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저녁이 있는 삶, 국가경쟁력
[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저녁이 있는 삶, 국가경쟁력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 승인 2017.08.23 18:36
  • 수정 2017-08-23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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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5시. 퇴근을 위해 직장을 나선다. 산업화 시기에 깔아 놓았던 기차길이 지금은 자전거길이 되어 운동하기 제격이다. 좀 더 일찍 퇴근한 사람들, 퇴직 생활하는 분들은 벌써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에 나선 모습도 보인다.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조깅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어 이제는 더 이상 호기심 거리가 아니다. 

집에 들어가 간단하게 옷을 갈아 입고 조깅을 한다. 물가를 끼고 있는 주택가에서 뛰다 보면 휴가를 온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일찍 퇴근해 요트를 즐기는 사람도 보인다. 저녁에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는 모습이 창가에 비친다. 여유로운 모습들이다. 30분을 달려 도착하니 벌써 6시. 아내와 함께 하루 있었던 이야기들을 식탁에 반찬 삼아 먹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벽시계를 본다. 앗!

오늘 저녁은 시민단체에서 주최하는 정치인과 만남의 시간이 있다. 서둘러 20분 정도 이동한 행사장에는 50여명의 시민들이 벌써 자리를 틀고 있다. 면면을 훑어보니 여성이 30여명, 남성이 20명 정도. 연세가 드신 노인, 만삭인 여성, 젊은 학생, 그리고 중년들이 자리를 잡고 정치인을 기다린다. 오늘은 강연자는 지역정치인이다.

시의회 사회위원장이 지역사회복지 서비스에 대한 정보와 시의 정책을 놓고 시민과 토론하는 자리. 진지한 세미나장은 질문과 답변으로 열기가 가득했고, 시민들이 손을 들면 바로 받아 상세한 정보로 답변에 응한다. 아이들 탁아소, 노인요양원, 치매서비스, 학교시설과 학생 방과후 서비스 등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주제라 그런지 관심과 열기가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이 모임은 정치 집회가 아니다. 스웨덴의 가장 큰 시민교육단체 중 하나인 평생교육시민학교(SV)의 시지부가 주체한 행사다. 세미나 내용이 정당과 관련이 없기에 정치색이 달라도 토론 내용을 한 그릇에 담아 낼 수 있다. 행사장 옆 세미나 교실에도 다른 시민교육 강좌가 있어 강연 후 복도는 붐볐다.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행사 후 집으로 향한다. 아직 백야가 있어 햇빛을 받으며 걷는 기분은 상쾌하다.

스웨덴에는 평생교육시민학교와 같은 중앙단체가 11개 있다. 노동자시민학교, 보수시민학교, 중도시민학교, 기독교시민학교, 마약 및 알코올 퇴치시민학교 등이 있지만 이름과는 달리 정치, 정책, 사상, 종교의 색깔을 빼고 행사를 주체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저녁시간을 활용해 수준 높은 토론강좌를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강사들도 작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시민운동가, 인기 체육인, 담배를 끊은 사람들의 모임회장, 마약과 알코올희생자 가족모임회장, 여행과 문화강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국가와 시에서도 시민교육,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활동하기에 기준심사를 거쳐 지원금을 제공해 준다.

시민교육은 교육의 장이라기 보다 열린 만남의 공간이 되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교육이라는 단어는 피교육자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가볍게, 언제든지, 접근하기 쉬운 곳에서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로 접근하면 시민들이 찾게 된다.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에서 탈정치화는 필수다. 시민교육이 너무 이념화 돼 있으면 양면을 다 볼 수 있는 건전한 시민보다 한 쪽에만 치우쳐 비판하는 반쪽 짜리 시민만 양산된다. 이런 사회는 시민들이 양보와 타협 그리고 관용과 포용을 배우기 보다는 한 쪽 논리의 수성과 상대방의 공격에 필요한 지략만 배우는 우를 범하기 쉽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도 퇴근해 들을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저녁 있는 삶이란 퇴근해 직장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 친구, 다른 시민들과의 생산적 만남이어야 한다.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만 보내거나, 야근으로 퇴근을 못하는 직장문화는 이제 깨어 있는 고용주들이 끊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제규약에 적용되는 노동법으로 시행하고, 위반 시 감당해야 하는 비용을 높게 만들면 대기업도 따를 수 밖에 없게 된다. 중소기업 사업장에서도 야근과 특근 등의 일감을 요구할 때는 미리 고지하고 노동법 기준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한 가지 직시해야 할 점은 노동시간의 효율적 사용과 생산비용의 질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경제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가면서 저녁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된다면 손해는 결국 국민이 보게 된다.경제에 활력이 떨어지게 되면 일자리가 줄어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녁 있는 삶은 국가개혁의 틀로 접근해야 한다. 기업체질개선, 직장문화의 인식변화,시민교육의 내용과 질의 향상, 바른 정책지원 등 한 박자로 맞춰 진행해야 한다.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까운 곳에 좋은 산책로, 자전거길, 공원, 도서관 등과 같은 건전한 공공재, 그리고 탈정치화와 탈이념화된 만남의 장이 많아질 때 마음과 몸이 건강한 민주시민들이 다시 창의적 생산활동에 전념하게 되어 경제생산성과 국가경쟁력을 끌어 올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좋은 시민은 국가를 떠받히는 핵심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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