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여학생들을 “위안부”, “빨통”으로 부르고, “D컵인데 얼굴은 별로니까 봉지 씌워서 하자” “1억에 내 XX 물게 해 준다” “(과 행사에서) 여자 낚아서 회 치자”며 낄낄대던 남성들을 기억한다. 2014년 국민대 모 학과의 남학생 32명이 카톡방에서 주고받은 언어 성폭력이다. 대학 본부의 대응은 느리고 미지근했다. 단과대 전 학생회장 A 등 가해자 둘은 징계도 받지 않고 2015년 2월 졸업했다. 

제보자가 들려준 뒷이야기다. A는 졸업하자마자 유명 외국계 보험사의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겠다던 A는 남성 동료와 선배들에게 자신이 겪은 “모함과 조리돌림”에 관해 종종 푸념했다고 한다. “남자끼리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왜 외부에 공개해서 학교와 학과 망신을 시키냐”면서. 

다수가 알게 된다면 눈살을 찌푸릴 만한 언행도, 남자끼리라면 문제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남성 일반을 모독하는 논리다. 상식적인 남성이라면 이런 주장에 분개해야 한다.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법원은 단톡방뿐만 아니라 일대일 대화창에서 오간 메시지도 공연성이 인정되므로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처벌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A는 자신을 감싸줄 ‘남성연대’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지 모른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앞날 창창한 젊은이’로서 선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집권했고 여성 내각 30% 시대도 열렸다지만, 여성들이 체감하는 세상은 아직 차별과 혐오로 가득하다. 여성을 신체 부위별로 나눠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정도에 따라 평가해 ‘남자 마음 설명서’라며 책으로 펴내는 등 왜곡된 젠더 관념을 과시하듯 드러내고는, 파문이 일자 “사과”만 남기고 여전히 청와대에서 일하는 탁현민 행정관이 대표적 사례다. 여성계의 성평등 인사 검증 요구에도 청와대는 침묵했다. 안도현 시인은 “그가 사과했으니 더 이상 때리지 말라”고 했다. 배우 문성근씨는 “그가 흔들리지 않고 활동하도록 응원하자”고 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연대는 초법적 권력”이라며 혀를 차고 있다.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내 인생은 변했다. 그런데 현실은 바뀐 게 없다. 여전히 여성은 ‘몰카’의 대상, 살해 대상,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여성의 자발적인 말하기와 행동은 너무 쉽게 ‘남성혐오’로 명명된다. 우리가 이러려고 밤새 촛불 들고 행진하고 희망을 걸었나? 많은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여성도 촛불 시민이고, 유권자고, 사람이다.” 지난 7일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 시위에 참석한 남상희(가명·29) 씨가 SNS에 올린 후기는 하루 만에 600여 명의 ‘좋아요’를 얻었다.

일부 ‘권력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깔린 남성문화의 문제다. 최근엔 남성 검사가 ‘꽃뱀’으로 몰린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빈축을 샀다. “원고를 좋아했나?” “허리를 비틀면 (남자 성기가 빠져) 성관계를 막을 수 있지 않았나?” “(피고인은) 성폭행 이후 피해자가 보이는 양태와 판이하게 달라 의심스럽다.” 지난 5월엔 남성 해군 대령이 직속 부하인 여성 대위를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해군본부 정훈공보실 관계자의 말이 놀랍다. “사실 그런 일(성폭행 사건)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해군도 많이 노력했지만, 술 먹고 부대 밖에서 그러는 걸 어떻게 막습니까?” 관계자 자신을 포함한 모든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이니 경계하라는 뜻일까? 여성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온라인에서 평등과 존엄을 요구하며 싸우는 동안, 남성들은 이토록 시대착오적인 남성문화를 견고히 다지고 있다. ‘성평등 정부’가 임기 내 해결해야 할 ‘적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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