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은 여성정책의 분야 아닌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할 비전

비전으로서 성평등 공유할 때

진정한 진보가 탄생할 것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면 성평등은 20대 국정 전략 중 하나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을 추구하기 위하여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5대 국정 목표가 있다. 5대 목표 중 하나로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실현하는 국정 전략 중 ‘노동 존중·성평등을 포함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가 있다. 이 전략 실천을 위한 4개의 국정과제가 나온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인 삶 지원 및 사회적 차별 해소,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이다. 그 중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을 추구하는 주요 정책이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추진, 성평등정책 추진체계 강화, 공공부문 여성 진출 대폭 확대를 위한 5개년 계획 수립·이행’ 등이다.

결국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실현함으로써 차별 없는 공정사회를 만들어 국민이 주인 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실질적 성평등 사회 → 차별없는 공정사회 → 정의로운 국가’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그런데 성평등한 사회가 되면 차별이 사라지고 정의가 바로 서는 국가에서 살 수 있다는 매우 감동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5개년 계획서를 읽으면서 동시에 갖게 되는 씁쓸한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첫째, 언어의 유희, 다른 말로 말장난 같은 내용을 마주보게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에서는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공언했지만, 계획서에서는 성평등위원회 설치 ‘추진’이라고 슬쩍 문구를 바꾸었다. 설치하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추진은 하겠지만 추진하다 안되면 그만이라는 의미일까? 같은 계획서 다른 지면에서는 ‘사회적 차별 해소의 핵심은 다름의 존중과 성평등 사회의 실현에 있으므로…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성평등 문화 확산 노력’이라는 표현이 있다. 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다른 의견이 충돌했었나? 아니면 표현상 실수인가?

둘째, 성평등은 정책적 차원의 전략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비전이 되는 거시적 개념이다. 역사적 발전 단계를 설명할 수 있는 기본 개념 중 하나가 계급이라면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분석틀이 젠더 혹은 젠더에 기초한 지배·피지배 관계다. 계급 차별을 없애는 정도와 그 수단이 무엇이냐를 놓고 이른바 우파와 좌파를 가를 수 있다면, 젠더 차별을 없애는 정도와 그 수단을 놓고도 우파와 좌파를 가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좌파로 규정하는 상당수 집단의 정체성은 우파다. 진보 진영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젠더폭력 문제는 이른바 진보의 수구적 속성을 드러내는 좋은 예다.

계획서에서 밝히고 있는 소통, 투명한 국정운영,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 혁신, 지방자치, 균형발전, 남북화해 등은 성평등 사회로 가는 정책적·기술적 수단일 뿐이다. 성평등은 그러한 수단과 차원을 달리하는 비전이자 추구해야 할 사회의 모습 그 자체다.

일개 부처에 한정해 위원회 좀 만들고 성별임금격차 좁히면서 젠더폭력을 엄하게 처벌하는 정도로 성평등 사회가 되지 않는다. 긴장의 끈을 놓았을 때에도 망언이나 성희롱·성폭력을 일삼는 힘 있는 남성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사회가 되는 과정은 어렵고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성평등에 도달하면 자연스레 다양한 사람들이 주인인 국가가 탄생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정의가 실현되는 대한민국도 가능하다. 성평등은 여성정책의 한 분야가 아니다.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할 비전이다. 비전으로서 성평등을 공유할 때 진정한 진보가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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