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7개월 동거녀 때려 숨지게 한 남자

법원서‘윤락여성 보살폈다’ 구속영장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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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4월 '미아리 텍사스촌 매춘여성을 위한 설명회'에 참가한 여성

지난 달 26일 임신 7개월의 동거 여성(27)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이모씨(29)에 대해 광주지법 김진상 판사는 영장기각 판결을 내렸다.

기각 사유는 “이씨가 한때 윤락업소에서 일했던 동거녀와 1년 넘게 살면서 극진한 정성을 쏟았다는 점을 참작했다”는 것.

피의자 이씨의 진술에 따르면 99년도에 송정리 매매춘 업소에서 일하던 여성의 빚 2천 만원을 갚아주고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동거녀는 알콜중독증세가 있어 술을 안 주면 집을 나가 술집을 드나들었다.

2월 19일 사건 당일 가출한 동거녀를 데리고 들어온 이씨는 동거녀가 집을 나갈 때 입고 있던 속옷을 안 입고 있다며 플라스틱 빗자루와 옷걸이 쇠기둥으로 얼굴과 허벅지를 심하게 때렸다. 새벽 3시 40분 경 일어나 보니 동거녀의 숨소리가 이상해 신고를 했지만 사망했다.

부검을 한 의사는 “하체를 절개하니 조직이 파괴될 정도의 상처를 입었고 피하출혈이 많았다”며 “몸이 약한 상태에서 구타로 인해 사망할 수 있다”고 구두로 소견을 밝혔다. 광주지검은 이씨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담당형사에 따르면 피의자가 동거녀를 윤락가에서 데리고 와 함께 지낸 1년 몇 개월간 알콜중독센터에 보낸 적도 있고 미용기술을 가르치겠다고 동사무소에 신청한 적도 있으며 영어, 수학을 가르쳐주기도 했는데 이같은 노력을 법원이 참작해 영장을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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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피의자가 동거녀를 윤락가에서 데리고 와 함께 지낸 1년 몇 개월간 알콜 중독 센타에 보낸 적도 있고 미용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했다는 것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살인사건의 경우 유력한 용의자에 대해 영장을 기각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지난해 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유순자씨는 1급 지체장애인으로 도주의 위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속 입건됐었다. 새움터 김현선 대표는 “살해당한 사람이 매춘여성이 아니었다 해도 영장을 기각했을까”라고 문제 제기한다.

매춘여성은 피해자이건 가해자이건 범죄와 연루되었을 때 불공평한 대우를 받기 일쑤라는 것이다.

영장기각 소식을 접한 한 광주시 시민은 “매춘여성은 죽일 만했다고 보는 처사”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검찰은 국립 과학 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시 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당해도 되는 사람’ 시선부터 바꿔야

매매춘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와 새움터 등 성매매 반대운동단체나 여성상담기관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매춘여성은 매매춘 지역을 벗어나서도 사람들의 편견을 견디지 못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수년 전 매춘업소에 빚을 갚아준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A씨는 사사건건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의 말과 폭력에 고통을 겪고 있다. 게다가 남편은 의처증도 심해 걸핏하면 “내 아이 맞냐”며 윽박질러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B씨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5백만원 빚을 갚아 준 남자는 결혼해서 사는 동안 거의 시종취급을 하며 잦은 구타와 욕설로 B씨를 괴롭혔다. 참다못한 B씨가 집을 나가겠다고 하자 남편은 “돈 갚으라”며 협박을 했다.

상담원들은 이번 동거녀 살해사건에서처럼 남자가 업소에서 여성의 빚을 갚아주고 동거나 결혼을 하는 경우엔 “내 소유물이다”라는 인식이 강해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번 광주 사건의 피의자 이씨는 ‘이전에도 폭력을 썼느냐’는 질문에 “여자가 술을 먹으면 때렸다”고 말했다.

남성들 “내 소유물이다” 폭력 예사

데리고만 살뿐 동반자로 인정 안해

새움터김현선 대표는 “매춘여성들이 동거나 결혼을 한 이후에도 가출하거나 술을 마시는 등 행실이 좋지 않다고 욕하는 경우가 많지만 상담자 입장에서 그것이 먼저였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매매춘 지역을 도망 나온 여성들이 살면서 얼마나 무시 당하고 의심 받으며 힘들게 살았으면 집을 뛰쳐나갔을까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김씨는 “많은 매춘여성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것을 꿈꾸지만 남자들은 ‘도와준다’는 의미로 데리고 살뿐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매매춘 업소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을 하는 경우에도 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심각하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비밀리에 살아야 하지만 ‘감추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빚이 있어 도망친 여성의 경우는 차용증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늘 노심초사다. 이들에게는 돈도 돈이지만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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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은 매춘여성이 범죄와 연루되어 법적 대응을 할 때의 경찰과 법원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군산 매매춘업소 화재사건이 났을 때 사건현장에 고스란히 놓여 있던 사망자들의 일기와 수첩을 입수하지 못했을 정도로 경찰의 수사는 미비했다. ‘군산시 윤락가 화재사건 대책위원회’에선 “만약 희생자가 매춘여성이 아니었더라도 사람이 5명이나 사망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그렇게 무성의할 수 있겠는가”라고 항의했었다.

수년 전 한 매춘여성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사건을 맡은 담당형사는 피해당사자의 진술은 듣지도 않은 채 주위 사람들의 말만으로 조서를 꾸몄다. 새움터에서 항의방문을 가자 경찰은 “행실이 나쁜 여자다. 당신들도 저 여자 말을 믿지 마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엔 모 지역 매매춘업소에서 도망 나온 여성이 애인 후배의 친구에게 강간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법원에서 재판관은 “당신은 윤락행위를 하는 사람인가?” “사건 당시 뭘 입고 있었나?” “강간 당한 뒤에 남자친구와 잤나?”라고 물었다.

한소리회 김미령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에선 매춘여성에겐 강간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말한다. 즉, 매춘여성을 ‘강간 당해도 되는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군사주의와 매매춘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 연대 CAMP에서는 “매춘여성을 다른 여성과 구분하고 그들의 몸을 다른 여성의 몸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매춘여성이 성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해도 ‘그런 일을 겪을 수도 있는 사람’으로 취급해 버린다는 것이다. 일명 ‘하수구론’이다.

‘행실 나쁜 여자’ 낙인… 사회 적응못해

사회적 인식 개선없이는 ‘인권’도 없어

부산 완월동 여관 화재사건이 일어났을 때 4명이 사망했음에도 바로 옆에선 여전히 매매춘 영업을 하고 있었다. 부산 여성의 전화, 한소리회 등은 경찰에 항의 방문해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뜻에서 오늘만이라도 단속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경찰은 “그런 여자들이 있어야 다른 여자들이 보호받는 거요”라는 말을 던졌다. 항의방문을 했던 사람들은 “당신 딸이 거기 가 있어도 그런 말 할 수 있겠냐”고 따졌지만 경찰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의식에서 ‘그런 여자들’에 대한 낙인은 쉽게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여성상담기관에선 군산 사건 이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말한다. 가출한 딸을 찾아달라는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부끄러워’ 신고조차 안 했던 가족들이 노예매춘 실상이 밝혀지면서 “내 딸이 저렇게 학대받고 있으면 어쩌나” 싶어 상담요청을 하는 것이다.

수년 전 서울 모 매매춘 지역에서 귀가 길 행방불명된 딸을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하는 아버지에게 친구들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지 뻔한데 망신당하지 말고 그만 찾아라”라고 충고(?)하는 내용이 방송에 공개됐었다.

군산 사건 공대위에선 “만약 피해자들이 감금되었던 상황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공감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한편 청주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청원군 지역유지의 노예매춘 현장이 발각되었음에도 해당 지역 주민들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포주를 두둔하는 분위기라고 전한다.

노예매춘이 잇따라 발각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한 편에선 성매매금지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매춘여성을 ‘더러운 여성’, ‘행실이 나쁜 여성’으로 낙인찍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매춘여성의 ‘인권’을 제대로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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