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우발적으로 저질렀다’고

가해자 형량 감경한 재판부

법이 세간의 변화에 무심히

한 자리에 머물러선 안돼

 

 

며칠 전 기자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았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으로 강제로 들어와 못나가게 하고 수 주간의 상해진단서가 나올 정도로 심하게 때린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기자가 전화를 한 이유는 재판에서 피고인의 형을 감경한 사유에 피고인이 피해자를 사랑해 우발적으로 그랬다는 부분 때문이었다.

 

통상 피고인의 자백과 반성은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감경사유가 된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에서 피고인이 반성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고려요인은 피해자의 용서다. 또한 범죄가 우연히 일어난 것인지 계획된 것인지나 실제 있었던 가해의 정도 역시 중요하게 고려된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용서를 받았는지, 용서받지 못했으나 용서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당사자들의 평소의 관계는 어땠는지, 집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어떤지, 피해자를 못나가게 했던 시간이 얼마간이었는지, 재판부가 피고인을 감경한 배경이 무엇인지는 재판기록을 보지 않았으니 정확히 알 도리가 없었다. 기자를 발끈하게 만든 ‘사랑해 우발적으로 저지른’이란 표현이 피해자와 합의가 되었고 피해자가 합의, 즉 용서를 한 것이 이런 사정에 근거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피고인이 주장했을 사랑이란 범행동기를 참작할만한 사정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범행동기가 감경사유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서인지를 말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혹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이런 표현은 괜찮은 걸까? 세간의 시선을 대신해 재판을 지켜보는 기자에게 이런 판결문의 문구가 ‘뭐지?’싶은 표현으로 느껴진 것은 그저 자세한 사정을 모르기 때문이거나 과민함인 걸까?

이 사건의 피고인은 남성이었고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둘의 관계나 성별을 지워놓고 보면 주거침입에 감금, 상해 또는 폭행치상 등의 범죄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고,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건 피해자보다 힘이 강해서였다. 이런 사건의 대개가 가해자는 둘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존재해 이성을 잃을만한 사정이 있었고 다툼이 심해져 우연히 범죄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법이 그에 대한 처벌을 판단할 때 이를 참작한다.

문제는 세간은 법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해 이제는 이것을 참작할만한 사유가 되지 않거나 반대로 가중처벌해야 할 사유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나 데이트폭력 같은 약자를 대상으로 일어나는 폭력이 피해자가 물리적으로 약한 존재이기 때문임을, 세간은 진즉 느끼고 받아들였다. 훈육이든 애정다툼이든 그것이 폭력으로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상대가 힘으로 쉽게 제압이 가능한 약자이기 때문이다. 우발적이란 말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으나 상대방과의 호응에 의해 고조되다보니 또는 정말 우연한 실수로 인해 그 결과가 피해로 이어질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상대방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다보니 힘으로 누르게 되었다는 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폭력은 우발이 아니라 정밀하게 계산된 본능이다. 우발적으로 아동이 훈육하던 부모를 위해하거나 여성이 남성을 두들겨 패기는 쉽지가 않다. 즉 때릴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때릴 수 있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들은 가해자가 뭐라 변명하든 기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사랑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서 일어난다. 법은 아직 모르는데 세간이 먼저 알게 된 비밀쯤 되겠다.

확대해서 적용해보면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최근 발생한 ‘BJ 살해 협박 사건’과 같이 특별한 이유 없이 여성을 향해 벌어진 가혹한 폭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공분하는 이유다. 그래서 성별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건에 비난과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런 사건들도 피고인들은 그 즈음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보니 우발적으로라는 변명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우발이었을까? 그 와중에도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찾고, 그 존재가 온전히 도움을 못 받을 시공간에 놓인 순간 범죄를 저질렀다. 적어도 오늘날 세간에서 규정하는 우발에 해당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법은 세상의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안정성을 추구하는 입장에 있다. 피고인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죄와 벌을 심판하는 일이 순간의 감정에 의해 흔들리는 인민재판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법과 세간의 온도차가 이쯤 되니, 세간이 법을 향해 아우성치고 시끄럽게 구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또한 법의 이름으로 내려진 판결에서 그 문구 하나하나는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무죄의 이유 또는 감경사유나 가중사유로 거론된 것들은 가해자들에게나 피해자들에게나 어떤 지침이 된다. 법의 이름으로 내려지는 판결에서 ‘사랑하다보니 우발적으로’라는 것과 같은 취지의 표현들이 자못 조심스러워야 하는 이유다.

존재의 이유와 책임으로 몸이 무거운 법이 세간의 속도를 따라 하루아침에 변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법이 세간의 변화에 무심하게 한 자리에 머물러있어도 안될 일이다. 세간의 소란스러운 이유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과거를 따라온 법이 현재를 살며 미래를 향해 가는 세간보다 늘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가 온당하다면 묵직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따라야 한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