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차 윈문화포럼] “발목 위 15cm, 여성 무용수 해방시키다”
[제36차 윈문화포럼] “발목 위 15cm, 여성 무용수 해방시키다”
  • 강푸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7.08.22 20:02
  • 수정 2017-08-23 0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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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제36차 윈문화포럼 열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문훈숙의 발레이야기’ 주제로 강연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다나 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다나 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 무용수들이 여전히 길고 치렁치렁한 치마 속에 갇혀있었다면 발레를 천상의 춤으로 격상시키는 자세는 개발되지 못했을 거예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 A홀에서 열린 제36차 윈(WIN) 문화포럼에 연사로 초청돼 ‘문훈숙의 발레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프랑스 출신의 발레리나 마리 카마르고(Marie Camargo·1710~1770년)가 바닥까지 오는 여성 무용수의 치마를 잘라버리지 않았더라면, 발레리나의 격동적이고 다채로운 춤사위를 볼 수 있었을까. 고작 발목 위 15cm였지만 그 길이는 여성 무용수들을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발레복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후 종 모양의 발레 스커트인 로맨틱 튀튀가 탄생했고, 뒤이어 접시 모양처럼 생긴, 무릎 위까지 오는 짧은 스커트인 클래식 튀튀가 탄생했다.

 

마리 카마르고 ⓒWikimedia Commons
마리 카마르고 ⓒWikimedia Commons

문 단장은 “여성이 발이나 발목을 보이는 것을 부도덕하다고 여기던 시대였기 때문에 당시 카마르고의 행위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무대 위에선 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공중에서 양 발을 교차하는 앙트레샤를 4번이나 시도한 것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카마르고가 치마를 자르기 전까지 화려한 점프동작과 발을 이용한 안무는 모두 남성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당시 궁정발레도 남성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발레는 15세기 말 이탈리아 왕실에서 왕실의 권력과 부를 자랑하기 위해 췄던 사교춤에서 시작됐다. 문 단장은 “당시에는 춤추는 행위와 보는 행위가 나뉘어있지 않았다”며 발레를 “왕과 귀족들이 춤추는 무용수들의 몸짓과 감성,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 웅장한 무대장치와 소품 등을 모두 느끼면서 함께 췄던 춤”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발레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딸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1533년 프랑스 앙리2세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에 발레가 전파됐고, ‘발레’라는 용어도 프랑스 궁정에서 처음 사용되며 널리 퍼졌다.

루이14세가 최초의 전문발레학교 ‘프랑스 왕립학교’를 설립하면서 모든 발레자세가 정형화됐다. 따라서 지금도 발레용어는 불어로 통용해 부르고 있다. 학교에서 전문 무용수가 배출되면서 무용수와 관객이 분리됐고, 발레가 대중예술로 발전하게 됐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발레는 때로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문 단장은 “궁정 발레는 국가의 권위와 위엄, 절대적인 권력을 공고히 하고 사회적 갈등을 왕을 중심으로 해결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면서 “또 무도회 중심으로 진행된 궁정 발레는 모든 적대 세력이 화합하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발레가 800년 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계속해서 진화를 통해 발전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마리 카마르고 외에도 발레에 혁신을 일으킨 이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 출신의 발레리나 마리 탈리오니(Marie Taglioni)다. 당시 발레리나들은 키가 작고 통통해 돌고 뛰는 동작들을 주로 선보였다. 반대로 탈리오니는 지금의 발레리나들처럼 길고 호리호리했다. 그렇다보니 돌고 뛰는 동작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발레지도교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탈리오니만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가락과 다리를 훈련시켜 그녀를 발끝위에 올라서게 했다.

문 단장은 “당시에는 토 슈즈가 개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올라섰다가 바로 내려오는 것에 불과했지만 탈리오니의 동작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이로써 그녀는 발가락 끝으로 수직이 되게 서는 ‘쒸르 레 뿌엥뜨’ 동작을 최초로 선보인 무용수가 됐다.

발레 슈즈도 변천사를 거쳤다. 궁정시대만 해도 발레리나들은 굽이 달린 하이힐을 신고 춤을 췄다. 그러다 다양한 발레 동작이 개발되면서 굽이 다리에 걸리며 방해가 됐고, 굽을 떼어낸 신발이 탄생했다. 이어 발끝으로 올라서는 안무가 개발되며 토 슈즈가 탄생하게 됐다. 

 

마리 탈리오니 ⓒWikimedia Commons
마리 탈리오니 ⓒWikimedia Commons

발레는 영화와 예능프로그램 등 미디어를 통해 한층 친숙한 예술로 대중 곁에 다가서고 있다. 영화 ‘블랙 스완’(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마오의 라스트 댄서’, ‘댄서’ 등을 비롯해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tvN ‘댄싱나인’ 등이 그 예다.

문 단장은 발레가 육체 가꾸기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며 정신건강에도 이롭다고 말했다. 발레를 취미로 배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발레는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예술이 아니라고도 했다. 또 그는 “영국의 잉글리쉬 내셔널 발레단은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과 협력해 발레를 통해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며 “발레의 움직임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발레가 단순히 무대 위의 공연을 넘어 우리 일상에 필요한 생활예술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 단장은 “발레는 곧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발레는 인간의 몸을 가장 이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예술이에요. 남성 무용수들은 중력을 벗어나 하늘을 향해 높이 뛰어야 하고, 여성 무용수들은 하늘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듯이 몸을 길게 늘이고 발끝 위에 올라서서 춤을 추기 때문에 발레를 우리는 ‘천상의 춤’이라고 부르죠.”

 

지난 1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 A홀에서 제36차 윈(WIN) 문화포럼이 열렸다. 이날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문훈숙의 발레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 A홀에서 제36차 윈(WIN) 문화포럼이 열렸다. 이날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문훈숙의 발레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 단장은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멤버이자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으며, 이후 동양인 최초로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객원 주역을 맡아 활약했다. 제31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공연단체 최초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화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밖에도 제36회 세종문화상, 제7회 여성문화인상, 제1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등을 받았다. 39세에 은퇴한 뒤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는 문 단장은 발레를 어려워하는 대중을 위해 발레 문턱을 낮춰 많은 이들이 발레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은 유연선 우리의료재단 ‘건강한우리’ 대표 사회로 진행됐다. 윈문화포럼은 여성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모임으로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하며, 격월로 명사를 초청해 포럼을 열고 있다.

제37차 윈문화포럼은 오는 10월 19일 오전 11시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 A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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