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2주년을 맞은 8월 15일 안동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경북에서는 군위, 포항, 상주에 이어 4번째이다.

‘안동평화의소녀상’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는 모습이 다르다. ‘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일제식민지배의 폭력성과 반인권성을 기억하고, 가슴 아픈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자는 마음을 담은 ‘소녀상’을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뜻을 안동미술협회에 전달했고 미협회원들은 그 뜻을 담아 고증을 거쳐 청동 좌상의 소녀상을 만들었다. 모금에 참여한 시민 1773명의 이름도 새겼다. 모금액은 55,724천원으로 책정한 예산 6000만원에 모자랐지만 안동미협회원들의 재능기부로 비용이 절감됐다.

소녀상은 안동에서 가장 역사적이며 상징적인 공간 웅부공원에 설치됐다. 웅부공원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현재 도단위격인 안동대도호부를 거쳐 경북동북부 17개시군을 관할하던 안동관찰부의 관아가 있던 자리 이자 안동군청이 있던 곳기도 했다. 안동시는 이 터에 영가헌과 대동루 등을 2006년에 복원하였으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광복 72주년을 맞은 8월 15일 안동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경북에서는 군위, 포항, 상주에 이어 4번째이다. 소녀상은 안동에서 가장 역사적이며 상징적인 공간 웅부공원에 설치됐다. ⓒ권은주
광복 72주년을 맞은 8월 15일 안동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경북에서는 군위, 포항, 상주에 이어 4번째이다. 소녀상은 안동에서 가장 역사적이며 상징적인 공간 웅부공원에 설치됐다. ⓒ권은주

권택기추진위공동대표(18대 국회의원)는 “민과 관의 협치로 공간의 상징성, 역사의 상징성을 담아냈다. ‘안동시의 공공조형물관리조례제정’으로 안동평화의소녀상 뿐만 아니라 안동시의 모든 공공조형물이 제도적 뒷받침 아래 체계적으로 관리되게 하고 건립백서발간을 끝으로 해산총회의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표는 “전국에서 독립운동 유공자·자정 순국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매우 뜻깊다”며 “평화의소녀상 건립을 정치적 시각으로 봐서는 절대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역사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바른 역사관과 교육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하는 지금 세대의 의무이자 소명이다. 오늘 세워진 ‘평화의소녀상’이 올바른 역사관을 잡아주게 되길 바란다. 이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이 없는 일본의 그릇된 행태를 알 수 있게 하여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녀상 건립의 의의”라고 덧붙였다.

안동이 고향인 김외한 할머니는 1934년에 태어나 11세에 일본군위안부로 강제동원되었다. 일본북해도에서 위안부생활을 강요받다가 광복후 귀국, 안동에서 살다가 2015년 생을 마감했다. 1998년 남편의 권유로 일본군피해자로 정부에 등록했다. 1922년 안동에서 태어난 김옥선 할머니는 경남으로 이사한 후 15세때 위안부로 강제동원되었다. 대만에서 7년을 보내고 예천에 정착, 2009년에 별세했다. 김옥선할머니는 증언 채록집 ‘내가 어떻게 말을해요. 어무이 가슴에 못 박을라꼬’를 통해 고통스러웠던 세월을 담아냈다. 이복순할머니는 1926년 대구에서 태어나 취업사기로 1943년 자바 등지에서 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다. 귀국 후 대구와 안동에서 생활하다가 2008년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위안부 피해자는 드러난 수보다 훨씬 많다. “돌아갈 곳은 있었지만, 돌아가고 싶었지만 차마 돌아갈 수 없었다”는 김순악 할머니(역사의 증언4. p68) 말 속에 함축된 의미를 되새기며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할머니들의 고난한 삶을 돌아본다.  

안동 평화의 소녀상은 브론즈(청동)로 제작되었다. 가로 1,000mm, 세로1,100mm의 좌상으로 기단부는 가로, 세로 2m의 정사각형 화강석 위에 오석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소녀상 모델은 155cm정도의 키와 52kg정도의 체중을 가진 당시의 평균치인 소녀로 일본에 끌려갔다 돌아올 때의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들을 고증했다. 글씨는 지역 서예가인 남천 장종규가 썼다.

 

경북에서는 4번째로 소녀상이 안동 웅부공원에 세워졌다. 협력과 연대의 의미를 담아 지역의 특성에 맞게 만들어진 안동평화의 소녀상은 안동미술협회와 지역 예술인, 안동시민들이 공동작업으로 제작했다.
경북에서는 4번째로 소녀상이 안동 웅부공원에 세워졌다. 협력과 연대의 의미를 담아 '지역의 특성에 맞게 만들어진 안동평화의 소녀상'은 안동미술협회와 지역 예술인, 안동시민들이 공동작업으로 제작했다. ⓒ안동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고려시대부터 관청이 있었던 웅부공원에 설치된 것은 일제시대때 위안부 공출을 담당했던 자리였을 것으로 추측하며 그때 고향을 떠났던 소녀들이 조국이 광복된지 72년만에 다시 돌아온다는 뜻으을 담았다. 뒤쪽 황금색 그림자와 마천석(오석)의 그림자는 시대를 이어주고 단절을 이어주며, 고향과 그리움을 이어주는 ‘고리’의 의미를 담았다.

소녀상은 고향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 바위 위에 앉아서 고향으로 한걸음에 내달리기 위해 마지막 쉼을 가지는 그리고 이내 달려갈 듯한 모습이다. 소녀의 머리카락은 당시 사진들을 고증하며 여타의 소녀상과 같이 시대와 고향과의 단절을 상징한다. 보자기를 움켜잡은 오른손은 상실에의 두려움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의지를, 보자기는 한(恨), 과거의 기억, 아픔 등을 묶어서 봉인하고 미래의 희망과 돌아갈 고향에의 그리움이 함께 담겨진 삶을 표현했다. 이제 다시는 고향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결단의 의미를 치맛자락을 움켜잡은 왼손에 담았으며 땅바닥을 굳게 내딛은 왼발은 암울했던 과거와 현실을 딛고 일어서려는 강인한 의지를, 뒷꿈치를 든 오른발은 고향으로 하루 빨리 돌아가고자 하는 다급한 심정을 그렸다. 전체적으로 양 발은 일어나 가려고 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발동작으로 미래로의 힘찬 출발을 움직임을 통해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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