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다른 장애 있다는 이유로,

여성,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개인의 고유한 서사 지워지고

동정, 멸시, 신성의 ‘대상’으로

단순화 그 자체가 폭력이다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이 장애인 같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세상이 바뀔 텐데…. 장애인들은 정말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잖아요.” 독서모임에서 한 청년이 말했다. 정의감에 고양돼서 말하는 청년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모든 장애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하나의 이미지로 바라보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닐까요? 그게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건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러자 자리에 있던 다른 청년이 말했다. “순수하게 돕고 싶은 마음일 뿐인데, 우리가 굳이 꼰대처럼 뭐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사람들의 열정이 있으니까 세상이 바뀌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졸지에 ‘꼰대’가 된 나는 끝까지 청년의 시선이 불편하다고 토로하길 멈추지 않았다. 끝내 자리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청년은 알았다는 듯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이후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청년의 부재보다 그가 남긴 묘한 온기가 오랫동안 가슴 언저리를 맴돌았다. 뜨거운 열정과 대비된 서늘한 시선. 나는 왜 그 온도가 불편했을까. 혹시 정말 꼰대 짓을 한 건 아닐까.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페미니스트 해릴린 루소의 책 제목이다. 해릴린은 태어날 때부터 ‘걸음걸이나 표정이 우스꽝스럽고, 몸의 일부가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딱 그뿐이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섹스를 나누는 애인이 있다. 그녀는 운전도 할 수 있고, 강의도 다니고, 그림과 글로 자신을 표현하길 즐긴다.

어느 날, 해릴린은 강의를 나갔다가 맨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자신을 바라보며 펑펑 우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날 해릴린이 소개한 에세이는 어머니에게 운전을 배우던 일화로, 말 그대로 ‘웃긴’ 이야기였다. 모두가 웃는 강의실에서 홀로 통곡하는 그녀의 존재가 해릴린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내 인생의 비극들이 장애가 아니라 그저 흔한 실망과 환멸, 상실–애인, 놓친 일자리, 가까운 사람의 죽음 등-과 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너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그냥 용감한 타자로 생각하렴.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눈물이 나려 한다.”(286p)

걸음걸이나 표정이 다르다는 이유로 대놓고 무례한 일(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남자가 “저 여자, 병 있어요? 좀 떨어지라고 하면 안 돼요?”라며 무섭다고 숨은 일)도 많이 겪지만, 그녀가 가장 빈번하게 부딪치는 일은 이런 것이다. 무지한 사람들과의 달갑지 않은 조우. “정말 대단하세요! / 나라면 집 밖으로 못 나갔을 거예요. / 안됐다… 얼굴은 예쁜데. / 정말 용감하세요.”(40p)

그녀가 겪는 불편함의 중심에는 “장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라는 인식이 있다. 일명 존재의 단순화. 인간은 누구나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다채로운 존재지만, 어떤 특정 조건을 가지면 복잡성을 부정당하기도 한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한 개인의 고유한 서사는 지워지고 쉬이 동정과 멸시, 신성의 ‘대상’이 된다. 해릴린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언뜻 아름다워 보이는 동정, 감탄과 같은 태도가 존재를 지우는 행위라는 것을 어느새 깨닫게 된다. 단순화 그 자체가 폭력이다.

“연대의 시작은 내 눈앞에 있는 상대방이 복합적이고, 의외성을 가진 인간 그대로라고 믿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조금 더 식상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모르는 무언의 세계가 그 사람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독립잡지 ‘SECOND’에 실린 인터뷰. 한 사람은 한 세계다. 혹, 나는 그 세계를 쉽게 단순화하며 판단하진 않았나?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만 있어도 우리는 살짝 나은 사람일 수 있다.

책 제목을 다시.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 해릴린 루소 / 허형은 옮김 / 2015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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