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경험 노래한 ‘치유의 전사’

상처를 고백한다는 것은 용기의 다른 이름입니다. 가슴 속 깊이 딱딱하게 굳은 응어리로 남아 있는 아픔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것은 그래서 고난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많은 상처는 풀어냄으로써 치유됩니다. 더불어 나와 똑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에게 하나의 동류의식을 선사합니다. 그것을 통해 연대하고, 상처를 이겨나가며, 이 땅의 폭력과 억압을 고쳐 나가기 위한 힘을 얻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리 에이모스는 위대합니다. 피아노와 감성적인 노래. 이것으로 토리 에이모스는 가부장의 폭력에 상처받은 여성들을 치유하고, 하나로 이어주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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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난 토리 에이모스가 피아노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은 때는 두 살 때였습니다. 이른바 음악영재였던 그는 다섯 살의 나이에 고전음악으로 유명한 볼티모어의 피바디 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음악영재는 켜켜히 쌓인 세월의 부담감이 느껴지는 거장들의 고전음악보다는 도어즈의 사이키델릭함과 존 레넌의 음유시들에 푹 빠지게 됩니다. 결국 당시 유행한 대중음악을 연주하였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자유분방한 토리 에이모스의 음악 역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토리 에이모스는 틈틈히 음악을 만들고 라이브 무대에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1980년에 자신의 본명인 엘렌 에이모스로 첫 번째 싱글 를 발표합니다.

하지만 토리 에이모스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토리로 바꾸고 유명 그룹의 전 멤버들과 함께 만나 ‘Y Kent Tori Read’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면서부터입니다. 1988년에 밴드의 첫 번째 앨범이 나왔지만 대중이나 평론가들로부터는 냉담한 반응 뿐이었습니다.

토리의 재능은 솔로로 전향하면서부터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그의 자작곡이 담긴 데모 테입이 당시 미국 메이저 레코드사였던 아틀란틱 레코드의 사장에게 전달된 것이지요. 그리고 1992년 토리 에이모스의 당당한 솔로 데뷔앨범 가 음악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며 발매됩니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독특한 음악 스타일도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도전적이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한 자기고백적인 가사는 토리 에이모스를 논쟁의 중심으로 불러냈습니다. 문제의 곡은 바로 ‘Me and a Gun’이라는 노래였지요.

이 노래는 자신의 강간 경험을 잔잔하게 고백하는 노래입니다. 데뷔 이전, 음악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토리 에이모스는 무장한 낯선 남성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성폭행을 노래하는 ‘Me and a Gun’의 솔직함은 지나친 선정주의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수많은 여성들이 이 노래를 듣고 토리 에이모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가장 치욕스러울 수도 있을 강간의 경험을 노래로 풀어낸 토리 에이모스의 용기는 같은 상처를 지닌 여성들에게, 아픈 기억과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의 따뜻한 자매애를 일깨워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이후에도 토리 에이모스의 ‘문화운동’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여성문제는 물론 코소보 난민을 위한 자선 사업에 앞장서며, 동료 여성 뮤지션들과 함께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뮤지션으로서의 임무에도 열심입니다.

지난 99년에 발표한 은 토리 에이모스만의 스타일,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이 담긴 명반이라는 평가를 끌어내기도 했으니 말이지요.

김이 혁상 객원기자WEIRDO@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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