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정책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스포츠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스포츠가 어떠한 역할을 할지, 아이들의 신체활동을 높이기 위해 놀이터와 시설은 어떻게 개선돼야 할지, 어르신들 걷기 운동 잘 하시게 길을 어떻게 잘 닦아야 할지 그리고 여학생들을 체육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해 어떻게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할지 등 스포츠를 둘러싼 재미있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수시로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툭툭 튀어나오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관련 뉴스는 바로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다. 있어서는 안 될 교육자들의 만행, 그 중에서도 ‘체육교사’가 가해자로 나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절망의 한숨이 쏟아져 나오곤 한다. 어쨌든 교사든 체육교사든 잘못에 대해 바로 잡아야 할 것임은 확실하다. 최근 뉴스들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뿌리칠 수 없는 의문이 생기는데 수많은 관련 뉴스들이 가해한 주체를 ‘체육교사 또는 교사’로 규정짓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사 4명이 여학생 21명을 성추행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한 여고에서는 남자 교사가 교실에 카메라를 몰래 설치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여고생 수십 명 성추행 50대 체육교사 영장’

‘체육교사인 김씨는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제자 31명을 성추행하고 (중략) 또 다른 한씨는 3학년 담임교사로 있으면서 복도를 지나가다 마주치는 여학생 55명의 신체부위를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위의 기사를 보면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는 ‘체육’교사와 ‘그냥’교사로 대비된다. 즉 일반교과의 교사는 그냥 ‘교사’로 통칭되고, ‘체육교사’는 꼭 ‘체육교사’로 지명되고 있다. 이러한 기사를 통해 사건을 접한 대중들에게는 ‘체육’교사의 잘못된 행위는 물론 추가적으로 ‘교사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 대부분이 ‘체육’교사라는 부정적 인식으로 각인된다. 문득 체육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궁금증이 밀려오면서 주변인들에게 학창시절 체육교사와 체육수업에 대한 이미지를 물었더니 과거 “체육교사에 대한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는 실망스런 대답을 들었다. 체육교사에 대한 폄하된 별명, 체육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 대한 부정적 기억, 자율학습시간으로 대체되었던 있으나마나한 체육수업 등이 대표적이었다. 글을 쓰는 본인조차 체육수업은 군대의 제식훈련과 같이 앞뒤좌우 정렬을 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요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기 위해 체육과 스포츠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으나 기실 학교에서 체육 과목은 국·영·수·과학 등 주요과목에 밀려 ‘기타과목’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체육교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은 과거 입시위주로 인해 주요과목과 그렇지 않은 과목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게다가 신체접촉이 빈번히 일어날 수 있는 체육에 대해 우리사회의 ‘몸’에 대한 터부시된 코드가 작용을 하면서 선입견을 자연스레 장착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학교 내 체육수업이나 스포츠센터 회원들의 수업을 살펴보면 신체접촉을 통한 지도방법은 찾기 힘들다. 가장 신체접촉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수영 수업조차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입수지도를 규정으로 만든 사례도 적지 않다. 이처럼 시대적 흐름에 따라 체육지도자들의 지도방법 또한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육, 스포츠에 대한 선입견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체육교사’가 연루된 ‘교사+성추행’이라는 두 개의 개념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우리의 인식은 ‘교사’보다 ‘체육’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고, 이는 곧 체육과 스포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중헌디”. 연일 교사 성추행 사건을 접하면서 영화의 한 대사를 곱씹게 된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은 성추행 사건인데 그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공신력의 상징인 교사가 가해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팩트이다. 가해자가 체육교사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교과목이 체육 때문이 아니기에 “교사 성추행”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더 큰 것은 아니다. 일부 언론이 다루고 있는 ‘교사 성추행 사건’과 ‘체육 교사 성추행 사건’의 대비는 우리 사회의 계급화 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스포츠의 바른 가치를 가르치는 체육교사들이 참 많다. 이들의 노고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 또한 우리의 색안경으로 인해 퇴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사는 담당 교과목의 경중과 무관하게 ‘교사’이고, ‘교사’여야 하며 언론 또한 이를 잘 인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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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선임연구위원
김미숙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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