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안부’ 특별전 참가한 강애란 작가

 

“쉬워 보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풀래야 풀 수 없는 게 여성의 문제죠.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 ‘억울함의 보자기’를 꼭 풀 수 있도록 꾸준히 작업을 통해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3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특별기획전 ‘하나의 진실, 평화를 향한 약속’ 전시장에서 강애란 작가를 만났다. 이번 전시에서 강 작가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각국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을 인터뷰한 영상 두 편과 사진 작업 6점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 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으로 옮겨져 전시된다.

 

강애란,  (2015)
강애란, <판타지아> (2015) ⓒ여성신문

그는 “작가로서, 특히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몇 년째 꾸준히 나눔의 집을 다니고 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은 너무 불행하게 사셨는데, 일본은 점점 뻔뻔해져 가니 십시일반 힘을 합해 한을 풀어 드리고 싶었어요. 하루빨리 할머니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방향으로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강애란,  (2015)
강애란,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 (2015) ⓒ여성신문

지난 30여 년간 확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강 작가는 2011년부터 여성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초기엔 보자기 모양의 오브제 도자기, 쇠 등을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너무 어려운 문제들. 풀고 싶지만 연약해 보이지만 풀 수 없는 문제들”을 상징하는 작업이었다. 이후 보자기 속 내용물인 ‘책’에 천착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나혜석, 김일엽, 최승희, 윤심덕 등 20세기 초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아를 찾고자 했던 여성들과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지난해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자기만의 방’은 이런 시도의 종합이었다. 

 

2016년 10월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강애란 작가의 개인전 ‘자기만의 방’ ⓒ아르코미술관 제공
2016년 10월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강애란 작가의 개인전 ‘자기만의 방’ ⓒ아르코미술관 제공

여성 작가가 드물던 시절 미술계에 입문해 30여 년간 활동해온 중진 작가인 그가 체감하는 미술계의 성평등 지수는 낮다. “30여 년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여성 작품 활동엔 많은 제약이 따르죠. 결혼, 출산, 경제적 이유 등으로 능력 있는 젊은 여성 작가들이 좌절하는 걸 많이 봤어요.” 한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미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여러 미술계 인사들이 해고됐고 사람들도 서서히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진상들’이 있죠. 큐레이터랍시고 젊은 애들에게 ‘내가 너 키워줄게’ 하는 사람들. 그래도 분위기가 바뀌고 있어요. 더 나아질 거라고 봐요.”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교수인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게 하는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악의 학생은 선생을 그대로 모방하는 학생이에요. 기술적 발전만 강조하는 현 입시제도 하에선 사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 안타깝죠.” 그는 학생들이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다른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며 시야를 확장해 창의적인 작업을 구상하길 바란다. ‘이런 부분이 좋다’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등 구체적 격려도 중요하다. “탁상공론에 그치면 안 되죠. 학생들이 직접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주고 여러 피드백을 받도록 유도합니다. 경력도 쌓고, 작가로서 자립할 방도도 찾아볼 수 있죠.” 

“역사를 담은 작업,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과 상상력의 결합”에 주목해온 강 작가는 오는 9월부터 덕수궁에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고종이 읽을 법한 책과 외교 문서. 서양 문물들로 채운 고종 황제의 서재를 재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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