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조건·가족 직업·결혼 여부 등 

직무 무관한 개인정보 요구해

“채용 과정 모니터링 강화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해야”

 

신장, 체중, 결혼 여부, 가족의 최종학력과 현 직업.... 구직자에게 직무 내용과 무관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행위가 끊일 줄 모른다. 내로라하는 대기업·글로벌 기업들도 여전히 채용 과정에서 이를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채용 시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를 묻지 않는 것은 상식적이고 현대적인 행위”라며 “이를 고수하는 기업들은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직무 중심 채용을 하루빨리 도입하는 한편, 채용 과정의 프라이버시 침해나 차별을 막기 위해 정부가 모니터링과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채용 시 개인정보 요구, 왜 문제일까

지난 4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잡코리아, 스펙업 등 국내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채용공고 500건을 검토해봤다. 남영비비안, 에어서울 등 10곳이 구직자의 신체 사이즈 정보를 요구했다. 굿네이버스, 빙그레, 현대종합금속 등 가족의 출신학교·직장·직위 등을 묻는 곳도 15곳 이상이었다. 귀뚜라미그룹, 동아오츠카는 신체 사이즈 정보와 가족 정보를 모두 요구했다. 

 

동아오츠카의 신입, 경력직 입사지원양식. 구직자의 신체 정보와 결혼 정보, 가족사항을 묻고 있다. ⓒ동아오츠카 입사지원양식 캡처
동아오츠카의 신입, 경력직 입사지원양식. 구직자의 신체 정보와 결혼 정보, 가족사항을 묻고 있다. ⓒ동아오츠카 입사지원양식 캡처

채용 요건에 외모 조건을 포함하거나 신체 사이즈 정보를 요구하는 일, 결혼 여부를 묻는 일은 차별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7조 제2항은 “사업주는 여성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그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아니한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 조건, 그 밖에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반 시 제37조 제4항에 따라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특히 여성들이 심각한 외모 관리 압박에 시달리고, 실제로 여성 채용 시 신체 조건을 선발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으며, 결혼한 여성을 해고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 기업 문화를 고려할 때, 이런 채용 방식은 성차별로 이어진다”고 권박미숙 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는 말했다. 

구직자에게 가족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일도 채용 차별이라는 비판이 높다. 정부가 직무 중심의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확대하려는 이유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 때부터 600개 공기업·공공기관이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채용을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NCS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해외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관련 규제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미국의 경우 기업이 지원자에게 인종·종교·성별·국적·나이·신체장애 정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남영비비안의 신입, 경력직 채용 이력서. 구직자의 신체 사이즈 정보와 가족사항을 묻고 있다. ⓒ남영비비안 이력서 양식 캡처
남영비비안의 신입, 경력직 채용 이력서. 구직자의 신체 사이즈 정보와 가족사항을 묻고 있다. ⓒ남영비비안 이력서 양식 캡처

 

빙그레 입사지원양식. 구직자의 가족사항을 묻고 있다. ⓒ빙그레 온라인 입사지원양식 캡처
빙그레 입사지원양식. 구직자의 가족사항을 묻고 있다. ⓒ빙그레 온라인 입사지원양식 캡처

‘관행이며 직무와 유관’ 기업들

정부 “강제 권한 없어…기업 의지”

해당 기업 대부분은 ‘관행’ ‘직무와 유관한 정보’라고 해명했다. D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영업직을 채용할 때 신체적 조건을 볼 수도 있다. 가족 관련 정보도 참고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N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전부터 쓰던 이력서다. 판매 직원이 키가 작으면 좀 그러니까....”라고 말했다. 

향후 채용 시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기업도 소수지만 있었다. B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잘못된 부분임을 인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권고에 따라 수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G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구직자의 키, 몸무게, 가족 정보는 채용에 불필요하다. 하반기 채용부터 이런 것을 제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강제할 순 없지만, 기업 의지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창주 고용노동부 직업능력평가과 사무관은 “많은 기업이 구직자에게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가족 정보, 신체 사이즈, 출신지 등은 채용에 불필요한 정보다. 기업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아직 정부가 ‘블라인드 채용’을 민간부문에 강제할 권한은 아직 없다. 현재 공공부문 중심으로 도입 추진 중이다.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북, 교육, 컨설팅 등도 시작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고 어려운 ‘을’ 구직자들

“정부가 적극 조사해야”

한편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채용 과정을 조사해 이러한 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박 활동가는 “고용노동부가 전국 13여 개 고용평등상담실에 채용 과정 모니터링을 맡겨두고 형식적으로만 행정을 처리하고 있다. 기업이 ‘갑’, 구직자들이 ‘을’인 만큼 채용 과정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직접 신고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시민들의 모니터링과 활발한 신고도 중요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직접 적극적인 인지 조사 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은 앞서 ▲양성평등기본법을 개정해 여성가족부가 모니터링을 하거나 ▲채용서류에 업무수행과 직접 관계가 없는 용모, 키 등 신체 조건 정보를 기재할 수 없게 하고, 위반 시 벌금을 매기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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