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대전환한다고 선언했다. 김동연 경제 부총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점은 사람이다. 가계를 중심축으로 성장 분배의 선순환을 복원해 저성장과 양극화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패러다임 전환을 구현하기 위해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네 가지 방향에 초점을 맞춰 향후 경제 정책을 운용하고자 한다”고 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용어는 1962년 토머스 쿤(Thomas Kuhn)의『과학 혁명의 구조』에 처음 등장했다. 그는 “과학의 역사는 연구자들의 객관적 관찰에 의한 진리의 축적에 따른 점진적 진보가 아니라 혁명 즉 단절적 파열에 의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통해서 과학이 발전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기본 가정들이 도전을 받게 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위기가 극복된다”는 것이다.

기존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은 투자(수출) 주도, 대기업 중심 성장론이었다. 수출이 증대하면 투자와 내수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기존 패러다임으론 더 이상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고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켜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 현 정부의 진단이다. 소득을 증대시켜 소비가 늘어나면 내수가 활성화되어 성장이 이뤄져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사람중심 경제 성장의 핵심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성패는 무엇보다 효과적인 재원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대부분은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랏돈을 풀어 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득 주도 성장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기초연금 30만원까지 단계적 인상, 실업급여 실직 전 평균임금 60%까지 인상, 청년 실업자를 위한 30만원 구직촉진수당 3개월 지급 등 모두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출을 전제로 한다.

새 정부는 최근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비전 아래 5대 국정 목표, 20대 국정 전략, 100대 국가과제가 담겨 있다. 정부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5년간 178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정 확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못했다. 이를 의식해 정부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증세 전략을 구체화했다. 거대기업․고소득층 핀셋 증세로 연간 3조 8000억원을 더 거둬들인다는 방안이다. 이런 증세 방식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공방을 벌였다. 여당은 ‘명예 과세’라고 네이밍한 반면, 야당은 ‘가공할 세금 폭탄’(자유한국당) ‘눈 가리고 아웅식 증세’(바른 정당), ‘부실 증세’(정의당)라고 비판했다. 여야 공방을 넘어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재원 조달 방안 없는 소득 주도 성장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일반 중산층과 서민, 중소 기업에는 증세가 전혀 없고,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고 단언했다. 서민 증세 없이 세금을 더 걷고 세금을 아껴 막대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분명, 정부가 추진하려는 ‘초대기업, 초고소득자 증세 방안’은 정치 부담은 적지만 세수 효과는 별로 없다. 2015년 기준 상위 1% 법인이 내는 법인세는 전체 법인세수의 약 76%에 달했고, 상위 10%까지 범위를 넓히면 약 92%나 된다. 법인세뿐만 아니라 소득세 역시 2015년 기준 상위 1% 근로소득자가 낸 세금은 전체 근로소득세의 32.6%를 차지했다. 상위 10%가 낸 세금은 75.9%였다. 문제는 무려 근로자 절반 정도(46.8%)가 근로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기업의 47.1%가 법인세를 못 내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하려면 이제 정부가 용단을 내려야 한다. 보편적 과세를 적극 추진하든지 부가 가치세를 상향 조정해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새 정부가 경제 정책 못지않게 성평등 정책에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할 것을 주문한다. 실직적인 성평등 실현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성평등 국가인 스웨덴(6위), 핀란드(10위), 노르웨이(11위)의 국가 경쟁력 순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