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상 여성혐오 표현

10년 이상 난무했지만

규제 지지부진 하더니

탄생 2년차 ‘한남충’은

재판서 모욕죄로 인정

맘충·김치녀·메갈X 등

여성 전체가 대상인 비방

현재 모욕죄로 처벌 어려워

 

여성비하로 논란이 된 웹툰작가를 ‘한남충’이라고 지칭한 대학원생이 최근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0년 넘게 온라인 상에서 여성혐오 표현이 난무해도 규제가 지지부진하던 것과는 달리, 쓰인 지 2년 남짓된 ‘한남충’ 표현에 대해서는 모욕죄가 인정돼 향후 혐오발언 관련 처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대 여성 A씨는 2015년 12월 여성 커뮤니티에 남성작가 B씨를 ‘한남충’으로 지칭하는 글을 써 올렸다가 모욕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 22단독 강희경 판사는 지난 17일 A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에서 A씨는 “한남충이라는 표현이 경멸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한국 남성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집단 범위가 매우 넓어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는 유명 작가로 공인이고 여성을 비하하는 웹툰으로 논란이 됐다”며 “피해자의 웹툰 연계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여기에 동참해 다른 회원을 독려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남충’이라는 표현에서 ‘충’은 벌레라는 뜻으로 부정적 의미가 강하고 피해자 개인을 대상으로 문제의 글을 써 모욕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한남충’ 모욕죄 판결에 많은 여성들은 의아함을 표했다. 지난 10여 년간 온라인상에는 여성혐오 발언이 난무했음에도 규제가 강하지 않았던 데 반해, 남성 비하 발언에는 강력한 제재가 적용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남충’이란 단어는 사용된 지 2년 남짓에 불과하다. 2015년 5월 말 ‘메르스 갤러리’, ‘메갈리아’가 탄생하면서 ‘한남충’이란 용어가 생겨났다. 반면 김치녀, 된장녀, 보지년, 보라니, 보슬아치, 맘충, 페미년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모욕과 욕설은 10여 년간 지속돼왔다. 그러나 여성혐오 발언을 한 가해자가 재판에 넘겨졌다거나 처벌받았다는 사실이 공론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욕죄 처벌에도 성차별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메갈년’은 고소 안 된다는 경찰

온라인상에서 ‘악플’ 피해를 입은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을 때, 경찰이 여성에게 보이는 미온적 태도와 미흡한 수사도 꾸준히 문제점으로 얘기돼왔다.

직장인 박모씨는 지난 4월 SNS 뉴스채널에서 댓글로 논쟁을 벌이던 중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 당시 박씨는 특정 매체가 여성 연예인을 다룬 기사에 성희롱적인 내용이 포함됐다고 판단해 문제제기를 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은 오히려 박씨를 지목하며 “박OO 메갈 냄새난다” “박OO 메갈년 페미년”과 같은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대한법률구조공단과의 상담을 통해 ‘(해당 댓글은) 모욕죄 성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박씨는 모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고소를 하러 갔지만, 당시 경찰은 “‘메갈년, 메갈 냄새난다’ 등으로는 고소가 안 된다. ‘XX’ 등의 직접적인 욕만 고소가 가능하다”며 신고를 반려했다. 또 “연예인들은 뭐 그냥 가만히 있는 줄 아냐.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 “(대한법률구조공단)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직접 발로 뛴다”라며 공단의 상담결과를 무시하거나 해당 사건은 신고해도 불기소될 것임을 강조했다.

박씨는 ‘고소장을 써야 한다는 점’ ‘피해자가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정신적 스트레스’ ‘XX 등의 직접적인 욕은 없었던 점’ 등을 이유로 고소를 포기했다. 하지만 수사관의 태도에 불쾌함을 느낀 박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넣었고, 해당 수사관의 태도는 원칙적으로 잘못됐다는 답변을 받았다. 불기소 가능성이 있는 사안의 경우 수사관이 그와 관련된 사유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고소를 불수리할 권리를 지닌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사건이 접수됐을 경우 경찰은 기소 가능성이 있든 없든 고소를 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로 구성된 공동대응단은 지난해 7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추모참여 후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 20명과 함께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집단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로 구성된 공동대응단은 지난해 7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추모참여 후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 20명과 함께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집단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자가 피해자면 처벌 경미?

그러나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 고소 수리나 사건 처리, 수사 과정 등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여성들의 사진이 온라인상에 전시돼 집단적으로 모욕당하는 행위가 팽배하지만 경찰에 신고해 수사를 진행하거나 법적으로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조 국장은 “온라인상에서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비하발언과 욕설은 ‘한남충’에 비하지도 못한다. 무단으로 찍힌 사진이 남초 사이트 중심으로 공유될 경우 셀 수 없을 정도의 악성 댓글이 달린다”며 “피해 정도나 파급력, 빈도수를 봤을 때 여성의 피해는 매우 심각하지만 그에 비해 수사 진행이 더디고 처벌이 경미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나 욕설은 ‘온라인 페미사이드’라고 불릴 만큼 개인의 인격을 말살·침해하는 행위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특정 사안과 관련된 잘못을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모욕죄나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해 처벌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조 국장은 “이번에 ‘한남충’ 발언으로 모욕죄 처벌을 받은 분도 남성작가의 여성혐오적인 콘텐츠를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논쟁이 붙었던 것”이라며 “앞으로 문제제기 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권리 찾는 사람은 대개 남성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 아래서 법적 권리를 찾는 이는 대체로 남자라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여성은 법적 권리를 찾는 데서도 배제·소외된다는 것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성들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혐오발언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걸 하나하나 법적으로 문제제기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비하·혐오발언을 듣는 것이 익숙지 않은 남성들은 ‘한남충’이란 말에도 즉각적으로 법적 대응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 가해자를 고소하려는 여성에게 경찰이 보이는 차별적 의식과 행동은 여성을 위축시켜 자기검열을 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이 정도로는 고소가 되지 않는다’ ‘고소해봤자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경찰의 지레짐작이 여성의 법적 권리의식을 낮춘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온라인상에서 여성을 향한 혐오발언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법적 권리를 찾는 사람은 대개 남성”이라며 “법이 남성의 손을 비교적 더 많이 들어주는 사회구조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모욕하는 발언 처벌하려면?

온라인상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과 비하 발언, 욕설 등은 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하지만 여성 전체를 대상으로 한 비방은 현행법상 모욕죄로 처벌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모욕죄는 특정 개인을 한정해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관련 기사에 일상적으로 달리는 ‘맘충, 김치녀, 메갈년, 꽃뱀’ 등의 욕설 및 비하 발언을 처벌하기 어려운 이유다.

모욕죄(형법 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 모욕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연성, 특정성, 비방 목적 유무 등의 구성요건이 필요하다. 공연이란 불특정 다수가 인지할 수 있는 상황, 제3자가 보는 공개된 장소이며, 특정성은 모욕대상을 꼬집어 지칭하는 것을 말한다. 모욕죄에서 모욕은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온라인상에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모욕을 처벌하기 위해선 어떡해야 할까?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혐오표현 규제가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대한 모욕을 처벌하자는 게 혐오표현 규제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혐오표현 규제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역으로 가해자들이 소수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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