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아동복 쇼핑몰 화보 속 여아 모델 성적 대상화 심각

인형처럼 수동적 묘사하고 젠더 고정관념 투영해

여성혐오 디자인 아동 의류 팔기도

 

요즘 아동복 쇼핑몰 화보들 중엔 여아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이미지가 적지 않다.
요즘 아동복 쇼핑몰 화보들 중엔 여아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이미지가 적지 않다.

분홍빛 볼터치와 눈화장, 잡티 없는 흰 피부, 마르고 긴 팔다리, 멍한 표정, 살짝 벌린 입술.... 국내 인기 온라인 아동복 쇼핑몰 화보 속 여아들의 모습이다. 8~12세의 어린 여성 모델들은 “살아 숨 쉬는 인체라기보다 수동적인 인형에 가까워 보인다”. 

“평범한 아이들은 떠들고 뛰고 넘어지고, 감정도 변화무쌍하지요. 그런데 아동 모델들은 하나같이 감정 없는 예쁜 인형처럼 꾸며 놓아 보기 불편해요.” 10살배기 딸을 둔 주부 송하나(38) 씨의 평가다. 부산 사는 주부 김모(33) 씨도 “요즘 아동복 쇼핑몰 모델들을 보면 위화감이 든다. 깡마른 애들, 다 큰 아가씨처럼 꾸민 애들이 자꾸 모델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인기 아동복 쇼핑몰엔 아이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이미지가 가득하다. 몸매가 드러나는 의상을 입은 여아 모델들이 카메라 앞에서 부자연스럽게 제 몸을 비틀기 일쑤다. 원피스, 수영복, 레깅스 등을 홍보하면서 ‘각선미’ ‘뒤태’를 강조하는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제품 홍보 문구도 문제다. “하체통통 아가씨들 군살 커버해주는 레깅스”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원피스” “날씬하고 키 커 보여요” “여리여리해 보이는 블라우스” 등 아이에게마저 특정한 미의 기준을 강요하는 표현이 많다. “산뜻하고 여성여성한 컬러” “소녀답게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여자아이니까 사랑스럽게” 등 젠더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표현들도 단골 멘트다. 

심지어 여성혐오적이거나 부적절한 디자인의 아동복을 파는 쇼핑몰도 있다. ‘가슴 만져도 돼?’ ‘여자들은 No라고 말하는 남자들에게 Yes한다’ 따위의 문구를 새긴 옷을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송 씨는 “그렇지 않아도 외모지상주의, 외모 비하가 만연한 한국 사회인데, 아이들마저도 화장한, 키 크고 마른 아동 모델의 이미지를 보면서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네’ ‘저런 게 예쁜 거구나’ 같은 생각을 할까봐 걱정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엄마들이 나서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불매운동에 나설 필요도 있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A 쇼핑몰 관계자는 여성신문에 “(풀메이크업, 몸매를 강조하는 포즈 등이) 요즘 글로벌 트렌드”라며 “해외 유명 브랜드나 편집샵들도 이런 느낌의 카탈로그를 제작·배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말 그럴까? 베네통 키즈(Benetton Kids), 보보쇼즈(Bobo Choses), 망고 키즈(Mango Kids), 자라 키즈(Zara Kids), 미니로디니(Mini Rodini) 등 해외 유명 아동복 브랜드의 S/S 카탈로그에선 진한 화장을 한 모델도, 몸매를 강조한 연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다양한 인종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화보, 마르지 않은 모델을 기용한 화보가 적지 않았다.

 

해외라고 문제적 광고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5년 호주의 댄스복 브랜드 ‘캘리포니아 키시즈(California Kisses)’의 광고는 10대 여아 모델들의 몸매를 강조하며 ‘Pop That’(여성의 처녀막을 파괴하다, 즉 성 경험이 없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뜻하는 속어)이라는 문구를 썼다. 소비자들이 항의하며 불매 운동을 펼치려 하자, 업체는 이 문구를 모든 홍보물에서 삭제했다.

 

여아를 성적 대상화한 광고로 지목된 California Kisses의 2015년 댄스웨어 광고 ⓒCalifornia Kisses
여아를 성적 대상화한 광고로 지목된 California Kisses의 2015년 댄스웨어 광고 ⓒCalifornia Kisses

B 쇼핑몰 관계자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이들을 성인 여성처럼 꾸민 이미지에 대한 호응, 수요가 있다는 것”이라며 “저희는 이번 기회에 비판을 경청하고 개선 노력하겠지만, 애초에 한국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 성별 고정관념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신문의 취재 이틀 뒤, B쇼핑몰은 비키니와 래시가드를 입은 여아 모델의 몸매를 강조하는 화보를 새로이 공개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