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하라’는 말, 폭력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

가정폭력전과제도 공개·성평등 인권교육 필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전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른 30대 남성(지난 9일 대구에서 긴급체포), 옛 애인이 다른 남자와 만난다는 이유로 애인의 집을 찾아가 흉기를 휘두른 40대 남성(지난 10일 김해에서 긴급체포), 헤어진 애인이 다른 남자를 만나자 이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려 한 50대 남성(지난달 24일 성남에서 긴급체포), 말다툼 후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주검을 교회 화단에 버린 20대 남성(지난달 29일 청주에서 긴급체포).... 빈발하는 데이트폭력을 막으려면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5년부터 10년간 연인에게 살해당한 피해자가 1000여 명이다. 같은 기간 연인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4000여 명, 폭력 피해자가 7만3000여 명이다.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 수치스러워서, 혹은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해서 피해를 알리지 않은 경우도 많다. 홍영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예방지원센터장이 지난 14일 서울 은평구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열린 ‘2017년 제2회 전문강사 이슈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데이트 폭력은 재범 비중이 매우 높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05년부터 10년 동안 연인 간 살인·성폭력·폭행·상해 사건을 분석해보니, 가해자의 76.6%가 과거 유사 범죄로 처벌받은 전과자였다. 홍 센터장은 “영국의 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클레어법) 등 데이트 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데이트 폭력 피해자에게 ‘조심하라’는 메시지는 폭력 발생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데이트 폭력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여야 하며, 결국 데이트 폭력 예방교육은 성평등 인권교육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2017년 제2회 전문강사 이슈 포럼’이 열렸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지난 14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2017년 제2회 전문강사 이슈 포럼’이 열렸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평원(원장 민무숙)이 주최한 이날 포럼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젠더 감수성 키우기’를 주제로 진행됐다.  최기자 젠더교육연구소 ‘이제’ 부소장, 강동욱 동국대 법학과 교수 등 양평원 전문강사 100여 명과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 양평원은 젠더기반 폭력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이슈 포럼을 꾸준히 열 예정이다.

민무숙 양평원 원장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일상 속 여성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성차별적인 구조와 문화의 변화 없이는 예방될 수 없다”며 “이번 이슈포럼이 데이트 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젠더기반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의 확대 등 다양한 사회적 실천을 가속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