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곡리 한 산란계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들이 폐기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7일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곡리 한 산란계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들이 폐기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친환경에도 살충제 검출, 엄마들 ‘좌불안석’

마트 검수한 계란은 괜찮나, 계란 든 분유는?

육아 카페 등 온라인에 관련 게시글 쏟아져  

“정부 못믿어”...축산물품질평가원 접속 불가

‘엄마들이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1년 넘게 무기력하게 대응해온 정부당국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계란 조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축산물품질평가원 사이트는 방문자가 폭주해 접속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살충제 계란’ 생산 농가가 무더기로 추가된 17일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각종 인터넷 카페에는 계란의 안전성을 따지는 엄마들의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고 있다.

한 글쓴이는 “아기가 이제 13개월인데 밥을 잘 안 먹는다. 그나마 계란 반찬을 해주면 잘 먹어 하루 2끼 정도 계란 요리를 해줬다. 살충제 계란 사건이 터지고 나서 계란 없이 밥을 먹이기 너무 힘들다. 마트에서 검수된 계란을 사긴 했는데 먹여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며 “혹시 아이에게 계란을 주시는 분들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17일 네이버 육아 정보 카페에는 살충제 계란 파동과 관련 의견을 묻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캡처
17일 네이버 육아 정보 카페에는 살충제 계란 파동과 관련 의견을 묻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캡처

대전에 사는 초등 4학년 엄마라고 밝힌 박윤수 씨는 “매번 먹거리 파동이 날 때마다 정말 화가 난다”며 “아이가 있는 집은 거의 매일 같이 계란을 쓰는데 살충제가 들어 있다니 도대체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다. 전수조사를 확실히 해 먹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명백하게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평택에 사는 3세 남아를 둔 김윤진 씨는 “계란은 매일 섭취하는 일상 식품인데다가 아이가 잘 먹어서 늘 반찬으로 해줬고 과자나 토스트 등 계란이 들어간 간식도 자주 먹였는데 괜찮은건지 모르겠다”면서 걱정했다. 검출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계란프라이를 하거나 높은 온도로 요리를 해도 검출된다고 하니 더 걱정된다는 것이다.

일부 카페에는 계란이 함유된 분유를 먹여도 되느냐는 질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다. “지금 먹이고 있는 분유에 적합판정을 받은 계란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찜찜하다. 분유를 바꿔야할지 고민”이라는 글에 “오늘 당장 바꿀 것” “계란성분 든 분유 먹이는 엄마들 걱정이 많겠다”, “계란 성분이 없는 분유 제품을 추천해 달라”는 답변을 올리면서 서로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분유 업체들은 사전에 유해성 검사를 실시해 안전하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안내를 하지 않고 있다.

 

살충제 계란으로 판명이 난 농장코드 ‘13정화’ ⓒ식약처
살충제 계란으로 판명이 난 농장코드 ‘13정화’ ⓒ식약처

살충제 계란이 친환경 제품에서 나왔다는 점에도 엄마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전수검사 대상 1239곳에 포함된 친환경 농가 683곳 중 살충제나 농약이 조금이라도 검출된 곳은 62곳이었다. 특히 이 중 살충제 성분이 과다 검출돼 ‘친환경’ 마크를 뗀 채 일반 계란으로도 유통할 수 없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가는 27곳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15농가), 충남(5농가), 경남(3농가), 경북(1농가), 전남(1농가), 광주(1농가), 강원(1농가) 등으로 사실상 전국에서 검출됐다.

정부의 늑장 대응도 엄마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사태 조사 과정에서 최근 3년간 농약 잔류 검사가 단 한건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지난해 살충제 계란 파문으로 유럽이 뒤집혔을 때도 정부는 문제의 네덜란드산 계란이 수입되지 않아 괜찮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초 조류독감(AI)으로 계란파동을 겪은 지 반년 만에 또다시 살충제 계란 파동이 발생한 점도 한몫했다.

녹색당은 축산과 소비 시스템 변화를 통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올해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면서 “그동안 무항생제인증 농가를 제외한 일반양계농가에 대해서는 농약성 물질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사각지대는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며 “지금의 공장식 감금틀과 공장식 축산방식을 그대로 둔 채로는 대책을 논하기 어렵다. 대규모 공장식축산을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전환하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녹색당은 촉구했다.

이번에 달걀에서 검출된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은 1993년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농가에서 곤충이나 진드기를 잡는 데 쓰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장기간 반복적으로 섭취 시 두통·감각이상·장기 손상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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