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안부’ 특별전 참가한 강애란 작가
“쉬워 보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풀래야 풀 수 없는 게 여성의 문제죠.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 ‘억울함의 보자기’를 꼭 풀 수 있도록 꾸준히 작업을 통해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3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특별기획전 ‘하나의 진실, 평화를 향한 약속’ 전시장에서 강애란 작가를 만났다. 이번 전시에서 강 작가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각국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을 인터뷰한 영상 두 편과 사진 작업 6점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 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으로 옮겨져 전시된다.
그는 “작가로서, 특히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몇 년째 꾸준히 나눔의 집을 다니고 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은 너무 불행하게 사셨는데, 일본은 점점 뻔뻔해져 가니 십시일반 힘을 합해 한을 풀어 드리고 싶었어요. 하루빨리 할머니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방향으로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확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강 작가는 2011년부터 여성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초기엔 보자기 모양의 오브제 도자기, 쇠 등을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너무 어려운 문제들. 풀고 싶지만 연약해 보이지만 풀 수 없는 문제들”을 상징하는 작업이었다. 이후 보자기 속 내용물인 ‘책’에 천착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나혜석, 김일엽, 최승희, 윤심덕 등 20세기 초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아를 찾고자 했던 여성들과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지난해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자기만의 방’은 이런 시도의 종합이었다.
여성 작가가 드물던 시절 미술계에 입문해 30여 년간 활동해온 중진 작가인 그가 체감하는 미술계의 성평등 지수는 낮다. “30여 년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여성 작품 활동엔 많은 제약이 따르죠. 결혼, 출산, 경제적 이유 등으로 능력 있는 젊은 여성 작가들이 좌절하는 걸 많이 봤어요.” 한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미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여러 미술계 인사들이 해고됐고 사람들도 서서히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진상들’이 있죠. 큐레이터랍시고 젊은 애들에게 ‘내가 너 키워줄게’ 하는 사람들. 그래도 분위기가 바뀌고 있어요. 더 나아질 거라고 봐요.”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교수인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게 하는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악의 학생은 선생을 그대로 모방하는 학생이에요. 기술적 발전만 강조하는 현 입시제도 하에선 사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 안타깝죠.” 그는 학생들이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다른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며 시야를 확장해 창의적인 작업을 구상하길 바란다. ‘이런 부분이 좋다’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등 구체적 격려도 중요하다. “탁상공론에 그치면 안 되죠. 학생들이 직접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주고 여러 피드백을 받도록 유도합니다. 경력도 쌓고, 작가로서 자립할 방도도 찾아볼 수 있죠.”
“역사를 담은 작업,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과 상상력의 결합”에 주목해온 강 작가는 오는 9월부터 덕수궁에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고종이 읽을 법한 책과 외교 문서. 서양 문물들로 채운 고종 황제의 서재를 재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