조 여성위는 여성·인권 단체 등과 손잡고 페미니즘 교육 보장을 위한 연대체를 만들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지 알려 여론을 형성하고, 정부에 관련 정책·제도 마련을 요구하며, 교사들을 향한 혐오공격에 대응하고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제안하려 한다. 이번 주에 초동 제안서를 공유하고 곧 기자회견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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