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발생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모티브로 삼았다는 영화 ‘토일렛’
기껏해야 1년 된 사건 제대로 된 해석 없이
자극·선정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 소재로 사용
 
“가해자 관점에서 사건 바라보고 살해 정당화,
고인 모욕·사실 왜곡하는 영화 상영해선 안 돼”
SNS서 ‘#토일렛_상영_반대 운동’ 일어 
 

 

이달 개봉 예정인 영화 ‘토일렛’(이상훈 감독)의 상영을 반대하는 해시태그 운동이 온라인상 진행 중이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는데, “여성혐오 범죄를 자극적인 오락거리로 소비해 오히려 2차 가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일 공개된 시놉시스에 따르면, 영화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접근했다가 거부당하자 분노한 남성 2명이 여성들을 미행해 흉기로 위협하고 강간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가 가해자 관점에서 진행되고 범죄 발생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모든 것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 때문이었다’는 영화의 메인카피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5월 17일 일어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은 가해자가 범죄계획을 미리 세우고 여성을 타깃으로 삼아 저지른 사건이다. 가해자인 30대 남성 김모씨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한 주점 건물의 공용화장실에서 범행 대상을 기다리며 남성 7명을 그대로 보낸 후, 처음으로 들어온 생면부지의 여성을 살해했다. 그는 “여자들이 자기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전국적 추모 열기 속에서 이를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누리꾼들은 “‘토일렛’ 시놉시스를 보니 여성혐오 범죄를 자극적인 오락거리로 삼았을 뿐, 실제 성차별이나 여성폭력 문제에 관한 고려나 통찰이 보이질 않는다” “여성폭력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는 영화가 나온다니 사회에 경종은커녕 여성혐오만 부추길 뿐” 등 비판을 쏟아냈다. 또 “사건에 대해 별 생각 없이 포르노로 소비하려고 만든 영화 같다” “폭력을 예술이라고 낭만화하지 말길” “살인사건을 ‘억압과 무시에 대한 복수’로 포장하다니 2차 가해와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 ‘토일렛’의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우 이상훈은 논란이 확산되자 자신의 SNS에 “토일렛은 강남역 사건과는 무관한 영화이고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감싸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SNS 캡처
영화 ‘토일렛’의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우 이상훈은 논란이 확산되자 자신의 SNS에 “토일렛은 강남역 사건과는 무관한 영화이고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감싸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SNS 캡처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이상훈은 논란이 확산되자 자신의 SNS에 “토일렛은 강남역 사건과는 무관한 영화이고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감싸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라며 “영화를 만든 계기도 그런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완벽한 범죄는 없고 범죄자는 결국 그 벌을 받는다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이자 주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홍보자료는 영화를 ‘강남역 여자화장실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충격적 심리 스릴러’라고 소개하고 있다. 영화 제목에서도 강남역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토일렛’ 홍보자료는 영화 ‘토일렛’을 버젓이 ‘강남역 여자화장실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충격적 심리 스릴러’라고 소개하고 있다. ⓒSNS 캡처
‘토일렛’ 홍보자료는 영화 ‘토일렛’을 버젓이 ‘강남역 여자화장실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충격적 심리 스릴러’라고 소개하고 있다. ⓒSNS 캡처

이에 SNS에서는 ‘토일렛 상영 반대’ 해시태그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페미’는 10일 오후 페이스북에 “‘토일렛’ 제작진은 영화 홍보문구가 강남역 살인사건의 여성혐오적 맥락을 부정하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며 “우리는 어떤 경로로든 ‘토일렛’이 상영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많은 누리꾼들도 한 목소리로 감독과 제작진을 비판하고 나섰다. “IPTV, 다운로드 등 다른 경로의 상영도 절대 반대한다” “여성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하고 있는데 누구에겐 고작 스릴러 소재란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SNS에서는 ‘토일렛 상영 반대’ 해시태그 운동을 진행 중이다. ⓒ트위터 캡처
SNS에서는 ‘토일렛 상영 반대’ 해시태그 운동을 진행 중이다. ⓒ트위터 캡처

영화 정보가 공개된 포털사이트의 소개 페이지에도 영화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다. “감독이나 배급사나 제정신이 아니다” “토일렛은 대중에 대한 기만” “별점 1점도 아깝다” “여혐 범죄자를 이해해보라고 만든 영화인 건가? 범죄포르노 상영 좀 금지했으면 좋겠다” “이런 영화를 찍겠다는 감독은 2차 가해자로 유족들에게 고소당해도 할 말 없다” 등이다.

 

11일 오후 2시 네이버 영화 소개 페이지에 ‘토일렛’에 대한 비판과 우려를 표출하는 누리꾼들이 올린 글. ⓒ네이버 영화 소개 페이지 캡처
11일 오후 2시 네이버 영화 소개 페이지에 ‘토일렛’에 대한 비판과 우려를 표출하는 누리꾼들이 올린 글. ⓒ네이버 영화 소개 페이지 캡처

이번 영화에 대해 박우성 영화평론가는 “‘토일렛’은 영화가 아니다. 사건을 접한 후 애도 대신 시나리오 콘셉트가 떠올랐다면, 여성혐오 범죄를 숙고하는 대신 살인범의 표정과 심리에 이끌렸다면 영화로서의 자격은 사라진다”며 “그것은 2차 가해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 영화를 제작했다”는 이 감독의 해명에 대해선 “옹호든 경종이든 진짜 문제는 (강남역 사건을) 문화콘텐츠로 취급하는 저급한 감수성이다. 그것에 착안해 뭘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폭력인 것”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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