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볕과 높은 습도에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다. 찜통더위에 밖을 나서기조차 두려운 요즘, 집에서 ‘북캉스’ 떠나보는 건 어떨까.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같은 에세이부터 ‘내 얘기다’ 싶은 진솔하고 담백한 일상 만화와 냉혹한 현실에서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를 건네는 소설도 있다. 모두 여성작가들이 써내려간 이야기다. 에어컨 바람 밑 대나무 돗자리 위에서 느긋한 책 여행으로 여름휴가 만끽해보자.

 

『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사노 요코, 2017)

할 말은 하고 살자는 사노 요코식 공감 에세이. “남들 비위 맞추지 않고 나답게 사는 인생”을 말한다. 까칠하지만 솔직하고, 진심 어린 표현을 만나볼 수 있는 산문집이다. 40대 젊은 시절 작가의 고뇌가 곳곳에 묻어난다. 세상을 달관한 듯한 노년의 사노 요코 글과는 다른 색의 연륜을 느낄 수 있다. 특유의 경쾌하고 꾸밈없는 화법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사노 요코. 일본의 그림책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독특한 발상을 토대로 묘사하는 인간 심리와 유머러스한 그림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2010년 암으로 사망했으나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등 거침없고 독특한 에세이로 한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서늘한여름밤, 2017)

“어느 날, 내 삶의 전력 질주를 멈췄다. 내 마음이 무얼 좋아하는지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살아가기로 한 작가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한 우리에게 필요한 조언과 응원을 전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대형병원에 들어갔다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100일 만에 그만둔다. 퇴사 이후 ‘이제 정말 내 마음대로 살아야지’ 결심하지만,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던 그는 본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블로그에 그림일기를 올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는 그 흔적을 담은 첫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유쾌한 에피소드 50여 편을 담았다. 작가가 어떻게 마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받아들였는지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심리상담을 받은 듯 개운함이 느껴질 것이다.

 

『차의 시간: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마스다 미리, 2017)

우리의 일상과 생각을 콕콕 집어내는 마스다 미리의 작가적 습관에서 나온 만화다. 주로 카페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작가는 카페를 찾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진솔함과 담백한 위트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카페에서는 느긋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시 마음을 놓아도 좋다고 말하며 우리의 삶에는 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전해준다. 카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큼 일본의 유명한 카페와 디저트를 소개하는 저자의 품평도 재미가 쏠쏠하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도 함께 담겨 있어 저자가 느낀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점을 살펴볼 수 있다.

 

『피프티 피플』(정세랑, 2016)

수도의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연결된 50명의 이야기를 소설로 엮었다. 50명 각자가 처한 곤경과 사고를 통해 그들이 지닌 고민을 펼쳐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과 성소수자의 사연, 낙태와 피임에 대한 인식, 씽크홀 추락사고, 층간소음 문제 등 2016년의 한국사회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꼼꼼한 취재와 자문을 통해 의사와 간호사, 보안요원, 이송기사, 임상시험 책임자, 공중보건의 등의 사연과 함께 응급실, 정신과, 외과 등으로 찾아드는 환자사연까지 입체적이고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특유의 섬세함과 다정함으로 50명의 손을 하나하나 맞잡아준다. 그리고 말한다. 개인의 아픔과 고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우리사회가 같이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고.

 

『쇼코의 미소』(최은영, 2016)

2013년 겨울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돼 등단한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이다. 작가는 등단 초기부터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를 열고 싶다고 밝혀왔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 어디에나 사람이 자리하는 이유다.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된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사람의 자리로 이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낸 표제작 「쇼코의 미소」, 베트남전쟁으로 주변인이 죽어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응웬 아줌마와 나와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씬짜오, 씬짜오」등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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