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태산이다. 모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회장의 추행 입건 소식으로 시끌시끌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 고등학교 교사의 무더기 추행 건 보도. 어느 교육기관에서 여성 교원에게 성폭력 가해자인 다른 교원의 누나인 척 나가서 피해자와 합의하라고 요구했다는, 가히 엽기적인 성폭력 은폐 소식도 터져 나오더니, 또 다른 고등학교에서도 교사에 의한 학생들 추행 건 신규 적발. 급기야는 어느 판사까지 몰래카메라를 찍다가 현행범으로 걸렸단다. 어느 언론 기사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 전담 재판부에 배속된 판사였다고 하니, 이제는 더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난 3~4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가.

얼마 전 기고문에서도 썼던 바 있지만, 성폭력은 누구에게도 떳떳이 드러낼 수 없는 악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 면전에서 ‘나 오늘 들키지도 않고 몰래카메라 60장 찍어 왔어요.’ 라거나 ‘나 오늘 새로 입사한 후배 여직원 손목도 만지고 어깨도 만지면서 같이 좋은 모텔 가서 밤새도록 놀다 가자고 희롱하다 왔어요. 내일은 백 허그도 해 보려고요’라면서 자랑스레 밝힐 수 있는 철면피는 세상에 없으리라. 가족의 면전에서 떳떳하게 드러낼 수도 행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이라면, 그건 누구에게라도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기에 앞서, 단 1분만이라도 아니 단 30초만이라도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라. 그 앞에서 떳떳할 수 있다면 해라. 아니라면 절대 하지 마라.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급 직원이나 학생과 같은 이들이 위계상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의 언동으로 인해 불쾌감이나 굴욕감을 느꼈더라도 그 자리에서 또는 그 이후에라도 거부의사를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문제제기에 주저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는가? 면전의 상대방이 ‘감히 나에게’ 어쩌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 그 알량한,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권력을 그렇게라도 과시하고 싶었던 건가? 그토록 ‘힘 자랑’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샌드백이나 걸어두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혼자 ‘주먹질’이나 한 번 해 볼 것을 권한다. 본인에게나 타인에게나 – 심지어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해서나 – 그게 훨씬 더 나은 선택일 테니까. 게다가 당신의 그 잘난 ‘힘’이라는 게 기실은 별 볼일 없는 것이었음을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금세 몸으로 체감하게 될 테니까. 괜히 애꿎은 타인에게 말도 안 되는 폭력을 휘두르지 마라. 누군가의 권리와 존엄을 제멋대로 침해해도 좋을, 그런 권력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가족의 얼굴도 쉽게 떠오르지 않고 타인의 권리니 존엄이니 하는 이야기에 끝끝내 귀 기울일 생각조차 없다 해도 좋다. 우리에게도 마지막 선택지는 아직 남아 있다. 마키아벨리도 일찍이 갈파했지 않는가. 인간이란 본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쉽게 잊어도 자신의 이익을 해한 자는 쉽게 잊지 못하는 존재라고.

아직도 충분히 알려져 있지 못한 면이 있지만, 성폭력 범죄로 유죄가 확정되면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될 수 있다. 강간이나 준강간, 유사강간 등의 성범죄 이외에 강제추행의 경우도 신상정보 등록대상이 되며, 이른바 ‘몰카’ 또한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범죄로 10년을 초과하는 징역 또는 금고형이 확정됐다면 무려 30년, 3년 초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이 확정됐다면 20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이 확정됐더라도 15년, 벌금형이 확정된 경우에도 10년 동안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된다. 위와 같은 등록기간이 형기를 채우는 시간을 포함하지 않으며 교도소에서 석방된 때로부터 기산되는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등록기간이 20년이나 15년인 자는 6개월에 한 번씩, 10년인 자는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포돌이/포순이 형사님’을 만나야만 할 텐데,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국가의 관리·감독을 받아가며 지속적인 통제 하에 살아가도 괜찮다면, 정녕 그렇다면 해도 좋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남의 권리가 처참하게 짓밟히는 것에는 눈 감아 버릴 수 있어도 내 권리와 이익이 침해당하는 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진정 그렇다면 하지 마라. 제발, 하지 마라.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당신의 이익을 해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내면의 인식과 태도를 개선하는 근본적 방안이 아닌, ‘채찍’을 활용한 얄팍한 대증요법에 불과하기에 함부로 써서는 아니 되는 최후의 방책이어야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무고한 피해자가 더 양산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내야 하지 않겠나. 세상이 비록 이 지경이지만 그렇다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제발, 간절히 바라건대 제발 좀 그만 하여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당신 자신만을 위해서라도.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