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아시아여성철학자대회

서구에 아시아 철학 알리는

대표적인 여성 철학자

서구 철학은 논리적으로

삶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개인 경험 담은 아시아 철학,

삶의 방법 가르쳐줘

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 보여준 아시아 철학

음양이론은 여성과 남성을

본질적으로 구분 안해

 

로빈 왕 로욜라메리마운트대학교 교수 ⓒ이화 철학연구소
로빈 왕 로욜라메리마운트대학교 교수 ⓒ이화 철학연구소

 

아시아 여성들의 삶은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연구대상이었고 그들이 만든 이론에 기초해 지식으로 생산돼 왔다. 이때 아시아 여성들은 가장 억압받는 존재로, 가족에 집착하는 존재로, 가부장제의 희생자로 그려졌다. 이것으로 아시아 여성들을 임파워(empower)할 수 없다. 아시아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분석할 수 있는 아시아 페미니스트 이론이 요구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난 6~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여성철학자대회는 주목해야 할 움직임이다. 콘퍼런스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국여성철학회 회장 김세서리아 이화여대 교수는 “서구 페미니즘이 여성주의 이론 창출에 기여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제는 동양철학에 기반을 두고 아시아 여성들의 경험을 이론화 할 필요가 있다”고 이번 대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중국, 대만, 일본, 태국, 한국 그리고 서구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여성철학자들이 참여해 각 나라의 페미니스트 역사를 발굴하고 분석하는 발표가 이어졌다. 허라금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철학은 이성을 중심으로 보편적으로 사유하는 학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회철학, 정치학 그리고 윤리학 등에서 남녀 간의 차이가 지워져 버리게 되며 여성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삶의 주제가 철학에서 배제돼 왔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주의는 보편적 이성은 결국 남성들의 경험과 사유방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비판에서 출발한다”며 “여성철학은 여성주의 입장에서 이성 중심의 철학을 비판하고 전통철학에서 배제되고 다루어지지 않았던 중요한 삶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회 첫날 연사로 초대된 로빈 왕(Robin Wang)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교 교수를 만났다. 왕 교수는 ‘음양 중국 사상과 문화 속에 나타난 하늘과 땅의 방식’(Yin yang: The Way of Heaven and Earth in Chinese Thought and Culture)에 관한 연구 등으로 서구에서 아시아 철학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게 아시아 철학의 의미와 페미니즘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 아시아여성철학자대회가 열리게 된 배경은.

“철학이란 지혜에 대한 사랑이고 여성들은 이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여성들이 역사 사회에 어떤 역할과 기여를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난해 오스트리아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여성철학자 대회에서 한국철학자 김혜숙 교수(이화여대 총장)를 만났다. 한국에 ‘여성철학회’가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세계적으로 그런 단체가 있는 나라는 없다. 한국에 여성 철학자들 간의 강한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아시아 여성철학자 대회를 수월하게 열 수 있었다. 나는 한국 여성철학회를 세계에 더 알려야 한다고 본다.

한국 문화나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퍼져있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한국 여성들은 순종적이고 부드러운 여성들이다. 특히 시어머니에 대한 묘사는 끔찍하다. 젊은 여성들은 모두 예쁘게만 그려진다. 이번 콘퍼런스는 한국에 대한 내 생각을 많이 바꾸었다. 한국 여성들이 얼마나 강한가를 알 수 있었다. 마치 북유럽 여성들 같았다. 한국여성철학회가 아시아와 세계 여성들을 위한 이론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 아시아 철학이 페미니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오랫동안 서구 철학 아래 학문적인 훈련을 받았다. 서구 철학은 나에게 논리적으로 삶을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아시아 철학은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예를 들어서 서구 철학자들은 ‘정신’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몸과 정신을 분리하고, 자연과 문화를 분리해 세계를 설명했다. 이때 여성들을 감정적인 존재, 자연에 귀속된 존재 그리고 정신적인 것이 결여된 몸으로 설명했다. 결국 위계적인 관계를 생성하는 이러한 철학은 사람들의 삶과 분리된 설명이다.

나는 중국 철학이 이원론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특히 도교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며 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몸은 서구 철학자들처럼 ‘육신’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정·기·신(精, 氣, 神)이다. 몸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구 철학은 질서, 수학적 패턴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불확실한 세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메를로 뽕띠와 같은 서구 철학자들은 몸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추상적이다. 아시아 철학에서 몸은 일상 속의 몸이다. 개인적 경험과 실용성과 관련된 몸이다. 몸을 통해 세상을 설명해온 아시아 철학은 불확실성을 받아들인다.

도교는 ‘몸을 통해 생각’(Thinking through body)하는 사상이다. 몸에 기반을 두어 ‘음양적 생각’ ‘음양적 지성’ ‘음양적 생활방식’을 보여준다, 서구 철학은 몸이 문젯거리라고 이야기해왔지만 사실상 몸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도전하게 한다. 아시아 철학은 인간이 삶을 초월하고 싶다면 몸을 부인하지 않고 건강한 몸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몸은 신체적 건강함 뿐 아니라 감정, 정신 영혼을 모두 의미한다. 아시아 철학은 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이나 아이를 낳은 도구로 보는 가부장제적 시선을 오랫동안 비판해왔다. 그러나 성형사업이나 새로운 재생산 기술 등은 여전히 여성들을 섹스와 재생산의 도구로 보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프레임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역사와 세상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여성의 몸에 대한 가부장제적 생각을 해체했다. 그러나 이후 어떻게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아시아 철학이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우리가 몸을 대하는데 두 가지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 번째는 우리의 몸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 받아들여야 한다. 여성들에게 남성처럼 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을 때 남성들은 한 순간 정자를 줄 뿐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아홉 달 동안 아이를 길러낸다. 이것은 여성들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무엇인가를 풍요롭게 길러내는 것이 인류가 가진 중요한 측면이 아닌가?

둘째, 우리는 몸을 개발(cultivate)해야 한다. 몸은 정원이고 우리들은 정원사다. 몸을 개발하는 과정은 바로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다. 몸과 관련된 일들을 의미 있게 만들어라. 이것이 몸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하루아침에 위대한 과학자가 되지 않았다. 끊임없는 노력 아래 이뤄지지 않았나? 정원을 가꾸는 것은 힘겨운 과정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많은 것을 길러낸다. 또한 정원에는 물, 햇빛, 흙 등 다양한 것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정원은 다양한 형태가 있다. 몸을 ‘정원’이라고 여길 때, 우리들은 다양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 아시아 철학은 비유적 설명을 많이 사용한다. 사람들은 명확한 표현을 신뢰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과학적 언어를 가지고 세상을 설명해왔다. 그러나 삶이란 얼마나 다양한가? 이제 과학적 언어로 다양한 삶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요리책은 두 가지 방식의 설명이 있다. 어떤 요리책은 재료가 몇 그램 들어가고 등의 과학적 방식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예술적인 요리방식 설명도 있다. 아시아 철학에서 비유는 다양한 삶을 표현하기 위한 방식이다.”

 

-최근 한국에서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이어지면서 여성과 남성 간의 대립적인 긴장이 고조되기도 한다.

“여성혐오 범죄의 저변에는 여성과 남성을 이원론적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여자는 수동적이고 부드러운 장난감이고 남성은 강한 존재라고 여긴다. 이럴 때일수록 여성과 남성 간의 경계를 공고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하다. 여성들의 몸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만들어 내야한다. 남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본질주의적 이분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아시아 철학은 이런 점에 기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도교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조화를 강조한다고 본다. 그러나 잘못된 이해다. 도교사상에서 여성이 때론 남성이 될 수 있고 남성이 여성도 될 수도 있다. 물처럼 흘러가며 여성성과 남성성은 이렇게 상호 변화를 갖는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