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성이 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지난 8일 이탈리아의 한 일간지에 이런 광고 문구가 실렸다.

한 대형서점에서 여성의 날(Festa della Donne)을 겨냥해 여성들에게 기념으로 책을 선물하자는 의도로 실은 것이다. 이 서점 외에도 여성의 날을 앞둔 며칠 전부터 기업이나 상점들은 신문, TV 등을 통해 엄청난 광고 공세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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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이 날은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며 상점에선 여성고객들에게 미모사를 주기도 한다. 특히 여성들을 위한 각종파티와 이벤트성 행사가 다양하게 벌어지는데 나이트클럽에서는 특별히 이날 하루 남성들의 스트립쇼가 펼쳐지기도 한다. 어찌 보면 발렌타인데이처럼 소비성이 짙은 축제일로 보여진다. 이 때문에 전혀 의미없는 바보같은 축제일이라며 이날을 축제일로 지내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시선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탈리아 여성들에게 올 3월 8일은 여느 해와는 의미가 다르지 않았나 싶다. 이탈리아 가정 내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규제법이 7일 의회의 최종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법은 지난 97년 입안된 이후 4년만에 의회승인이라는 결실을 이루었기 때문에 더욱 의의가 크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남편이나 동거인이 여성에게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행사할 경우 집과 가정으로부터 격리된다. 또 판사의 허가 없이는 집은 물론 아내가 일하는 직장 그리고 자녀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도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게다가 아내나 동거인이 생활비가 부족할 경우에는 격리된 이후에도 일정한 생활비를 지불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3년형과 벌금이 부과된다. 이 법은 나이 많은 부모에게 자식이 폭력을 가했을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 비폭력연구소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92년 이후 지금까지 폭력에 의해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당한 여성은 5천5백68명(신고된 수)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들 중 91%가 가정 폭력의 희생자다.

폭력의 유형은 29%가 학대나 혹사, 28%가 구타, 18%가 심리적 학대, 그리고 기타의 경우 강제 매음, 매춘(8%) , 강간(8%), 약속 등의 불이행(8%), 귀찮게 함(1%) 등인 것으로 집계됐다.

가톨릭의 영향으로 가부장적 전통이 사회적으로 깊게 뿌리박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은 다른 유럽 선진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이다. 불과 한달 전에도 여성을 성희롱 한 직장 상사에 대해 위법이 아니라는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때문에 다소 늦은 감 마저 드는 이 법이 뒤늦게나마 의회에서 통과된 것에 대해 이탈리아 여성계에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3월 8일의 시작” “여성들을 위한 최상의 선물”“여성들의 새로운 특권”이라 하여 상당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법이 가정폭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고 있는 이탈리아 여성들에게 어떤 보호막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김미성 이탈리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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