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안과 밖의 여성』 펴낸 김경희 한림대 교수

한국 저널리즘 속 젠더 문제 파고들어

신문기자 10명 중 3명만 ‘여성’

공영방송 여성기자는 13.5% 뿐

중년 남성 앵커 곁엔 늘 20대 여성

40년 지나도 상황 달라지지 않아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TV뉴스는 중년 남성 앵커와 젊은 여성 앵커가 짝을 이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앵커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대부분은 50~60대 남성 앵커가 그 날의 메인 뉴스를 소개하고 20대 여성 앵커는 그 뒤를 따른다. 2017년 현재도 이 공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미디어에서 여성은 상징적 소멸 상태”라며 뉴스 속 여성은 현실보다 더욱 과소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앵커 뿐 아니라 여성기자가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성기자의 3분의 1 수준이고, 여성 간부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취재원 10명 중 남성은 7명, 여성은 3명 뿐이고요. 뉴스 뿐 아니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여성 진행자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여성의 상징적 소멸 상태죠.”

김 교수는 최근 연구서 『뉴스 안과 밖의 여성』을 출간했다. 뉴스 생산에서부터 재현, 소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성 문제를 총체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뉴스를 만드는 생산자로서의 여성 뿐 아니라 뉴스의 소비자이자 뉴스에 재현된 대상으로서 여성에 주목했다. 뉴스 생산과 재현이 가지는 관계, 뉴스 재현이 뉴스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와 기존 연구들의 입장도 정리했다.

김 교수는 기자 출신 학자다.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일보에 입사해 여론조사 보도를 거쳐 인터넷 뉴스를 기획, 편집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석박사를 마친 후 학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언론사 내부의 젠더 문제는 늘 그의 관심사였다. 김 교수는 자신이 겪고 후배들이 겪고 있을 한국 저널리즘의 젠더 문제를 다양한 연구물과 통계 자료를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뉴스 생산 조직 종사자들의 실제 체험 수기와 언론사 간부들의 익명 인터뷰, 그리고 뉴스 소비자들과의 심층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다. 뉴스 생산자로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배제 기제, 소비자로서 여성이 느끼는 솔직한 심정이 생생히 실려 있다. 실증적 자료로 뉴스 생산자로서 여성이 겪는 차별의 현주소를 추적한다는 점에서 연구서지만 ‘기자 버전 82년생 김지영’으로 이름 붙일 만하다.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책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5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김 교수는 “기사와 연구물, 통계 자료를 통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사회 속 초혼 연령, 결혼관, 교육, 여성의식, 직업 현황 등의 항목별로 여성의 삶을 살펴봤다”며 “자료들이 방대하고 시간이 지날 때마다 통계 자료를 업데이트해야 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책 준비를 시작한 게 5년 전”이라고 말했다. “뉴스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고위직에 오른 여성들이 늘어났지만 오히려 역차별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유리천장’이 깨졌다는 얘기가 많은데 실제로는 몇몇 엘리트 여성의 지위만 올라갔을 뿐 전체 여성의 지위는 올라가지 않았어요. 아직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 수준이고 성별 임금격차도 심각하잖아요. 사회와 뉴스는 분리해 생각할 수 없어요. 언론사 내부 젠더 문제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해요. 그래서 40년간 여성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봐야 했어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아직 낮다. 하지만 느리지만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널리즘 안에서 여성의 지위 변화는 더욱 더디다. 한국기자협회 발표를 보면 신문기자 10명 중 3명만 여성에 그친다. 19개 언론사를 조사한 결과, 보직간부를 맡고 있는 여기자는 평균 2.3명 수준이었다. 여성 보직간부가 없는 언론사도 5곳에 달했다. 공영방송 여성 기자는 13.5%로 더 적다. 여성기자의 숫자는 늘고 있지만 중견 여기자로 성장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셈이다.

“언론사 간부들을 인터뷰해보니 여성기자에 대한 평가가 좋았어요. ‘능력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여성과 함께 일하기 껄끄럽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게다가 아직까지 취재원이 남성이 많고, 남성기자와 남성 취재원 사이엔 남성적 유대관계가 형성돼요. 여기서 고급정보가 오고가는 거죠. 인맥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리잡기가 더 어려운 거죠.”

김 교수는 여성기자가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언론사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젠더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젠더가 다양해지면 창의적인 사고가 나오고 이를 통해 조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평등한 뉴스 제작을 위해선 기자들 스스로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들부터 틀에 박힌 기존 관행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모니터링을 해보면 미혼모 관련 뉴스를 제작할 때 아기를 안고 창밖을 바라보는 여성의 뒷모습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미혼모에 대한 선입견이 그대로 반영된 영상이죠. 마감 시간에 쫓겨 기존 영상 자료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요. 이러한 관행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바꿀 수 있지만 우선은 ‘문제적’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어야겠죠. 그래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해요. 젠더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의무화하거나 이런 교육을 하는 방송사엔 재승인 시 가점을 주는 식의 제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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