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실태조사·관련법 개정 과제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하 여장연)이 서울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를 15일 개소했다. 이로써 지난 달 문을 연 부산, 대구, 전주에 이어 4번째로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가 마련됐다. 특화된 여성장애인 성폭력 전문상담소 개설은 여성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여성장애인 성폭력을 예방, 근절하여 궁극적으로 피해여성장애인을 위한 대책마련과 여성장애인의 인권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각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 및 지원활동, 예방활동과 함께 관련법 개정 등 성문화 개선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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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인의 경우 성폭력 발생시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해 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경제적 이유 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 등으로 인해 한층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7년간 지속적으로 마을주민 7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결과 여아를 출산하고,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강릉의 정신지체 여성 K양의 사례가 이러한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실시한 ‘여성장애우 전국실태조사’(1997)에 의하면 여성장애인의 15.9%가 성적인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성희롱, 성추행, 강간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정신지체 여성을 포함시킬 경우 성폭력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 실태 파악을 주목적으로 한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성폭력의 실태를 알아보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아직까지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정부나 민간차원의 조사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여장연이 최근 여성단체와 장애인단체 등에 접수된 40건의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강간이 29명으로 가장 많았고, 가해자가 주변 사람인 경우(37명), 시설 내에서 피해를 당하는 경우(9명)가 많아 성폭력이 생활 근거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가해방법은 강제력 사용(15명), 친분관계 이용(14명)으로 나타났다. 발생빈도 역시 수 차례에 달하는 경우(30명)가 압도적으로 많아 여성장애인 성폭력 문제가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장애인성폭력상담소 개소와 함께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 실태 조사, 성폭력 관련법 개정·구체적 시행령 마련을 과제로 꼽는다.

여장연 이예자 상임대표는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피해방지를 위한 첫 단계로써 성폭력 피해실태가 파악돼야 한다”면서 “정부차원에서 실시될 예정인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는 성폭력 피해부분을 함께 조사하는 것도 고려돼야 하며 양적인 조사통계와 함께 피해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피해 상황과 결과, 대처방법에 대한 심도 있는 질적인 연구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1994년 제정된 성폭력 특별법에는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이 삽입되고 98년 개정된 조항에는 시설여성장애인인 경우 친고죄가 폐지되는 등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시행령이 없어 실제로 피해 여성장애인이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하여 조창영 변호사는 “정신장애로 인하여 판단능력이 미약하거나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여성을 성폭행했을 때에도 비장애 여성과 똑같은 정도의 폭행·협박 수단을 구성요건으로 할 수 없다”면서 “범죄구성 요건을 완화해 성폭력범을 좀더 쉽게 처벌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특히 성폭력특별법과 함께 정신지체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인 일반 형법 제302조(심신미약자에 대한 간음)에 대해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는 부분을 개정하고, 수사 실무상 위계, 위력의 입증 없이 법 적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조사 과정에 진술 보조자를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02)3675-4466, 부산(051)583-7736, 대구(053)637-6057, 전주(063)286-1366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