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에-

한하운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10년 만의 이사를 준비하면서 버릴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란다. 이제는 필요 이상의 물건을 지닌다는 것이 부끄럽다. 한 달간 책과 물건들을 기부하며 정리해나갔다. 쉬지 않고 정리하다 보니 병날 거 같아 지난주에 길을 나섰다.

섬학교라는 인문학 공부 여행길은 세 번째였다. 일제 강점기 때 생긴 소록도는 발길 하나 애닯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시인 한하운 시비 앞에서 나는 21세의 내 젊은 날을 떠올렸다. 당시 가보지 못한 전라도 길을 한하운의 시로 상상하던 기억이 났다.

그후 10년이 흘러서야 처음 붉은 황톳길이 어떤지 실제로 와 닿았다. 일제 강점기의 그 먼 길을 걸어갔다는 것만으로 가슴 먹먹했다. 수세미 같은 해라니…. 이 눈부신 비유는 지금도 새롭다. 구멍이 숭숭 다 뚫려버린 해는 얼마나 슬픈 건지. 문둥이로 사는 인생을 빛나는 언어로 보여주던 시인은 시 ‘보리피리’를 노래해 애절한 슬픔을 달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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