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서 졸지에 ‘무고녀’로

유흥업소 종사자가 아니었다면

피해자가 가해자 되진 않았을 것

평등한 사회는 편견 없는 시선부터

 

성폭행 혐의로 4차례 피소된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6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성폭행 혐의로 4차례 피소된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6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4일밤 16시간에 걸쳐 진행된 박유천 사건 관련 국민참여재판 선고가 있었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하고 성폭행으로 고소를 했다가 허위 사실로 무고를 했다고 기소가 된 형사재판이었다.

피해자는 순식간에 피고인이 됐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됐다. 배심원들이 평결을 내리기 위해 2시간쯤 기다린 시간을 제외하면 14시간 동안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피해자에게 그 시간의 절반은 가해자와 원해서 성관계를 해놓고는 앙심을 품고 고소를 했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고, 그 시간의 대부분은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가 피해자로 불리우는 과정이었다.

그 길고 지난한 시간, 피해자는 성폭행을 당했을 때처럼 무고로 몰려 수사를 받고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처럼 울지 않았다. 억울하고 불안해서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피고인 곁에서 덩달아 열이 났다. 괜찮다, 무죄가 날거다, 배심원들과 판사님들을 믿어보자…. 입으로는 이런저런 위로를 건네는데, 정작 변호사인 내 마음 한켠에 씹다뱉은 껌처럼 붙은 불안은 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유흥업소 종업원이었다. 소위 ‘나가요’라 불리는 ‘언니’였다. 수험생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업소를 한달에 한두번쯤 나간지 4개월쯤 됐을 때, 대학 입학금을 모으려고 일주일에 4일씩 나가기로 하고 새 업소로 옮긴지 열흘만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망설이다 애써 용기를 내 고소를 했다. 망설였던 이유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믿어줄까, 하는 절망 때문이었다. 변호사의 시선에서는 충분히 수사를 요청하고 다퉈볼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그런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었던 피해자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피해자는 사건 직후 경찰에 알렸다가 결국 그날 신고를 철회했다. 얼마후 용기를 내서 고소를 했는데, 믿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피해자에서 졸지에 ‘무고녀’가 됐다. 역시나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이유는 국민 보편의 시각에서 볼 때, 피해자가 업소 종사자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이 법적으로 강간죄로 평가받진 못하더라도 무고죄로 평가받을 일이었을지 묻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이 사건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들은 ‘다르게’ 바라보지 않으면 무고가 아니라는, 판단을 해주었다. 만장일치로 결정됐고 재판부도 그러하다는 주문이 낭독되던 순간이 되서야 피해자가 비로소 울음을 터트렸다.

똑같은 사안도 다르게 바라보면 다른 것이 된다. 비싼 술값에는 술을 따르고 기분을 맞춰주는 접객원의 인격값이 포함돼 있지 않다. 유흥업소 종사자라고 해서 밀폐된 공간에 가해자를 따라 들어가거나 성폭행의 순간 매우 완벽한 대응을 했어야 성폭행이 되는 것이 아니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는 편견 없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국민의 정서는 법조계보다 건강했다. 이제 느리게 걷는 또 느리게 걸어야 하는 법이 국민의 곁으로 또 한 발 내딛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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