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슥한 밤, 모르는 사람에게

당해야 강간? 사귀는 남자가

데이트강간범 될 수도 있다

동의 없는 섹스는 강간일뿐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에서 데이트강간에 대해 다뤘다. 해당 프로그램에 데이트강간 피해자들이 나와 증언했는데, 내용이 자못 충격적이다.

A씨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 오늘 100일인데 섹스 안 해?’ ‘모텔에 왔는데 안 해? 돈 아깝게.’ ‘맛있는 식사를 사줬는데 너는 그거 하나 안 해줘?’ 이런 식으로 데이트강간을 당해왔다.”

게다가 그 남자가 여성의 반응에 무관하게 사정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바람에 A씨는 자신이 ‘나무막대기’가 된 것 같았으며, ‘빨리 끝내라’는 마음으로 참고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 역시 자신이 고깃덩어리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같이 여행을 가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이분들은 왜 거절하지 못했느냐고. 하지만 사귀는 사이에 거절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남자를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어요.” “성관계를 싫다고 해도 되는지 몰랐어요.” 심지어 자신이 싫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남자가 그걸 무시하기도 했단다. “싫다고 말하면 장난인 줄 알고 계속했어요.” “중간에 싫다고 얘기한 적도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하는 소리가 ‘그럼 빨리 끝낼게’.”

그러니까 이 여성들은 자신이 전혀 원하지 않았는데도 사귀던 남자에게 섹스를 강요받았지만, 이게 강간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강간이란 으슥한 밤, 모르는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지, 사귀는 사람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남성이 사정만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 사례들이 아주 특수한 나쁜 남자에 국한됐다면 남성들이 할 일은 저 남성들을 욕하면서 자신은 여친에게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댓글을 보면 아주 가관이다.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네요. 남자들 말도 들어봐야 합니다.

-모텔 같이 가면 섹스에 동의한 거 아닌가?

-모든 남자가 저러지 않아요. 너무 일반화하네.

-데이트폭력의 희생자가 꼭 여성만인 건 아니어요.

 

왜 이런 말도 안되는 댓글들을 다는 것일까? 한쪽 말만 들어선 안 된다는 균형감각은 왜 남성이 저지른 성범죄에만 발휘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 남성들은 자신들이 잠재적 강간범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이렇듯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동의 없는 섹스는 강간이다. 인생은 길고, 당장 못한다고 해서 남성의 성기가 썩는 건 아니다.

여자가 “예스(Yes)”라고 하는 날, 자신이 갈고 닦은 온갖 테크닉을 발휘해서 하면 된다. 섹스라는 건 남녀 모두 원할 때 해야 즐거운 법이지, 하기 싫어서 나무토막처럼 있는 여성을 덮치는 건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일까. 다음은 1912년에 쓰인 한 영국 여성의 일기다.

“찰스가 옛날보다 내 침소를 덜 찾는 지금이 나는 행복하다.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 뿐이다. 문밖에서 그의 발소리가 나면 나는 침대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영국을 생각한다.”

이 일기는 영국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부부간에도 강간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됐다. 마찬가지로 ‘까칠남녀’에 나온 여성들의 증언은 남성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서 원치 않는 섹스를 하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깨달음을 줬다.

남성들이여, 여자의 No는 No로 받아들여 주시라. 당신들이 알량한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면, 여성들은 100여년 전 영국 여성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과 같은 일기를 쓸 것이다.

“문밖에서 그의 발소리가 나면 나는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꼭 감은 채 이런 생각을 한다. 30초만 참자. 6.9cm밖에 안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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