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보다 못한 그들
여고생보다 못한 그들
  •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 승인 2017.06.27 13:46
  • 수정 2017-07-12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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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민주주의 구현 위해 모인

여성들 성추행 대상으로 보는

‘한남충’들과 그들 편든 ‘한남’들

21세기 대한민국 슬픈 현주소

 

2016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총구하는  ‘송박영신’ 10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구속’을 외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2016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총구하는 ‘송박영신’ 10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구속’을 외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저는 이 나라의 여성 청소년입니다. 저는 촛불집회도 매주 나갔고, 이 시대에 깨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한 강연회에서 만난 여고생의 말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우리나라에도 희망이 있음을 이 여고생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학생이 뭘 아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인에게 갖다바친 게 민주주의를 유린한 범죄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무슨 대단한 철학이 필요한 건 아니리라.

갑자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마마,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절을 하던 박사모 회원이 생각난다. 여고생도 뻔히 아는 상식을 외면한 채 대통령을 옹호하는 박사모들은 나이와 사고력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걸 아주 잘 보여준다. 박사모야 하루이틀 된 건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고 해도, 또 다른 그룹의 행동은 분노가 치민다. 도대체 어떤 행동인지 아까 그 여고생의 말을 들어보자.

“제가 촛불집회에 나갔을 때 성추행을 몇 번이나 당했습니다. 제 친구들도 다 그런 경험을 몇 번씩 했다고 합니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는 2008년 광우병 시위 이후 8년 만에 열린 대규모 집회였다. 집회를 하면서 광장에 모인 이들은 행여 폭력 사태가 일어날까봐, 그래서 권력이 우리를 탄압할 빌미를 줄까봐 굉장히 걱정을 했다. 흥분한 나머지 도에 지나친 행동을 하는 이가 있을 때마다 시민들이 뜯어말린 것도 그런 연유였다. 덕분에 100만이 넘는 대규모 집회인데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폭력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추악한 성추행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비단 그 여고생만의 얘기는 아니다. 아래 언론 보도를 살펴보자.

 

-지난 12월 17일 제8차 주말 촛불집회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주말집회 당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인근 집회 현장에서 행진하던 20대 여성을 따라다니며 몸을 밀착시키고 신체 일부를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광화문 성추행범 한 두 명이 아니었다. 가방 메고 있었는데도 외투 안으로 손이 들어왔었다.”... 집회 현장에서는 어린 아이의 얼굴을 “예쁘다”며 쓰다듬거나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등 각종 성추행이 발생했고, 트위터에는 ‘오늘 광화문에 혼자 시위하러 간다. 가서 여고생들 구경하면서 스트레스 풀 수 있겠다.... 가서 고딩들한테 접근해야겠다’ 등의 성범죄를 예고하는 듯한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의를 외치기 위해 모인 촛불집회에 성추행범이 우글우글했다니, 이쯤 되면 그들이 말하는 정의가 어떤 정의인지 의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건수가 적다면 “촛불의 본질을 흐리기 위한 위장투입된 박사모의 만행”으로 몰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피해 사례가 너무도 많다. 더 어이없는 건 피해 여성들이 성추행 경험을 얘기했을 때 다른 이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아래 또 다른 언론 보도를 보자.

 

-신성한 촛불을 흐리는 전형적인 물타기수법이네. 사주한 냄새가 진동한다 (lc28****)

-이때다 싶어 기어나와 분탕치는 김치녀 (grey****)

-메갈 물타기 쩌네 (evan****)

 

제대로 된 사회라면 성추행범들에게 욕이 쏟아졌어야 맞다. “이 중요한 시기에 왜 그런 추악한 짓을 하느냐고, 너희는 촛불을 들 자격이 없다.”

그리고 집회 와중에 성추행이 벌어지는지 엄중한 감시가 이뤄져야 했다. 성추행의 위험이 줄어들어야 여성들이 마음놓고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외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다른 말을 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왜 그런 선동을 하느냐고. 그러니까 남성들에게 피해여성들의 하소연은 ‘물타기’요 ‘선동’에 불과했다.

남성들이 가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피해자를 탓하는 게 한두 번 보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해도 너무했다. 참된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해 모인 여성들을 성추행 대상으로 보는 ‘한남충’들 그리고 그 ‘한남충’을 편드는 ‘한남’들. 21세기 대한민국의 슬픈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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