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행사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행사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가수를 꿈꿨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9) 할머니가 드디어 꿈을 이뤘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는 길 할머니의 맑은 노랫소리가 힘 있게 울려 퍼졌다.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열린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행사에서 길 할머니의 데뷔 무대가 마련됐다. “노래 부르는 게 좋아 어릴 적 늘 노래를 불렀던 소녀 원옥”은 70년이 지나 할머니가 돼서야 꿈의 결실을 맺었다. 평양이 고향이라는 할머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한 많은 대동강’을 노래했다.

“신인 가수 길원옥입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공동대표와 함께 무대에 오른 길 할머니는 수줍게 인사했다.

“기분이 좋아 마음이 흔들흔들하다”는 할머니는 ‘한 많은 대동강’에 이어 굵은 빗줄기를 반주 삼아 ‘남원의 봄 사건’ ‘고향의 봄’을 열창했다.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의 입가에는 내내 잔잔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행사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행사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길 할머니는 앞서 지난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길원옥의 평화’ 음반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할머니의 첫 번째 앨범에는 ‘한 많은 대동강’, ‘아리랑’ ‘뱃노래’ 등 할머니가 평소 즐겨 부르거나 실향민의 아픔을 담은 노래를 비롯해 정기 수요시위에서 매주 불리는 ‘바위처럼’ 등 15곡이 담겼다.

윤 대표는 “할머니가 5년 전부터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희한하게 노래 가사는 하나하나 다 기억하시더라”며 “할머니가 ‘내가 그 때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노래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드린다면 할머니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했다”며 음반을 발표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뜻 있는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음반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행사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행사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날 사회를 맡은 최광기 토크컨설팅 대표는 “할머니가 들려주신 노래들은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삶의 증언이 되고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노래가 될 것”이라면서 “우리가 다시는 되돌아가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평화가 넘실대는, 차별 없는,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 전쟁과 폭력이 사라지고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나라를 꿈꿔본다”고 말했다. 이어 “고 김학순 할머니부터 지금 여기 앉아계신 길원옥 할머니까지 할머니들의 낮은 목소리와 생생한 증언들은 우리의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다.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에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에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행사에서 인명여고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한국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나비문화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행사에서 인명여고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한국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날 행사가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비가 쏟아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남녀노소 하나가 된 시민들은 길 할머니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며 감동을 표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나비문화제는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으로 막을 열었다. 길 할머니의 일생을 담은 시 낭독에 이어, 인명여고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한국무용을 선보였다. 한충은 대금 연주자와 윤주희 해금 연주자의 잔잔한 연주는 할머니들과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한편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인 8월 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로, 2013년부터 정대협 등 민간단체에서 자체적으로 기려온 기림일이다.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날을 국가 공식 기림일로 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