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권 빅딜 희생양 안 될 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 살리기, 강경화 외교부 장관 털고 가기’

정치권 중심으로 빅딜설 급부상 추악한 빅딜은 청산해야 할 적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30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으로 출근하던 중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30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으로 출근하던 중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문재인 정부가 예상치 못한 인사 문제로 곤경에 처했다. 당초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였던 이낙연 국무총리 내정자를 비롯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내정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각종 비리 의혹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병역 면탈,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을 공직 배제 5대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세 후보자 모두 위장전입 전력이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형식을 통해 자신이 “공약한 것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 있어선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으로의 인사를 위해 국정기획자문위와 (청와대) 인사수석실, 민정수석실의 협의를 통해서 현실성 있게 그리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5대 비리에 관한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결코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거나 후퇴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며, 공약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밟아야 할 준비 과정”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의 논란은 준비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 야당 의원들과 국민께 양해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사과 대신 해명을 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즉각 반발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오로지 인사청문회 통과를 위해 스스로 정한 인사 원칙을 어기고 자의적으로 새 기준을 설정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대통령 해명 이후 대승적 차원에서 이 총리 내정자 인준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호남 민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얼미터 조사(5월 26일)에 따르면 국민의 72.4%가 이 후보자 인준에 찬성했다. 그런데 광주·호남에서는 그 비율이 84.9%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호남 출신 이 후보자를 국민의당이 거부할 경우 호남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강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지만 젠더폴리틱스 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청문회에 들어가 자신의 경륜과 능력을 검증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첫째,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권 빅딜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이낙연 살리기, 강경화 털고 가기’의 빅딜설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 후보자를 인준해 주는 조건으로 강 후보자를 낙마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추악한 빅딜은 반드시 청산해야 할 적폐다. 대법원이 5월 29일 공개한 이상훈 전 대법관과 박병대 대법관의 뒤를 이을 후보자 36명 가운데 여성은 단 4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도덕성 검증도 중요하지만 강 후보자가 유리천장을 깬 비외무고시 출신 첫 여성 장관이란 상징성에 큰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

둘째, 직무 연관성의 관점에서 평가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사안마다 발생 시기와 의도, 구체적인 사정, 비난 가능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예외 없이 배제’라는 원칙은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다분히 강 후보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 법무부 장관의 위법 행위, 공정거래위원장의 부동산 투기, 경찰청장의 음주운전 등은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일 수 없다. 주무장관으로 이들 분야 감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부 장관 내정자인 강 후보자 비리 의혹은 이와는 경우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셋째, 인선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르면 안 된다. 이 후보자의 위장전입은 묵인한 채 인준해주고 강 후보자에게 예리한 칼을 들이댄다면 이는 분명 차별이다. 강 후보자는 외교 무대에서 많은 경험과 업적을 쌓은 몇 안 되는 여성 전문가다. 강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례가 다수 국민이 누릴 수 없는 ‘특혜성’일 수 있다는 비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러나 강 후보자의 남다른 경륜이 ‘외교 중심의 안보’라는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한다면 기회를 한 번 주고 평가하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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