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맞아

김숨 작가와의 대화

소설 『한 명』 통해

‘위안부’ 문제 집중 조명

 

11일 서울 용산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문관에서 김숨 작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1일 서울 용산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문관에서 김숨 작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 소설의 제목은 ‘한 명’입니다. ‘위안부’ 피해자가 한 분밖에 생존해있지 않은 세상이 오겠구나. 그 한 분마저도 돌아가시는 날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건 무척이나 슬프고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평균 나이는 어느덧 90.4세입니다. ‘위안부’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존함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존함 위에 새겨진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입니다.”(김숨 작가)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문관에서 소설 『한 명』(2016·현대문학)을 집필한 ‘김숨 작가와의 대화’ 자리가 마련됐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30여명의 독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아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김숨 작가는 ‘부끄러운 고백’을 이야기하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제 외할머니의 이름을 모릅니다. 아무도 제게 제 외할머니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고 제가 외할머니 이름을 알고자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고 외할머니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외할머니는 저의 과거이자 저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외할머니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제 이름을 모른다는 뜻과 같을 것입니다. (…)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선물을 박탈당한 존재들이 저의 외할머니와 김학순 할머니셨습니다. (…) 이 글을 끝마칠 즈음 어머니께 전화를 넣어 외할머니의 출생연도와 존함을 물어봤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의 출생연도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살아계셨으면 백 살이 넘으셨을 거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수백 년 뒤에 태어날 저의 미래의 딸을 부르듯 외할머니의 이름을 불러봤습니다. 양초임이라는 잊혔던, 영원히 잊힐 뻔했던 귀하고 귀한 이름을 불러봤습니다. 한 사람을 기억하는 건 우리 모두를 기억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 『한 명』은 ‘위안부’ 피해자임을 숨긴 채 살아온 주인공이 과거 경험과 싸우며 현재의 ‘나’를 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일제통치 식민지 시대의 피해자의 삶을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 냉정한 어휘, 범접할 수 없는 깊이와 내밀함”으로 그려냈다. 300여개에 달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을 재구성해 리얼리티를 극대화한 소설은 역사의 잔혹성과 내상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날 1시간 반 가량 진행된 작가와의 대담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전쟁에 의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것을 복원하는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한 명』을 집필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중편소설 「뿌리 이야기」(2015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 수상)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고모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로 나온다. 잠깐 등장하지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설 속 인물 중 가장 마음이 갔던 인물인데 그때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억지로 쓸 수 있는 소설은 아니고 인연이 닿아 써져야만 쓸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1년 좀 넘게 지난 후 소설이 써졌고, 「뿌리 이야기」가 인연이 된 것 같다. (…) 나는 새가 창가로 날아들 듯이 소재가 나에게 찾아온다고 생각하는데, 새가 날아들었을 때 그 새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서 그리듯이 글을 쓴다. 인연이 닿은 소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기 때문에 『한 명』이라는 소설도 쓰게 된 것 같다.

-『한 명』을 집필한 이후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도 많은 고민을 거치게 됐다고 했는데,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선 어떤 마음가짐이었나.

조심조심 돌다리 두드리면서 건너가듯 자중했던 것 같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내가 찾아 읽을 수 있는 증언들을 다 찾아 읽도록 노력하고 영상자료들도 찾아보고 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부분들이 있더라. 그래서 『한 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집필 중에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쓰기는 굉장히 외로운 작업이다. 책상 앞에 혼자 앉아 증언들을 읽고 그걸 육화시켜 내 문장으로 펴내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동안 여러 가지 감정에 시달렸다.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혼자 감당해야 했는데 지금은 여러분하고 같이 나누고 있어 특별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숨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숨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 명』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소설 같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옮긴 문장에는 한 분 한 분의 영혼과 기질이 담겨 있었다. 그분들의 어조, 기질, 영혼이 나에게 영감을 주는 순간들을 맛보면서 글을 썼다. 그것이 소설을 계속 쓰게 하는 에너지가 됐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증언들을 내 소설 안으로 끌어올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장들을 가져와 수선한 뒤 소설에 녹여내고 있더라. 할머니들의 증언들을 소설 속으로 끌어오면서 글쓰기의 황홀함을 순간순간 맛봤던 것 같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고 증언을 인용하며 집필했기 때문에 소설이라는 세계와 사실의 중간점을 찾는 게 어려웠을 것 같다.

어려웠다. 외줄타기 하는 심정이었다. 피해자 분들이 생존해 계시고, 또 아주 먼 과거의 일은 아니지 않나. 바로 저희 할머니들에게 벌어졌던 일이다. 그래서 균형을 잡는 게 더 힘들었다. 소설적인 상상력이 사실을 넘어서면 안 되기 때문에 내 상상력을 끊임없이 검열하며 써야 했다.

-‘위안부’ 피해를 밝히고 활동가로서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을 피해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가는 분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김학순 할머니 영상을 본 후 어떤 절박함이 생기더라. ‘할머니들이 정말 한 분도 살아계시지 않는 날이 오겠다’는 생각에. 그런데 ‘피해사실을 밝히지 않은 피해자 분들이 어딘가에 계시지 않을까, 증언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셨으면 그리고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사회를 맡은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왼쪽)와 김숨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회를 맡은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왼쪽)와 김숨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 명’에 담긴 의미는?

한 명은 우리 모두인 것 같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한 명’이다. 한 사람을 잃지 않는 건 우리 모두를 잃지 않는 것이다. 내가 발표한 글뿐만 아니라 피해자분들의 목소리가 담긴 증언집도 함께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소설을 통해서 대중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우리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지가 사실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언론에 많이 보도되면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고유명사 같이 되어버렸다. 나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잘 알고 있는 건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분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끌려갔고 끌려간 분들 중 몇 분이 살아 돌아오셨고, 돌아오셔서 어떻게 왜곡된 일생을 살았는지, 그분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해야 했는지 그리고 그걸 알리기 위해 목소리 내신 분들께서 얼마나 심적 고통을 감당해야 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제대로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숨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숨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작가나 연구자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말의 권력이 증언의 목소리를 압도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걸 제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고 윤리적인 단위도 아니라 어려운 문제일 것 같다.

나도 처음에 김군자 할머니가 겪으신 일들을 글로 읽으면서 ‘할머니께서 과장해서 말하신 것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인간의 일생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읽는 분들이 제가 상상해서 쓴 허구라고 생각할까봐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 각주를 달아 할머니들의 증언을 최대한 보존하고자 노력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작가로서 『제국의 위안부』를 어떻게 봤는지. 

소설을 쓰는 데 영향을 받을까봐 일부러 영화 ‘귀향’도 안 봤다. 마찬가지로 『제국의 위안부』도 읽지 않았다. 그것과 관련해서 논의되는 이야기들, 저자인 박유하 교수가 하신 말씀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두기를 하게 되더라.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집은) 제대로 읽어봤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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