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혜정 작가 

카라스갤러리 1호 전속 작가

8월 한 달간 카라스갤러리서

‘Ambiguous Lines’ 주제로 개인전 열어

 

황혜정 작가는 “나는 그림 속에서 나 자신을 얘기하는데, 그림 속의 ‘나’는 일상의 내가 아니더라”며 “무의식적으로 숨겨왔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의식적으로 그어놨던 경계선을 그림 속에서는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은 순수한 나를 찾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황혜정 작가는 “나는 그림 속에서 나 자신을 얘기하는데, 그림 속의 ‘나’는 일상의 내가 아니더라”며 “무의식적으로 숨겨왔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의식적으로 그어놨던 경계선을 그림 속에서는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은 순수한 나를 찾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기이한 포즈로 서로 뒤엉킨 얼굴 없는 육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위로 털이나 솜 등 섬세한 텍스처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서울 용산구 카라스갤러리에서 8월 한 달간 전시 중인 황혜정(31·카라스갤러리 전속 작가) 작가의 작품들이다. “제가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대개 ‘예쁜’ 걸 그릴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작업을 보여드리면 놀라거나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죠. 저는 아름다운 것과 이상한 것의 경계에 있는 게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황 작가의 말이다.

황 작가는 홍익대에서 섬유미술과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런던왕립예술대에서 텍스타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번에 첫 개인전을 펼치는 그의 전시 주제는 ‘Ambiguous Lines(모호한 선들)’다. 육체 이미지가 담긴 드로잉 작품인 최근작을 전시 명으로 내세웠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태까지 단체전이나 아트페어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모두 보여준다. △Ambiguous Lines △Solace △Absence △Things of the unconscious △An escape △Rebellions child 등 6가지 시리즈로 구성된 이유다. 이를 아우르는 하나의 큰 주제는 ‘날것의 순수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작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으로 작품마다 각기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전시 부제가 ‘경계선상 위 자아들’이에요. 저는 그림 속에서 나 자신을 얘기하는데, 그림 속의 ‘나’는 일상의 내가 아니더라고요. 나도 모르는 모습들이 튀어나오는 걸 보고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죠. 무의식적으로 숨겨왔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의식적으로 그어놨던 경계선을 그림 속에서는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림은 순수한 저를 찾는 과정이에요.”

 

서울 용산구 카라스갤러리에 전시된 황혜정 작가의 작품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용산구 카라스갤러리에 전시된 황혜정 작가의 작품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작가는 그림 속 육체를 통해 경계선상 위에 있는 존재를 표현했다. 그림 속 존재들이 모두 나체인 것도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관념과 이념의 옷을 벗어던진 모습은 비현실적이지만 그 안의 가장 순수한 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존재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동물인지 사람인지, 아름다운지 이상한지 알 수 없다. 포즈에서도 묘한 기괴함이 드러난다. 애매모호한 느낌, 그것이 바로 황 작가가 의도한 바다. 관람객들의 입에서는 ‘저게 뭐야?’ ‘이상해!’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게 바로 황 작가가 원하는 반응이다. “제 작품이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예쁜’ 것보다는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길 바라요.”

황 작가는 촉감을 원동력 삼아 작업을 풀어간다. 드로잉에 양모 텍스처를 결합해 색다른 작품을 만들어냈다. 황 작가는 “처음에는 섬유미술을 전공해 촉감에 관심이 많은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촉감에 애착이 있었다. 영국 유학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작업에 대해 생각하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불안함을 느끼거나 힘들 때 어릴 적부터 눈썹을 만지는 버릇이 있다”면서 “좁은 밀도 안에 모여 있는 눈썹 털들의 작지만 강한 텐션이 좋다”고 설명했다. 작업의 대부분에서 촉각 요소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눈썹이라는 촉각적 자극으로부터 정서적 위안을 얻은 개인적 경험 때문이다. “눈썹이라는 도피처에서 눈썹 털들을 쓸어 올리며 쾌감을 느꼈고, 작업을 통해서도 눈썹을 만질 때와 같은 감흥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황혜정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황혜정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작가는 작업하면서 외로움이란 감정도 받아들였다. 외동딸로 자라면서 외롭다는 건 부정적인 것인 줄 알았다고 했다. 어른들이 항상 안타깝다는 듯이 물어왔기 때문이다. “어머, 너 외동이니? 안 외로워?” 그 때마다 그는 답했다. “아니요. 안 외로운데요?”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 안에 있는 외로움을 인정했다. 내면을 통해 본인을 알아가면서 그는 더욱 단단해졌다. 작품을 통해서도 서서히 빛을 발하는 중이다. “제 작업을 보고 많이들 ‘안에 뭔가 폭발이 안 된, 터지지 않은 게 들어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앞으로 제가 작품을 통해 표출해내야 할 부분이죠.”

작가는 이번 전시를 마친 후 내년 상해에서 초대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되 설치미술 등 여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작품도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작품에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구상 중이다. “촉각이 제 작품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사실 관람객 분들은 작품을 직접 만지지 못하잖아요. 그게 뭔가 모순적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느낀 걸 관람객 분들도 느낄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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