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젠더를 묻다

EGEP  ‘종교와 젠더정의’

초국가 여성운동의 장에서

종교 간의 대화 벌어져

“학식 높고 견문 넓어도

여성과 섹슈얼리티에는

완고하고 무지해”

“여성주의자는 종교에서

가부장제 보다는

‘키리아키’에 주목해야”

 

뉴욕 세계무역빌딩 폭격,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융단폭격, 이라크 침공, 영국의 맨체스터 자폭 테러 등의 배후세력으로 모두 종교 단체나 종교 이슈가 주목받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오랜 분쟁 역시 종교적 갈등이 그 원인이다. 지난 20세기에는 이데올로기가 전쟁과 폭력의 이유였지만, 오늘날에는 종교 갈등이 전쟁과 테러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구촌 평화를 위해 종교 간의 대화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4일 초국가 여성운동의 장에서 다른 종교들 간의 전면적인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이화여대 아시아 여성학 센터(소장 김은실)의 제12차 이화글로벌임파워먼트프로그램(EGEP)에서 ‘종교와 젠더정의’라는 제목의 공개강좌에서 불교와 이슬람을 중심으로 스와나 사타-아난드(Suwanna Satha-Anand) 태국 쭐라롱꼰대학 철학과 교수와 기독교 신학과 관련해 강남순 미국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가 각각 발표했다. 이명선 이화여대 교수가 청중과의 토론을 진행했다. 각기 다른 종교에 대한 발표가 한곳에서 이뤄진 곳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곳에는 아프리카 3개국과 아시아 17개국에서 불교 이슬람 기독교 힌두교 등의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모여 함께 논의의 장을 펼쳤다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그곳은 자신의 신앙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종교를 낙인찍는 종교재판의 장도 아니었고, 자신이 믿는 신앙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폭력적 포교의 장도 아니었다. ‘우리 무슬림이 불교 사회운동에서 배울 것이 무엇인가?’ ‘내가 믿어온 기독교가 얼마나 성차별적 종교인가?’ ‘이슬람은 폭력적인 종교일까?’ 등의 고백과 질문들이 오갔다.

 

스와나 사타-아난드 태국 쭐라롱꼰대학 철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스와나 사타-아난드 태국 쭐라롱꼰대학 철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종교 안에서 나타난 여성 차별적 관행들

수와나 교수는 17세기 인도네시아 북부 아체왕국에 난파된 페르시아 대사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페르시아 대사는 아체왕국이 유럽, 인도 중국과 같이 건실한 귀족체계, 교육제도, 합리적인 행정 제도를 갖춘 발전된 문화를 가졌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그는 이상하게도 아체왕국 국민들이 도덕적으로 천박하며 신앙이 약한 무슬림이라고 왕에게 보고했다. 그 이유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아체 국왕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신앙이 좋은 사람들이라면 여성을 왕으로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고 기록했다.

수와나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17세기만 일어나는 것인가라고 청중에게 질문했다. 그는 “제가 아는 많은 남성 종교인들이 페르시아 대사처럼 학식이 높고 견문이 넓고 품성도 좋지만, 막상 여성과 섹슈얼리티의 문제에서만은 여전히 완고하고 무지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불교에 나타난 뿌리 깊은 성차별적인 요소들도 설명했다.

불교 사회인 태국의 여성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 아들의 노란색 승려 옷자락을 잡아야 했다. 여성이 승려가 될 수 없어서다. 그들은 아들을 낳아 승려가 되도록 지원해 주지만, 딸들에게는 금전적 지원을 요구한다. 얼핏 보면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파워풀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태국의 교육은 주로 사원에서 이뤄지는데, 불교의 율은 승려들이 여성을 만지는 것을 금지했다. 결국 여성들은 사원에서 이뤄지는 교육에 접근할 수 없게 됐다. 교육받지 못한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수와나 교수는 “태국 사회의 성매매 시장과 이주노동 증가의 원인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불교 사회에서 부자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전생에 좋은 업을 세웠고, 빈곤 한자는 업적이 좋지 않았다고 여긴다. 이것을 카르마라고 한다. 수와나 교수는 부처가 카르마를 사용한 의도를 사람들이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부처는 카르마를 선포하며 카스트 제도를 비판했다. 상위계급이 누리는 계급적 특권은 그들의 행동에 따라 언제든 박탈될 수 있다는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수와나 교수는 불교의 본디 메시지는 탈 계급적이며 성평등적이라고 주장한다.

 

강남순 미국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남순 미국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종교에 대한 보편적 개념화는 불가능

두 번째 강연자인 강남순 교수는 종교에 대해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우리가 종교에 대해서 보편적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우린 종교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우리는 종교를 쉽게 정의 내리고 이야기해왔다. 예를 들어, 종교단체가 권력과 결탁하여 약자들을 차별할 때 억압자라고 비판했으며, 종교 단체가 노동자, 난민, 여성 등 정치적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일할 때 해방자로 불렀다. 종교는 억압자인가 해방자인가?

강 교수는 이것을 좀 더 급진화해 ‘종교에 대한 보편적 개념화는 불가능하다’라는 자끄 데리다의 말을 인용했다. 종교 일반화, 즉 종교에 대한 합일된 개념이 없다면 우리는 종교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남는다. 마치 ‘보편적 여성’이 없는데 우리는 어떻게 여성학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처럼 말이다. 강 교수는 우리가 아주 명확한 듯 사용하는 성차별, 젠더, 페미니즘 역시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 교수는 ‘종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석학의 대가인 폴 리꾀르(Paul Ricoeur)가 학생들에게 항상 물었던 질문을 다시 청중에게 물었다. ‘Where do you speak from?’ ‘당신은 어떤 맥락에서, 누구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고 있나?’ 그는 종교에 대한 보편적 지식이나 개념화를 찾는 질문을 멈추고, 종교에 관해 이야기하는 각각의 사람들과 그들이 현재 처한 정치적 맥락으로 질문의 초점을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강연내용보다 청중들의 해석을 존중했고, 청중들과의 대면(face to face)을 중요한 정치적 행위로 강조했다.

강 교수는 여성주의자들이 종교에서 다뤄야 할 개념은 ‘가부장제’(patriarchy) 보다는 ‘키리아키’(Kyriachy)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낯선 개념은 엘리자베스 쉬슬로 피오렌자가 주장한 것인데, 여성의 문제는 성차별만으로 다뤄져서는 안 되며 그들이 처한 계급, 인종, 성적 지향 등 교차적 억압, 즉 키리아키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차적 억압에 대한 자각은 이미 여성주의자들 안에 확산되고 있다. 강 교수는 종교 내의 젠더분석이 보다 복잡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 교수는 기독교 안에서 등장하는 여성주의자들의 움직임도 소개했다. 최초의 여성 성경(1895)을 편집한 엘리자베스 케이티 스탠턴은 성서가 지난 2000년 동안 여성의 평등을 막는 무기로 사용됐다’라고 주장하였다. 기독교 신은 ‘아버지’ ‘대장’ ‘주인’ 이라고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가부장적, 인간 중심적, 군사주의적 담론을 환산시켰다. 여성주의자들은 ‘어머니 하나님’ ‘연인 하나님’ ‘친구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상징을 제안했다. 신을 인간으로 표현하기보다 ‘정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치유의 하나님’ 등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종교 일반화의 폭력성을 비판할 책임도 있지만, 종교 일반화를 요구할 권리도 있다. 모순적 표현인가? 현실은 모순의 얼굴을 갖고 있다. 강 교수는 데리다를 인용하며 종교의 다섯 가지 특성을 보여줬다. 첫째, 종교란 급진적 책임성에 관한 것이다. 둘째, 종교란 조건 없는 환대에 관한 것이다. 셋째, 종교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넷째, 종교적 삶이란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이다. 다섯째, 종교란 불가능에 대한 열정이다.

종교의 이야기는 언제나 뜨겁다. 여성들은 종교의 순례자이며 이방인이었다. 주류종교에서 주변화된 여성들은 함께 모여 기존의 옹졸하고 억압적인 종교를 비판하고 새로운 종교에 대해 상상을 하였다. 그들은 함께 반란을 공모하고 공감, 환대를 통해 연대를 확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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