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막’ 명칭 오해 불러일으켜

처녀막은 여성 신체 일부일 뿐

성관계 여부 구분하는 기준 아냐

용어 대체 필요하다는 주장 일어

 

질막은 약간의 구멍을 두고 질을 감싸고 있으며, 도넛이나 초승달 등 개인마다 모양과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구멍이 여러 개 나있는 그물망 모양도 있고, 구멍 가운데 피질이 약간 남아 있는 것도 있다. ⓒWikimedia Commons
질막은 약간의 구멍을 두고 질을 감싸고 있으며, 도넛이나 초승달 등 개인마다 모양과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구멍이 여러 개 나있는 그물망 모양도 있고, 구멍 가운데 피질이 약간 남아 있는 것도 있다. ⓒWikimedia Commons

처녀막(질막)은 여성의 성관계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답은 당연히 ‘NO’다.

“처음 성관계 할 때 처녀막이 뚫린다면서?” “처녀막 찢어지면 ‘푹’ 소리가 난다던데….” 요상한 괴담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짜’ 정보는 모두 ‘처녀막’이라는 명칭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심지어 조선시대엔 첫날밤에 혈흔이 없으면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붉은 피를 본다는 뜻인 ‘견홍(見紅)’을 하지 못한 신랑 측의 파혼이 부당하다며 부인 측이 상소를 올리는 일도 있었다. 질막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해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처녀막의 영문 명칭인 ‘하이멘(hymen)’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결혼의 신의 이름 ‘휘멘’에서 유래했다. 하이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처녀의 막(virginal membrane)을 의미한다. 결혼 전까지 처녀막을 잘 지키고 있다가 첫날밤에 남편에게 넘겨준다는 의미에서 보여주듯, 과거에는 처녀막을 처녀의 상징이나 정조의 징표로 사용해 여성에게 ‘처녀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질막은 얇은 막에 불과해 체육활동이나 자위행위, 질 세척, 가벼운 낙상만으로도 일부 자연 소실되곤 한다. 질막은 질 입구를 부분적 혹은 완전히 폐쇄하는 주름 또는 막 모양의 섬유조직이다. 질 입구 바깥쪽 둘레에 붙어있는 피질층으로, 질 입구의 경계를 이루는 얇은 막일뿐이다. 약간의 구멍을 두고 질을 감싸고 있으며, 도넛이나 초승달 등 개인마다 모양과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만약 질막이 질을 완전히 뒤덮고 있을 경우(처녀막 폐쇄증) 질액이나 월경혈이 배출되지 못하기 때문에 개복수술을 받아야 한다. 

월경컵 정보 블로그 운영자 ‘테라’는 “처녀막은 남자가 처녀를 감별하기 위해 있는 처녀 증명서가 아니다”라며 “초경 이전 영유아의 질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신체 일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처음부터 구멍이 뻥 뚫린 라텍스 고무막을 생각하면 질막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질막은 입술 안쪽 같은 인체 피질층이라 유연하게 늘어나고 생각보다 질기고 튼튼하다”며 “모양도 다양하다. 구멍이 여러 개 나있는 그물망 모양도 있고, 구멍 가운데 피질이 약간 남아 있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월경컵 정보 블로그 운영자 테라는 ‘처녀막 대체어 찾기 프로젝트’를 위해 트위터에서 투표를 진행했다. ⓒ트위터 캡처
월경컵 정보 블로그 운영자 테라는 ‘처녀막 대체어 찾기 프로젝트’를 위해 트위터에서 투표를 진행했다. ⓒ트위터 캡처

처녀막은 소위 말하는 ‘처녀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여성의 신체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여성의 몸을 설명하는 명칭에서조차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과 마주해야 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 여성들이 나섰다. 테라는 트위터에서 ‘처녀막 대체어 찾기 프로젝트’를 위해 투표를 진행했다.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3일까지 진행된 1차 투표에선 질막, 질프레임, 질둘레막, 질두름막을 후보로 올렸다. 그 결과 질막과 질둘레막이 각각 45%, 21%를 기록해 1·2위에 올랐다(총 투표수 4083표). 두 개의 대체어를 바로 2차 투표에 부쳤다. 지난 7일 종료한 투표결과에 따르면, ‘질막’이 7264표 중 51%를 기록해 대체어로 낙점됐다. ‘처녀막 대체용어 찾기 투표’ 1·2차를 모두 합친 결과 투표수는 모두 1만1347표에 달했다. 일개 민간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임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관심이었다.  

테라는 “여성혐오 단어인 ‘처녀막’의 대체용어를 찾는 움직임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프로젝트를 열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는 전근대적 사상이 개입된 ‘처녀막’이라는 용어를 현재까지 고수하는 게 의아했다”며 “여론을 형성하면 전문가 집단에서도 처녀막 대체용어 논의가 오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월경컵 정보 블로그 운영자 테라는 ‘처녀막 대체어 찾기 프로젝트’를 위해 트위터에서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질막과 질둘레막이 각각 1·2위를 기록했다. ⓒ월경컵 정보 블로그 운영자 ‘테라’ 제공
월경컵 정보 블로그 운영자 테라는 ‘처녀막 대체어 찾기 프로젝트’를 위해 트위터에서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질막과 질둘레막이 각각 1·2위를 기록했다. ⓒ월경컵 정보 블로그 운영자 ‘테라’ 제공

처녀막을 대체하는 용어를 찾기 위해 처음에 테라는 ‘질프레임’이라는 논의를 던졌다. 질프레임은 남성중심적 가치판단을 배제한 생물학적 실체에 가까운 질 입구 둘레 조직을 가리키는 명칭이며, 처녀막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테라는 기존의 ‘처녀막’은 여성 신체의 본질을 설명하지 못하고 처녀성과 무관함에도 성경험 여부를 감별해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통제·억압하는 단어로 사용된다고 비판했다. 처녀/창녀로 여성을 이분화하려는 남성들의 지배의식이 포함돼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또 처녀막은 여성을 ‘새 것’으로 사물화해 가축 분류하듯 여성을 성경험 여부로 구분하려는 남성 집단의 욕망이 집약된 용어라며, 단어 자체가 인권 침해적이라고 지적했다.

‘질막’에 표를 던진 이들의 이유는 대체로 비슷했다. ‘임시로 용어를 써온 게 있어서 익숙하고 직관적이라 쓰기 편하다’, ‘간결하고 직관적이라 좋은 느낌을 받았다’, ‘세포막처럼 질을 둘러싸고 있는 막이라는 의미가 와 닿았다’, ‘짧고 쉽다. 처녀막이라는 단어가 완연히 퍼져있는 상황에서 단어 교체를 하기 위해서는 외우기 쉽고 간결한 단어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테라는 투표 결과에 따라 현재 운영 중인 생리컵 정보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에서 1위를 한 ‘질막’을 처녀막 대체 용어로 사용할 예정이다. “제가 작성한 생리컵 게시물이 퍼져 생리컵 합법화 움직임과 국내 생리컵 생산 펀딩을 이끌어냈듯이 질막 용어 사용도 공론화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생리컵을 배우러 온 분들만이라도 질막이라는 용어를 접해 편견을 거두길 바라요. 누군가 혹은 어떤 단체가 이 움직임을 성공시키는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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