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설치미술로 ‘위안부’ 문제 세계에 알려온 이창진 작가

 

“일본은 불쌍한 나라잖아요. 그런데 왜 안 좋은 이야기만 하나요?” 이창진 작가가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면서 가장 많이 접한 반응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미국을 포함해 많은 세계인들은 일본을 ‘패배자’, ‘원폭 피해자’로 기억하게 됐어요. 일본의 역사에 대해선 잘 모르죠.” 그가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결심한 까닭이다. “이것은 단순한 한일 간 감정싸움이 아니라, 잊혀진 전시 성범죄이자 여성인권 문제라는 걸 알려야 하니까요.” 

3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특별기획전 ‘하나의 진실, 평화를 향한 약속’ 전시장에서 이창진 작가를 만났다. 20여 년째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2015년 북서울미술관 전시 이후 2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이창진,  (2008)
이창진, <위안부 모집> (2008) ⓒ여성신문

이 작가는 2000년대 후반부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예술가로 이름났다. 이번 전시에선 ‘위안부 구함(Comfort Women Wanted)’ 광고 포스터, 한국·중국·인도네시아 등 각국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인터뷰 영상 등 그의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는 “잊혀진 역사”를 캐내기 위해 2008년부터 4년간 한국, 대만, 일본 등 7개국을 다니며 피해생존자들을 만났다. 수집한 문서, 사진, 증언을 토대로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을 제작, 지난 5년간 미국, 한국, 중국 등에서 전시했다. 전시 성노예의 존재를 증언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자 UC버클리, 에모리, 조지아주립대 등 미국 대학 강단에도 섰다. “제대로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는 예술가를 넘어 역사학자가 돼야” 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와 군이 조직한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입니다. 인신매매는 세계적으로 두 번째로 급성장하는 비즈니스이기도 하죠. 전시 성폭행은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지고, 전쟁 무기이자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고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 향상과 교육이 절실합니다.” 

 

이 작가의 포트폴리오엔 국가주의, 세계화, 정체성(identity), 젠더 등 사회·정치 현안을 다룬 작품들이 빼곡하다. 특히 ‘여성’은 그의 예술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위안부’ 프로젝트 외에도, 한국 포르노 속 여성과 실제 여성의 일상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리얼 코리안’, 도교(道敎)의 여신들과 한국의 여성 샤먼 등을 다룬 ‘신들의 지도’ 등 작품을 선보였다. 요즘은 “여성의 문제와 잊혀져 가는 전통 관습을 페미니즘과 문화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는 작품”을 제작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에선 여성, 유색인종 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중요한 문제도 떠올랐어요. 한동안 인기 없던 페미니즘이 이제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는 “여성 작가 대부분이 지금도 직간접적인 편견과 차별을 경험한다. 미국 미술계에선 흔히 ‘아직도 여성 작가들은 최소한 남성의 3배 이상 노력해야만 겨우 남성들과 비슷한 대우와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가 생각하는 ‘걸작(masterpiece)’이란 “예술의 근본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는, 현재를 넘어 미래를 보게 하는 작품”이다.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과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그는 덧붙였다. “모든 예술은 그 시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죠. (...) 우리의 삶과 역사 속, 말하기 불편한 것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예술의 소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여성가족부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국립여성사전시관)이 공동 개최했다. 서울 전시 이후 전북 전주(7월19일~8월5일), 대전(8월10~19일), 대구(8월23~9월2일) 순으로 전시를 이어간다. 전시 기간 중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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