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상해 입히거나 

감금 또는 의식불명 빠뜨려 

살인까지 이르는 ‘데이트 폭력’

연인에 대한 ‘의심과 집착’서 비롯

정신적·언어적 폭력도 문제 심각

피해자 중 여성이 80% 달해

 

#1. 지난달 18일, 2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하고 차량으로 돌진하는 일이 발생했다. 손모(22)씨는 주먹과 발로 여자친구 A씨를 마구 때리고, 시민들이 A씨를 피신시키자 1톤 트럭을 몰아 돌진하기까지 했다. 손모씨의 폭행으로 A씨는 앞니 3개가 빠지고 다른 치아 2개가 부러졌다.

#2. 지난달 22일, 20대 남성이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폭행하고 자신의 집에 감금한 일이 벌어졌다. 이모(26)씨는 상해·감금 혐의로 지난달 25일 경찰에 붙잡혔다. 조사결과 이씨는 “A씨가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3. 지난달 27일, 30대 남성 B씨가 여자친구를 폭행해 의식 불명 상태에 빠뜨렸다. B(38)씨는 자신의 집에서 여자친구 C씨의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폭행해 상해를 입혔다. B씨의 폭행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C씨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B씨가 뇌를 다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고 전했다. B씨는 의식도 없고 자가 호흡을 하지 못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다.

여성의 목숨을 위협하는 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살인미수·살인까지 이르는 데이트 폭력은 해마다 건수가 늘어나 여성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정부도 스토킹·데이트 폭력, 몰래카메라, 디지털 성범죄 등 젠더폭력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을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것만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데이트 폭력에는 연인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행동을 통제하거나 정서적 억압 및 언어 폭력을 행하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은 연인에 대한 ‘의심과 집착, 소유 욕구’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데이트 폭력이란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정서적, 성적 폭력을 말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으로 지난해에만 8367명(449명)이 입건됐다. 전년 대비 675명(8.8%) 증가한 수준이다. 올해 6월까지 적발된 데이트폭력 사범은 456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9명(4.3%) 늘었다. 2011~2015년까지 연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233명으로, 한 해에 46명가량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했다. 또 경찰청이 지난해 2월 발족한 ‘연인 간 폭력 TF’ 활동현황에 따르면 전체 데이트 범죄(5428건) 피해자의 79.9%(4342건)가 여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10명 중 8명이 여성인 셈이다. 데이트 폭력을 연인 간의 ‘사소한 사랑 다툼’으로 취급해선 안 되는 이유다.

여성단체 조사 결과 대부분의 여성은 데이트 폭력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한국여성의전화가 만18세 이상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1017명 중 61%가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경험한 데이트 폭력 유형은 언어적, 정서적, 경제적, 신체적, 성적 통제·폭력 등 여섯 가지였다. 유형별로는 통제 피해를 경험한 비율이 62.6%로 가장 높았다. 성적 폭력 피해가 48.8%, 언어적·정서적·경제적 폭력 피해 45.9%, 신체적 폭력 피해가 18.5%로 뒤를 이었다. 여섯 가지 유형의 데이트폭력을 모두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도 11.5%에 달했다.

하지만 피해자 상당수가 폭력의 정도가 심해지기 전까지 폭력인 줄 모르거나 폭력인 걸 알지만 데이트 폭력을 사소한 사랑싸움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보복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도움을 청하거나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의전화 조사 결과 통제 피해가 발생한 직후 무슨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8.9%는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32.1%는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적 폭력 피해 이후에는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29.3%), ‘창피했다’(28.9%)고 말했다. 신체적 폭력 피해의 경우 ‘점점 무섭고 두려워졌다’(44.4%)고 응답했으며, 언어적·정서적·경제적 폭력 피해 이후에는 ‘헤어지고 싶었다’, ‘상대에 대해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다’는 생각이 각각 40.1%로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데이트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연인을 개인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 인식전환이 우선돼야 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 폭력은 사소한 사랑싸움 정도로 취급된다”며 “이 때문에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폭력을 인지하더라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등 대응을 주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성평등·인권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 활동이 활발히 전개돼야 인식이 개선될 것”이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데이트 폭력은 전조 증상을 보일 때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폭력인지 아닌지 헷갈릴 경우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폭력을 사랑으로 착각해 대응하지 않을 경우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 전조 증상 10가지>

1. 하루 종일 전화나 문자를 많이 한다.

2.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하거나 만나지 못하게 한다.

3. 심하게 화를 내다가도 바로 사과하는 등 감정 기복이 심하다.

4. 상대방의 스케줄에 상관없이 자주 만나자고 한다.

5. 싸울 때 큰소리로 호통 친다.

6. 상대방의 외모나 성격 등을 비하한다.

7. 감정이 격해지면 물건을 던지거나 욕을 한다.

8. 기다리지 말라고 해도 기다린다.

9. 상대방이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군다.

10. 싸우다가 상대방을 길바닥에 버려두고 간다.

 

데이트 폭력의 시작은 ‘의심과 집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데이트 폭력을 당할 경우 이렇게 대처하라고 한다.

폭력에 단호해라!

상대의 폭력에 단호한 모습을 보이세요. 상대가 용서와 화해를 구하고, 눈물을 보이며 설득하려 해도 흔들리지 마세요. 단 한 번의 폭력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세요.

함께해라!

가족, 동료, 친구, 선생님 등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세요. 특히 성폭력상담소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기관에 상담을 받으세요. 지지자원은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하는데 큰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주변 사람은 피해자를 믿고 지지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세요. 또한 피해자가 안전한 상황인지를 살피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주세요.

폭력의 흔적을 남겨라!

폭력을 행한 상대방과 절대 단 둘이 만나지 마세요. 꼭 만나야만 한다면 안전하고 편안한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고,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가세요.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라!

상대방이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을 행사한 날짜와 시간 등 사건일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문자나 메일, 대화 녹음 등 증거도 남겨두세요. 신체적·성적인 폭력이 발생했다면 반드시 112에 신고하고 여성폭력피해자 ONE-STOP지원센터에 도움을 청하세요. 신고하지 못한 경우에도 몸의 상처나 폭력의 흔적을 사진으로 찍어두고 병원에 꼭 다녀오세요. 되도록 병원에 피해사실을 알리고 진단서를 끊으세요. 분실 위험을 대비해 증거물을 안전한 곳(속옷 등의 증거물은 코팅되지 않은 종이봉투)에 별도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학적인 증거는 48시간 안에 수집이 가능하므로 몸을 씻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가야합니다.

*성병 등의 감염이나 임신을 피하기 위한 조치(응급피임약 72시간 이내 복용)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법적 대응을 고려하지 않았더라도, 지금이 아니면 확보하기 어려운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 자체가 폭력에 대응할 수 힘이 됨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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