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아이콘’ 여성 히어로 다룬 영화 ‘원더우먼’
홍보영상에 ‘여성혐오’ 일삼은 방송인 기용하거나
원더우먼의 ‘아름다운 외형’만을 강조한 마케팅 파문
일본에선 ‘미녀전사는 천연계?’라는 홍보문구로 논란 빚어
영화 ‘원더우먼’이 각국의 ‘마케팅 헛발질’로 도마 위에 올랐다.
‘원더우먼’은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히어로를 단독으로 내세운 최초의 영화다. 원더우먼 캐릭터는 태생이 페미니스트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여성들만의 섬에서 살아온 아마존의 일족이자 평화와 정의,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슈퍼히어로”, “남성 히어로들이 판치던 세상에 혜성처럼 등장한 강하고, 똑똑하고, 용감한 여성 캐릭터”다(『원더우먼 허스토리』, 질 르포어, 윌북). 이런 원더우먼을 단지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으로만 소비하거나, 여성혐오적 언행으로 파문을 일으킨 방송인을 홍보 모델로 기용하는 마케팅에 여성들은 분개했다.
‘여혐’ 발언한 방송인이 여성 주인공 영화 홍보?
먼저 한국이다. CGV는 지난달 26일 영화 원더우먼과 자사 4DX 상영관 홍보 영상에 개그맨 유세윤을 기용했다. ‘유세윤의 4D극장’이라는 콘셉트로 제작된 영상에서 유세윤은 포효하는 사자 앰블럼으로 분해 원더우먼을 소개하고, 배우 권혁수는 4D효과를 체험하는 내용이다. 유세윤은 개그 트리오 ‘옹달샘’(유세윤·장동민·유상무)으로 활동하며 2013년부터 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한테 머리가 안 된다” “처녀가 아닌 여자, 성 경험을 숨기지 않는 여자를 참을 수 없다”며 ‘개보X’ ‘개 같은 X’등 욕설을 해 파문을 일으켜 사과한 바 있다.
원더우먼은 기존의 젠더 불평등한 관습에 매이지 않은 ‘여성 해방’의 아이콘이다. 이런 영화에 여성혐오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남성을 광고모델로 쓴 것이다. 영화 팬들은 분노했다. “원더우먼 홍보에 유세윤을 쓴 건 게으름을 넘어 멍청함이고, 동시에 아주 악의적이다” “이는 여성혐오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일부는 CGV 불매운동도 벌이고 있다.
여성은 영웅이라도 ‘예쁜 외모’로 소비돼
“아마존에서 싸움 가르쳐놨더니 미모로 세상 다 구해버릴 기세.” 메가박스가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원더우먼’을 홍보하며 올린 카피 문구다. 영웅으로서의 카리스마나 능력보다
‘아름다운 외모’만을 부각해 소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모처럼 나온 여성 히어로 영화에 ‘얼평’(얼굴 평가)이나 하고 있다”라는 질타가 나왔다.
원더우먼이 다이어트 자극제?
미국에선 원더우먼이 다이어트 식품 광고 모델로 등장해 여성들의 비판을 받았다. 건강식품 브랜드 ‘씽크씬(thinkThin)’은 원더우먼을 자사 마케팅에 끌어들여, 황금 팔찌 건틀렛으로 총알을 막아내는 원더우먼과 씽크씬의 다이어트 바 제품 사진을 합성한 포스터를 여러 유통 매장에 비치했다.
많은 이들이 반발했다. 틴 보그(Teen Vogue)와 페미니스트 사이트 TMS(The Mary Sue) 등 매체는 “사람들은 원더우먼과 씽크씬의 제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건 우리가 바란 원더우먼 마케팅이 아니다” 등 비판을 가했다. 유명 푸드 인터넷 매체인 이터(Eater)도 지난달 11일 “씽크씬은 페미니스트 대중문화 아이콘인 원더우먼을 씽크씬 다이어트 바를 파는 데 이용했다”라며 SNS상 관련 여론을 소개했다. 한 트위터리안(@the_*******)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혐오감을 갖게 만드는(body shaming) 체중 감량 바를 소비하는 것은 원더우먼 캐릭터에 대한 배신”이라고 일갈했다. “할리우드는 죽여주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여자들에게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원더우먼이 씽크씬과 제휴를 맺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라는 지적도 나왔다.
“미녀전사는 천연계”라니요
일본에선 예고편 영상 내레이션이 논란이 됐다. 여자밖에 없는 섬에서 자라 남자도 모르고, 사랑도 모른다. 사상 최강의 슈퍼 히어로는 여자였다. 원더우먼! 미녀전사는 천연계?”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아연실색했다. 원더우먼에 ‘순수한 여성 이미지’를 덧씌웠다는 비판과 함께 “여성 캐릭터에 요구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빤히 드러난다” “멋있는 원더우먼을 꼭 ‘미녀’로 강조해야 했나” 등 지적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