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질’, 지속가능했으면 좋겠어요”
“‘페미질’, 지속가능했으면 좋겠어요”
  • 강푸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7.06.08 09:41
  • 수정 2017-06-12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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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강연자를 릴레이 인터뷰한다. 음악평론가 블럭, 페미니스트 게이머 단체 ‘전국디바협회’ 회장 김지영,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최지은 전 아이즈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인터뷰]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한국 최초로 페미니스트 게이머 단체 만든 김지영씨

초중학교 때부터 게임해온 덕분에 게임 경력만 10여년 

페미니즘 접한 뒤 게임 내 여성혐오와 성차별 명확해져

한국사회 바뀌어야 성차별 만연한 게임업계도 변화 가능 

“페미니즘 실천하며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사회도 바뀔 것”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는 “우리는 어떻게든 변화하고 있고, 좀 더 나아지고 있고,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다”며 “이렇게 한 발자국씩 걷다 보면 언젠가 사회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는 “우리는 어떻게든 변화하고 있고, 좀 더 나아지고 있고,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다”며 “이렇게 한 발자국씩 걷다 보면 언젠가 사회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11월 26일, 박근혜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광화문광장에는 한 깃발이 펄럭였다.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게이머 연합 ‘전국디바협회(이하 전디협)’. 깃발 속에는 다부진 표정의 흰 토끼가 미소 짓고 있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온라인FPS 게임 ‘오버워치’ 속 한국인 여성 캐릭터 디바(D,Va)를 마스코트로 삼는 전디협은 디바를 전면에 내세우고 게임 내 여성혐오와 현실의 성차별을 이야기한다. 디바의 본명은 송하나. 16세 때 프로게이머로 데뷔해 세계 챔피언으로 명성을 떨치다가 국가 안보를 위해 특수부대인 ‘대한민국 국군 기동 기갑부대’에 합류한다는 설정이다.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최첨단 로봇을 조종하며 괴수와 싸우는 캐릭터다.

전디협은 말한다. “만약 미래의 한국이 지금 같은 성차별적인 국가라면, 오버워치의 배경이 되는 2060년에 디바와 같은 사람이 등장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성평등한 2060년을 만들기 위해 지금 노력합시다!”

전디협 이끄는 ‘93년생 김지영’

숏컷에 검은 립스틱, 올 블랙의 옷차림과 어깨 위엔 앵무새 한 마리. 전국디바협회 김지영(24) 대표다. 여성 게이머들이 겪는 성희롱을 공론화하고, 여성 캐릭터 성 상품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반향을 일으킨 전디협을 이끌고 있다. 김씨를 지난달 30일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날도 그는 반려 앵무새 홍시(2)와 함께였다.

“초중학교 때부터 게임을 해”온 김씨는 게임 경력이 10여년에 달한다. “어렸을 때 주변 친구들이 죄다 게임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하기 시작했죠. 옛날에 유행하던 게임은 다해본 것 같아요. 카트라이더부터 마비노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서비스 종료된 많은 게임들까지…. 10년 내내 이 게임 저 게임하며 많이 갈아탔지만, 게임을 쉬진 않았어요.”

사진과를 전공했다는 그는 대학 졸업 후 전공 관련 일자리를 얻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저는 제 시간을 갖는 것과 행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근데 한국에선 대부분의 직장이 그걸 보장해주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많았어요.”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전디협’ 탄생기

전디협 탄생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김씨가 장난삼아, 재미삼아 깃발을 만들어 활동하게 된 것이 시작이다. “박근혜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당시 ‘전국OO협회’라는 게 한창 밈(meme·재미있는 메시지를 입힌 사진이나 영상·모방을 통해 퍼지는 패러디물)으로 쓰였어요. 그래서 저도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송하나의 이름을 넣게 됐죠.” 그리고 곧장 광화문으로 향했다. SNS에 ‘나 이런 깃발 만들어 광화문 간다’라는 짧은 공지를 올렸음에도 찾아와준 이들이 꽤 됐다고 했다.

“그때 재미로 깃발 만들어 나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대개 거기서 그치곤 했죠. ‘나도 여기서 끝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여성 게이머 관련 단체가 나온 것에 반가움을 표하고 ‘의의가 좋다’며 활동을 계속 해줬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힘을 얻어 계속 해보자고 결심하게 됐죠.”

현재 전디협 멤버는 10명 내외로, 20대 학생이 대부분이다. 격주로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열고, 페미니즘 행사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촛불집회 ‘페미존’에 이어 지난 1월 ‘세계여성공동행진’, 3월 세계여성의날 기념 페미니즘 문화제 ‘페미답게 쭉죽간다’, 페미니스트 대학생 문화제 ‘펭귄들의 반란’, 5월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 등에 참여해왔다. 오버워치 게임대회 ‘여자 나가신다’도 이달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연말에는 독서모임에서 나온 책 서평을 모아 페미니즘 도서 가이드북을 만들기로 했다. 영화모임도 가지고 있다. ‘대니쉬 걸’ ‘매드맥스’ 등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영화를 보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시즌제로 운영 중인 전디협은 지난달 27일 2기 활동을 마감하며 기념파티를 했다. “2개월간 활동하고 한 달은 재정비를 하기 위해 시즌제로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 시즌에서 부족하거나 아쉬웠던 점을 보완해 다음 시즌에 적용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저희가 신생단체다보니까 활동하면서 이것저것 고쳐나가는 중입니다.”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반려 앵무새 홍시(2)와 함께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반려 앵무새 홍시(2)와 함께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속가능한 ‘페미질’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전디협은 한국 최초 페미니스트 게이머 단체다.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건만, 김씨는 오히려 부담이라고 말했다.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많은 분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공격이 들어오기도 하죠. 그런 것에서 오는 에너지 소모가 커요.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지치더라고요. 5월엔 거의 하루도 못 쉬고 일했는데, 육체적으로 힘드니까 가볍게 넘길 만한 일도 크게 다가오면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페밋에 참가하며 준비한 텀블벅도 성황리에 마쳤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노동은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텀블벅이 잘됐지만 사실 수수료 떼고 나면 얼마 안 남아요. 디자인부터 제작, 배송 등 저희가 들인 노동을 생각하면 멤버 10명의 인건비도 안 나오죠. 근데 그걸 보고 어떤 사람은 ‘돈 편하게 벌어서 부럽다’ ‘얘네 페미니즘 단체라면서 장사나 하냐’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김씨는 “어떻게 하면 ‘페미질’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 번 타오르고 말 게 아니라 계속 목소리 내고 싶은데 그게 지금 상황에서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자신을 다 갈아가면서 전디협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어떻게 번아웃(burn out·탈진)이 되지 않은 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페미니즘을 접한 후 많은 이들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해요.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데 그 방법은 이야기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는 모바일게임 ‘카드워즈킹덤(Card Wars Kingdom)’을 예로 들며 “성별이 모호한 크리처라도 여성·남성으로 패싱(passing)되는 캐릭터에 따라 외형적 차이가 많이 난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지성체가 나오는 게임이라면 거의 필수적으로 여성이 성적으로 상품화된다”고 지적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는 모바일게임 ‘카드워즈킹덤(Card Wars Kingdom)’을 예로 들며 “성별이 모호한 크리처라도 여성·남성으로 패싱(passing)되는 캐릭터에 따라 외형적 차이가 많이 난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지성체가 나오는 게임이라면 거의 필수적으로 여성이 성적으로 상품화된다”고 지적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게임 내 성차별 그리고 현실의 성차별

‘메갈리아’나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등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각성제가 된 사건들이 김씨에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그 사건들을 거치고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과정들에서 페미니즘을 배우며 천천히 페미니스트가 됐다고 했다. “페미니즘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주변 사람들의 영향도 받았어요. 저보다 먼저 페미니즘에 눈 뜬 친구들이 일상 속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죠.”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하며 자연스레 감지했던 성차별은 페미니즘을 접하면서부터 명확해졌다. “여성 캐릭터는 무조건 젊고 나이 먹어도 예쁘고 쭉쭉빵빵한 몸매에 체형이 다양하지도 않아요. 사이퍼즈에도 세계관에 맞지 않는 어린이, 미소녀 캐릭터만 나오다보니까 사람들이 ‘할머니 캐릭터도 좀 내봐라’고 문제제기를 했어요. 근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오버워치에서 그런 캐릭터가 나왔는데 반응이 좋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참 국내 게임업계가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 자체를 안 하는구나 느꼈어요.”

김씨는 게임 내 성차별을 근절하기 위해선 현실의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남성처럼 여성도 똑같이 인간으로 대하길 바라요. 오버워치의 메이도 설정만 뚱뚱한 캐릭터지, 사실상 그렇게 뚱뚱하지 않아요. 몸매도 S자로 굴곡져 있고 원화 보면 몸매가 비현실적이에요. 여성이라면 무조건 몸매를 부각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거죠.” 김씨는 모바일게임 ‘카드워즈킹덤(Card Wars Kingdom)’을 예로 들며 “성별이 모호한 크리처라도 여성·남성으로 패싱(passing)되는 캐릭터에 따라 외형적 차이가 많이 난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지성체가 나오는 게임이라면 거의 필수적으로 여성이 성적으로 상품화된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게임 내 성차별을 이야기하면 ‘게임이랑 현실이랑 같냐?’는 놈들이 꼭 있다”며 “변하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김씨에게 게임 유저임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인증을 해도 얼마 안 가 새로운 이들이 또 등장해요. 우리를 인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권위나 자격이 본인들한테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네가 골드면 인정해줄게. 대신 브론즈면 인정 안 해’ 이런 거죠. 어떻게든 깎아내릴 구실을 찾는 거예요.”

게임 대회를 준비하면서는 실제적인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OGN e스타디움 기가아레나’를 대관하려는 과정에서 “전디협은 페미니즘 단체라 대관 불가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김씨는 “남성들에게 ‘너희도 메갈이냐’는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다며 대관을 불허한 것”이라며 “’아직 게임계는 이 정도 수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게임업계는 언제 변화할까?

김씨는 “사회는 바뀌지 않는데 우리만 변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게임은 여전히 널렸어요. 장동민이 게임 광고모델로 나오질 않나. 이제는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김씨는 “모바일 게임이 활성화되면서 게이머 성비에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적다”고 비판했다. “결국 결정권자가 바뀌어야 해요. 게임 업계가 남초 집단이기 때문에 여성 직원이 들어오더라도 그 분위기에 적응하는 게 힘들죠. 아니면 실망해서 회사를 떠나든가. 그럼 여성은 계속 줄어들고, 점점 더 ‘남자’ 업계가 되는 거예요. 결국 이건 남성중심적인 사회 자체가 바뀌어야 되는 문제예요.”

“지금 당장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 자신이 변화하고 있잖아요. 그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떻게든 변화하고 있고, 좀 더 나아지고 있고,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어요. 이렇게 한 발자국씩 걷다 보면 언젠가 사회도 바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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