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남편에게 살해당한 베트남 이주여성

추모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베트남 출신 부씨

7년 뒤 어린 자녀 두 명이 함께 있던

집안에서 시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숨져

남편·가족에 의해 사망한 결혼 이주여성

공식 통계자료 없어 실태 드러나지 않아

 

 

2011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이주여성 추모제. 이주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은 베트남 이주여성 황모씨를 비롯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6명의 이주여성을 기렸다. ⓒ장철영 기자
2011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이주여성 추모제. 이주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은 베트남 이주여성 황모씨를 비롯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6명의 이주여성을 기렸다. ⓒ장철영 기자

 

2010년 7월 9일. 스무 살이던 베트남 여성 탓모씨는 한국에 입국한 지 7일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됐다. 탓모씨는 그해 2월 7일 중개업체 소개로 한국인 장모(당시 46세)씨를 만나 하루 만에 결혼을 결정하고 열흘 뒤 호치민의 한 식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7월 1일 혼인동거비자를 받은 직후 한국에 왔다. 정신질환을 숨기고 결혼한 남편 장씨는 어린 아내를 심하게 구타한 후 살해했다. 이 사건 직후 결혼이주여성들은 “내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고 억압받는 현실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탓모씨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외쳤다. “나도 그 베트남 이주여성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17년 6월 2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탓모씨 추모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베트남 여성 부모(31)씨가 시아버지(83)에게 살해당했다. 10여 년 전 한국에 와 두 자녀를 낳고 기른 부씨는 미취학 자녀 두 명이 함께 있던 집안에서 시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숨졌다.

2015년 말 현재 한국에 온 결혼이민자는 15만1608명. 이 중 여성이 84%를 차지한다. 하지만 탓씨와 부씨처럼 보다 나은 삶을 살겠다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왔다가 폭력피해를 겪는 경우도 상당하다. 다누리콜센터에 최근 3년간 접수된 폭력피해 상담 건수는 4만7946건(중복상담 포함)으로 전체 35만건의 상담 중 11.1%에 달한다.

남편과 가족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거나 살해당하는 이주여성 사건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2007년 3월 베트남 여성 레모(22)씨는 한국 남성(34)과 결혼한 지 8개월 만에 사망했다. 임신한 몸으로 집에 갇혀 지내다 탈출하기 위해 9층 아파트에서 커튼으로 만든 밧줄을 타고 내려오던 중 추락했다. 같은 해 6월엔 19살의 베트남 여성 후모씨는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한국인 남편 장모(47)씨의 구타로 갈비뼈 18대가 부러진 채 사망했다.

2011년 5월 베트남에서 온 황모(25)씨는 출산한 지 19일 만에 남편에 의해 살해당했다. 남편은 아기가 보는 앞에서 두 개의 칼로 황씨를 52차례 찔렀다. 2014년 8월에는 캄보디아에 온 여성 B(24)씨는 95억원의 보험금을 노린 남편 이모(47)씨에 의해 사망했다. B씨는 당시 임신 7개월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근 보험금을 노린 위장 살해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정황은 의심의 여지가 충분하나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재판부 결론이었다. 그리고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고 세상을 떠났을지 모를 수많은 이주여성들이 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주여성 사망사건이 연이어 세상에 알려지자 정부는 국제결혼 중개업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신부쇼핑’ 식의 집단 맞선과 지참금을 지불하는 ‘매매혼’ 방식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이 당하는 폭력 문제의 근본 원인은 우리 안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는 “현재 이주여성 폭력 실태는 물론이고 여성폭력과 살해 사건 전반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계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당시 여성들이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외쳤지만 한국남성들은 오히려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고 반박했다”면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시각, 성차별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주여성에 대한 시각 역시 달라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 간 국내에서 사망한 이주여성 명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언론 보도된 사건을 집계한 자료로 실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레*** (2007년 3월 대구, 베트남)

임신한 몸으로 갇혀있던 아파트 9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떨어져 사망

후*** (2007년 6월 충남 천안, 베트남)

입국 한 달만에 남편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해 갈비뼈 18대 부러져 사망

쩐*** (2008년 3월 경북 경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만에 14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

체** (2010년 3월 강원 춘천, 캄보디아)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수면제 먹이고 방화해 사망

탓**** (2010년 7월 부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만에 조현병 환자인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강** (2010년 9월 전남 나주, 몽골)

가정폭력 피해 몽골여성 E씨를 보호하려다 E씨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황** (2011년 5월 경북 청도, 베트남)

출산한지 19일 만에 남편에 의해 칼로 난자당해 사망

팜*** (2012년 3월 강원 정선, 베트남)

조현병 남편에 의해 사망

리** (2012년 7월 서울 강동구, 중국)

평소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김** (2012년 7월 강원 철원, 중국)

남편의 폭력으로 4일 동안 뇌사 상태로 있다가 사망

응*** (2014년 1월 강원 홍천, 베트남)

남편이 목졸라 살해

전*** (2014년 1월 경남 양산, 베트남 )

남편이 목졸라 살해

서** (2014년 7월 전남 곡성, 베트남)

남편이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

아*** (2014년 8월 충남 천안, 캄보디아)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교통사고를 위장해 살해

김** (2014년 11월 경기 수원, 중국)

동거남이 살해

응*** (2014년 11월 제주, 베트남)

한국 남성이 살해

누*** (2014년 12월 경북 청도, 베트남)

남편이 살해

이** (2015년 12월 경남 진주, 베트남)

이혼 후 자녀 면접권을 가진 전남편이 아이와 함께 살해

부*** (2017년 6월 서울, 베트남)

시아버지가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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