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

이슬람 여성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

국경없는기자회 명예이사 자격으로 19일 방한

“문재인 정부, 국제 인권 문제 해결 의지 보여주길”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시린 에바디 변호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시린 에바디 변호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을 저버린 나와 같은 지식인을 죽이는 게 종교적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비록 내 삶은 산산이 조각났지만, 내가 선택한 길을 벗어나지는 않겠다.”

이슬람 여성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70)는 지난해 르몽드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을 이렇게 반추했다. 그는 ‘이란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는 인권변호사다. 민주주의와 여성·언론인 등의 인권 향상에 헌신한 공로로 여러 권위 있는 인권상을 받고, 2004년 포브스 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도 올랐다. 그러나 조국 이란은 그를 반체제 요주의 인사로 낙인찍었다. 에바디는 8년째 영국 런던에서 망명 생활 중이다. 지난 19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기자협회와 국경없는기자회(RSF)가 공동 주최한 ‘탈진실 시대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세미나에 RSF 명예이사 자격으로 참석한 그를 만났다. 

 

젊은 날의 시린 에바디 ⓒwikipedia
젊은 날의 시린 에바디 ⓒwikipedia

여성이라서...이슬람 혁명 후 대법원장에서 행정직 강등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국제적 주목 받아

이란 정부가 노벨상 메달 압수 등 박해하자 망명

에바디는 1947년 하마단에서 태어났다. 테헤란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69년 이란 여성 최초로 판사가 됐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이란 여성 최초로 대법원장을 지냈다. 1979년 혁명으로 이란이 이슬람 근본주의 노선을 택하며 모든 게 변했다. 여성은 베일을 써야 했고, 판사·외교관 등 공직에서도 배제됐다. ‘여성은 감정적이므로 공무 집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에바디도 하루아침에 대법원장에서 행정관으로 강등됐다. 그는 자진 사퇴해 1992년 변호사가 됐다. 여성의 이혼·상속·자녀양육권과 관련한 부당한 가족법 개정을 이끌고, 이란인권수호센터를 설립하고, 이란 법의 성차별 조항에 반대하는 백만인 서명 캠페인을 이끄는 등 여성·어린이·언론인·정치범의 인권을 수호하려 노력했다. 2001년 노르웨이의 국제적 인권상 ‘라프토상’을, 2003년 이슬람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국제적 주목을 받을수록 정권의 박해는 거세졌다. 2009년 이란 정부는 에바디의 자산을 동결하고 노벨상 메달을 압수했다. 그의 여동생은 한 달간 투옥됐고, 풀려난 뒤에도 3년간 출국을 금지당했다. 그해 6월 에바디는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이란은 중국 못지 않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라고 비판했다. “반정부 인사를 변호한 이란 변호사 100여 명이 2009년 투옥되거나 가택연금을 당했어요. 제 동료들과 많은 언론인들이 감옥에 있습니다. 투병 중인 사람도 있고요. 이란 정부는 그들을 석방하지도 치료해 주지도 않아요. 많은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 등을 통해 표출하려 하지만, 정부의 미디어 검열·통제가 심각합니다.”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시린 에바디 변호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시린 에바디 변호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권·민주주의 위해 국제 연대 앞장서

이란 사회 낮은 여성 인권 향상 노력

여성 차별·억압은 “이슬람 아닌 독재 정권 탓”

“이란 민주화되는 날까지 활동 멈추지 않겠다”

에바디는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연대에 힘써왔다. 그는 2006년 리고베르타 멘추 툼(과테말라·1992년), 베티 윌리엄스(아일랜드·1976년), 고(故) 왕가리 마타이(케냐·2004년), 조디 윌리엄스(미국·1997년) 등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함께 ‘노벨 여성 이니셔티브(Nobel Women’s Initiative)’를 발족했다. 각국 여성이 힘을 합해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만든 단체다. 이들은 미얀마 ‘민주화 영웅’ 아웅산 수치의 석방,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책임 있는 해결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캠페인을 벌였다. 2009년엔 한국여성의전화의 초대로 서울을 찾아 여성 인권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그는 여성의 인권이 낮은 이란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란에서 여성은 남성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없고, 피트니스 시설도 마음껏 이용할 수 없다. 여성 언론은 탄압받아왔다. 2014년 페미니스트 월간지 ‘자난 이 엠루즈(Zanan-e Emruz, ’오늘의 여성’이라는 뜻)는 “반이슬람적·페미니즘적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출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여성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게 된다면 결국 목소리가 지워지게 될 겁니다. 이란 여성의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시린 에바디(왼쪽) 변호사가 2009년 8월 10일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연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와 함께하는 여성인권 특별 세미나’에 참석해 한국 여성인권 활동가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시린 에바디(왼쪽) 변호사가 2009년 8월 10일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연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와 함께하는 여성인권 특별 세미나’에 참석해 한국 여성인권 활동가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지난 5월 재선에 성공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개혁·개방 기조를 내세웠지만, 표현의 자유·성평등 확대는 “이루기 힘든 목표”라고 봤다. “이란 헌법에 의거한 대통령의 권한은 상당히 작아요. 고위 성직자들의 반대를 꺾지 못하죠. 로하니 대통령이 얼마나 개혁을 열망하고 있건 (이대로라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겁니다.”

‘이슬람이 여성 억압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 에바디는 “틀리다”고 단언했다. “이슬람을 몰라서 하는 얘깁니다. 이슬람은 여러 얼굴을 지닌 종교죠. 한 이슬람 문화권 안에서도 나라마다, 무슬림들마다 추구하는 바가 달라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여성이 운전대를 잡을 수 없지만, 파키스탄·방글라데시엔 여성 총리와 수상·장관이 있죠. (여성 억압은) 종교의 문제가 아닙니다. 종교의 수많은 부분 중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취하려는 독재 정부의 문제죠.” 

 

2012년 12월 12일 유럽의회가 수여하는 사하로프 인권상 시상식에 참석한 시린 에바디 변호사. 그는 당시 투옥된 이란의 여성 인권변호사 나스린 소투데 등 수상자들을 대신해 이 상을 받았다. ⓒEuropean Union 2012 - European Parliament. (Attribution-NonCommercial-NoDerivs Creative Commons license)
2012년 12월 12일 유럽의회가 수여하는 사하로프 인권상 시상식에 참석한 시린 에바디 변호사. 그는 당시 투옥된 이란의 여성 인권변호사 나스린 소투데 등 수상자들을 대신해 이 상을 받았다. ⓒEuropean Union 2012 - European Parliament. (Attribution-NonCommercial-NoDerivs Creative Commons license)

에바디는 지난 13일 세상을 떠난 중국 노벨평화상 수상자·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를 추모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모든 폭력과 검열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우리의 의무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류샤오보를 영원히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용기를 냈다는 이유로 투옥돼 병을 얻었습니다.”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 인권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의지를 보여 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 정부에 의해 가택 연금된 류샤오보의 아내가 어서 석방돼 출국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랍니다. UN이 발의한 국제인권협약도 비준하고, 필요하다면 국내법도 그에 맞춰 개정하길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가 부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겁니다.” 

그는 “이란이 민주화되는 날까지, 살아있는 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9년 이란 국민의 90%가 이슬람 혁명을 지지했습니다. 지금은 90%가 정부의 반대편에 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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