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어렵사리 임신 사실 알렸더니

“스트레스, 몸에 안좋다”며 퇴사 종용

한 사회복지관에선 임신한 복지사에게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발언까지

직장맘지원센터 상담 절반 출산·육아휴직

 

저출산 문제를 당면 과제처럼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임신한 근로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재원
저출산 문제를 당면 과제처럼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임신한 근로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재원

“지금 회사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기나 해요? 4개월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에서 제외당했어요.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최근 방영된 KBS 2TV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속 한 장면이다. 극중 김유주(이미도 분)는 남편 변준영(민진웅) 앞에서 “회사에서 업무에서 제외시키고 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김유주는 “이러다가 출산 후 복직은커녕 만삭 때까지 일하는 것도 힘들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좋아서 열심히 했던 일인데.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임신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이렇게 한순간에 밀려날 줄 몰랐다”고 오열한다.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는 사례는 비단 드라마 속 김유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은 더 냉혹하다. 우선 임신하면 직장 내에서 당연히 퇴직할 것이라고 여기거나 은근히 퇴직하기를 종용하는 보이지 않는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저출산 문제를 당면 과제처럼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임신한 근로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임신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여성노동자에게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해고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임신·출산 이유로 불이익이나 해고를 사례는 2012년 84건에서 2013년 108건, 2015년 137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한 이모(29)씨는 지난해 임신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겉으로는 이씨가 자발적으로 사표를 낸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이씨는 “상사에게 어렵게 임신 사실을 알렸더니 축하 인사 대신 대체인력 걱정부터 하더라”며 “육아휴직 얘기를 꺼내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줄테니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며 퇴사를 권고당한 사실을 털어놨다. 인력이 적어 직원들이 ‘일당백’하는 중소기업에선 대체인력이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눈칫밥’ 먹으며 일하는 임신한 근로자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

정부는 출퇴근하기 힘든 초기나 만삭 임신부를 위해 하루 2시간씩 근로시간을 줄이는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사용을 권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 여성은 급여의 삭감 없이 하루 2시간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이를 어긴 사업주에게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임모(39)씨는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렸다가 퇴사를 종용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직속 상사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면서 막달까지 일하고 육아휴직 3개월까지 총 6개월간 휴가 쓰고 복직하겠다고 말했더니 사장에게 보고하고 얘기하겠다더라”면서 “그러더니 사장이 내게 업무 스트레스 받으면 태아에게 안좋다며 계속 ‘생각해보라’고 권했다”고 했다. 그는 “분명히 괜찮다, 일 잘 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렸지만 거듭 ‘몸을 생각하라’고 대답만 돌아왔다”면서 “이런 상황에 단축근무나 유연근무제 같은 건 어림도 없을 것 같아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는 ‘임신해서 해고당했어요’라는 제목의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자신이 다니던 중소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에 임신 사실을 알리자 퇴사를 종용했다는 내용이다. 글쓴이는 “이사가 ‘임신해서 시킬 수 있는 일이 없다’, ‘지금 나가면 한 달 치 월급을 더 주겠다’면서 나가라고 하더라”면서 “권고사직 처리하면 고용노동부 지원금을 못 받으니 스스로 사표를 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조용히 한 달 치 월급 받고 넘어갈까도 생각했는데 그러면 평생 한이 맺힐 것 같아 노무사까지 고용해 싸우고 있다”면서 “저출산이네, 결혼비율이 낮네라는 말만 하지 말고 중소기업은 제발 좀 정신차리고 여자들 대우 좀 해달라”고 말했다. 게시글에는 임신이나 결혼 때문에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댓글들도 주르륵 달렸다.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다 해고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농담’이라고 하는 직장 상사도 있다. 실제로 C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조모씨는 팀장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가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 버려야겠네”라는 부장의 성차별 발언을 전해 들어야했다. 이 말을 들은 조씨는 부장에게 “죄송하다”고 말했고, “예산 문제로 사람을 더 뽑을 수 없다”는 취지의 부장의 말이 돌아왔다. 2015년 4월 발생한 이 일은 2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부장은 “농담이었다”며 공식사과를 했고 필요한 조치를 했다는 입장이지만, 조씨는 조력자인 동료 직원이 보복성 해고를 당했고, 복지관 차원의 공식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장이 ‘가임기 여성은 잘라야 한다’는 발언을 ‘농담’처럼 했다는 사실이다.

현행법은 모성보호제도를 보장하고 있지만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노동자들은 문제제기조차 쉽사리 하지 못한다. 실제로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가 2015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상담한 5517건을 분석한 결과, 직장에서의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관련 상담이 2882건(52.2%)으로 가장 많았다. 만삭인 근로자에게 자질구레한 일들로 꼬투리를 잡아 소리를 지르는 등 꾸준히 괴롭히고 해고까지 하는 등 임신을 이유로 불이익을 준 회사부터 출산을 2개월 앞둔 근로자에게 출산휴가 관련한 면담을 진행한 후 인사평가에서 최저점을 주고, 이를 빌미로 권고사직을 한 회사도 있었다. 회사의 승인을 받아 출산휴가를 한 달여 앞둔 근로자는 갑작스런 인사발령에서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당하기도 했다. 출산휴가를 이유로 한 부당한 인사발령이었다. 특히 강등으로 인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팀장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출산휴가 급여도 손해를 입게 됐다. 특히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상담 중 가장 많은 사례는 ‘불안요인에 의한 상담 요청’(1434건·49.8%)이었다. 휴가·휴직 신청을 앞두고 불안한 상황과 심로로 관련 제도에 대해 알아보려는 상담이 주를 이뤘다.

한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사업주는 근로자의 교육·배치 및 승진에서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차별에는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다르게 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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