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별초등학교 논란은 

“성평등 교육 강화” 외친 

서울시교육청의 방침

구체적으로 보여줄 기회

 

서울의 혁신학교인 위례별 초등학교에는 교사 20여명이 참여하는 페미니즘 동아리가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참여 교사들은 악성 민원과 사이버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닷페이스 영상 캡처
서울의 혁신학교인 위례별 초등학교에는 교사 20여명이 참여하는 페미니즘 동아리가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참여 교사들은 악성 민원과 사이버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닷페이스 영상 캡처

일곱 살 때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는 달마다 생일인 어린이에게 간단한 축하잔치를 열어주었다. 나와 같은 달에 태어난 다른 아이들은 모두 남자였다. 생일잔치 때 남자아이들은 모두 금박 왕관을 썼지만, 나는 유치원의 장난감 족두리를 빌려 쓰고 한복을 입었다. 누군가가 여자애들은 한복을 입는 것이 더 멋지다고 말한 뒤로 유행처럼 그렇게 했다. 잔치의 하이라이트는 장래희망을 노래하는 시간이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OO이 되겠다”고 하면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가 “OO이 되어라”라고 뒤따라 합창하며 꿈이 이루어지기를 빌어줬다. 남자아이들은 과학자 아니면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마지막이 내 차례였다. 과학자라고 하려고 했는데 입에서 느닷없이 “엄마가 되겠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모두들 “너는 엄마가 될 것이다”라고 주술처럼 노래하는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었던 순간이 지금도 기억난다.

초등학생 때는 “유명한 여자 과학자가 있냐”는 짝에게 “무슨 말이냐. 많다. 마리 퀴리와 퀴리부인과 라듐을 발견한 퀴리가 있다”고 대들었던 적이 있다. 「학생과학」이라는 잡지를 구독했는데 구독자명은 남동생이었다. 어쩐지 여자는 과학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회적 암시가 생일날 ‘엄마’라고 내뱉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되어라”고 빌어주던 친구와 선생님의 모습은 오래도록 찜찜하게 남았다. 엄마가 싫다기보다 엄마만 되는 것이 싫었다. 과학자도, 건축가도, 기관사도 되고 싶었는데 어디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런 내 꿈을 제대로 격려해준 사람은 중학교에 입학해서 만난 물상 선생님이었다. 목소리도 쾌활한 이 분은 과학을 좋아하는 것과 성별은 상관없다고 딱 잘라 이야기했다. 나는 상설과학반에 가입했고 선생님과 함께 이것저것 신기한 실험을 했다. 과학자는 아니지만 과학의 재미를 아는 사람이 됐다. 직업을 찾으면서 힘들 때면 물상 선생님의 말을 기억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그만두어야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어린 시절에 페미니즘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삶을 골목에서 빛나는 광장으로 내보내는 일이 될 수 있다. 서울의 혁신학교인 위례별 초등학교에는 교사들 20여명이 참여하는 페미니즘 동아리가 있다. 어린이들은 이 선생님들과 함께 다양하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즐긴다. 이 학교의 사례를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이런 시도는 당연히 교육청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게 될 것이고 연구를 통해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 사안이 기사화되자마자 인터뷰한 교사를 표적으로 한 악성 민원과 사이버 폭력이 쏟아졌으며 해당 학교의 구성원들을 위해 개설된 스쿨톡은 온갖 여성혐오 발언으로 점령당했다. 페미니즘 교육을 실천하려다가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최현희 교사를 지지하기 위한 맞불 민원과 스쿨톡의 지지 댓글이 이어졌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이 공개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소속 교사가 교권을 침해당하고 신변을 위협당하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단순히 민원인의 눈치를 보는 방식으로 이번 사안을 넘겨선 안 된다. 선진적인 교육의 흐름을 가로막고 교사들의 정당한 연구 노력을 굴복시키려는 외부의 폭력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분명한 경고를 보내야 한다. 서울시는 올해 3·8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어린이집 아동부터 초·중·고교까지 연령별로 맞춤형 성평등 교육을 시행하겠다고 선포한 바 있다.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겠다”던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기회다. ‘여성안심특별시 3.0 대책’ 입장문을 통해서 부당하게 공격받는 위례별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교권을 보호하고 초등 성평등 교육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기를 기대한다.

2017년 뉴베리상 수상작인 화제의 동화 『달빛 마신 소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루나는 자기가 평범하다고 생각했고 자기가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다. 반만 맞는 생각이었다. 루나는 열한 살이었다. 고르기도 하고 비뚤기도 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가 되려고 했다. 아이, 어른, 시인, 기술자, 식물학자, 용. 되고 싶은 것의 명단에 끝이 없었다.” 꿈의 목록에는 성별이 없다. 혹시라도 여전히 “이건 안 돼”라면서 그들의 손에서 되고 싶은 것을 거두어들였다면 이제 그 카드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위례별초등학교의 경험이 어린이 페미니즘 교육을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위의 동화책에는 다른 멋진 구절도 나온다. “마법이 갑자기 터져 나오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을 뿐이야. 이제 평화롭게 배워 나가면 돼. 오늘부터 당장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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