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희 에트로 수입사 ‘㈜듀오’ 대표

명품 대중화 위해 뛴 9125일

800만원으로 에트로 판권 따내

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일궈

글로벌 명품 최초 홈쇼핑 판매

우려 뒤집고 ‘완판’해 위기 극복

위기 때마다 안주 대신 도전 선택

갤러리 마련해 신진 예술인 돕고

장학금 지원 등 나눔경영도 앞장

 

25년간 듀오를 이끈 이충희 대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으로 명품 대중화의 선봉에 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5년간 듀오를 이끈 이충희 대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으로 명품 대중화의 선봉에 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한다는 25년의 세월은 국내 럭셔리 시장을 확 바꿔 놨다. 세월이 흐르고 유행이 변해도 25년을 관통하며 1993년부터 2017년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명품’ 브랜드가 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트로’(ETRO)다. 에트로는 1968년 경제학을 전공하고 세계 여행을 즐겼던 제롤라모 짐모 에트로가 설립한 고급 기성복·맞춤복 의류 회사로 시작했다. 다른 명품 브랜드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대담한 컬러와 혁신적인 조합으로 단시간에 명품 대열에 올라섰다. 특히 페이즐리 무늬의 에트로 가방은 국내에서 ‘7초백’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불티나게 팔렸다.

이충희(62) ‘㈜듀오’ 대표는 에트로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리고 대중화시킨 주인공이다. 1979년 호텔 신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3년 듀오를 설립했다. 이 대표는 “손에 쥔 자본금 800만원만을 들고 당시 에트로 아시아 판권을 갖고 있던 일본 담당자를 수차례 찾아가 부탁했다”면서 “800만원은 사업제안을 한 사람들 중 가장 적은 금액이었지만 일본 총판회사 회장은 오히려 제게 ‘당신이 가장 가난해서 택했다’고 말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절박함은 그를 지금의 자리로 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 대표는 1993년 에트로를 호텔 신라 면세점에 처음으로 론칭한 이후 1995년 롯데 백화점 본점을 시작으로 1996년 현대 백화점 본점, 무역점을 오픈 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현재는 매장도 40여곳(면세점 포함)으로 확장했다. 자본금 800만원에서 시작한 듀오를 25년 만에 매출 1000억원대의 탄탄한 회사로 키워낸 것이다. 최근 명품 브랜드 본사가 직접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에트로만큼은 25년간 듀오가 유통을 도맡고 있다. 그만큼 에트로 본사와의 관계에는 돈독한 신뢰가 깔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표는 본사가 요구하는 것 이상의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에트로를 대표하는 ‘아르니카’ 핸드백
에트로를 대표하는 ‘아르니카’ 핸드백

이 대표는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고 판매를 늘리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에트로의 홈쇼핑 진출은 당시 그야말로 쇼핑한 사건으로 업계에서 아직도 회자된다. 2006년 4월 에트로는 명품 브랜드 최초로 홈쇼핑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명품이 홈쇼핑에 팔릴까” “명품 이미지가 훼손되진 않을까”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홈쇼핑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우려는 말끔히 가셨다. 매진 행렬이 이어졌고 당시 에트로 ‘1-729 보스톤백’은 1만개 넘게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에트로코리아 25년의 역사에 획을 긋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이 대표는 “서울에선 유명한 브랜드였던 에트로는 지방으로 갈수록 생소한 브랜드로 여겨질 만큼 인지도가 낮았다. 홈쇼핑 진출을 말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되겠다’는 생각에 밀고 나갔다”며 “홈쇼핑 진출은 브랜드를 확고히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에트로는 2017년 현재까지 4개의 홈쇼핑 채널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안주보다는 도전을 택했기에 가능한 성과다. 홈쇼핑을 비롯해 에트로 브랜드가 면세 사업에 진출한 것도 한국이 가장 먼저였다. 이 대표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머뭇거릴지 않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작은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늘 리스크(위기)에 대비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천천히, 탄탄하게 준비해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이라는 것,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이 대표의 경영철학이 그대로 녹아있는 행보다.

명품 대중화에 앞장선 이 대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최고경영자(CEO)로도 유명하다. 창업 초기부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온 이 대표는 2003년 백운장학재단을 설립,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는 장학금을, 교수 및 연구진들에게는 연구비를 지원한다. 고아원과 노인복지회 등에는 불우이웃을 위한 지속적인 기부활동을 해오고 있다. 부친의 호를 따서 지은 이 재단은 이 대표의 나눔 실천 철학으로 설립됐다. 2017년 현재까지 백운장학재단 기금은 55억원이며, 2017년 1학기까지 약 28억5833만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해왔다.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사회공헌에는 뒷짐만 지는 다른 명품업체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충희 대표는 듀오 본사 건물 한 층에 신진 예술인을 위한 전시공간인 ‘백운 갤러리’를 마련해 작가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충희 대표는 듀오 본사 건물 한 층에 신진 예술인을 위한 전시공간인 ‘백운 갤러리’를 마련해 작가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화·예술 후원 활동도 활발하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본사 6층 건물은 회사 이름이 아닌 ‘백운(白雲) 갤러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한 층은 아예 신진 예술인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꾸몄다. 회사 건물이라기보다는 건물 전체가 갤러리로 보일 정도로 건물 곳곳엔 상품보다는 그림과 조각품 등 미술 작품이 더 많아 보였다. 이 대표의 집무실도 갤러리 못지않다. 대부분 벼룩 해외 출장 중 들른 벼룩시장에서 사들인 그림과 소품들이다. 수집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미술에 눈을 떴다고 했다. 혹자는 “돈이 많아서 비싼 그림을 수집한다”고 실눈을 뜨기도 하지만 실제 그의 집무실에 있는 그림들의 가격은 10만원에서 50만원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대표는 단호하게 “값어치를 따지거나, 투자를 목적으로 그림을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그림을 고르는 기준은 명확하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그림”이다.

이 대표의 예술 사랑은 지속적인 신진 예술인 발굴과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총 상금 5900만원에 달하는 ‘에트로미술대상’을 제정해 작가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이와 동시에 미술계를 후원하고, 그들의 성공적인 활동과 상업적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 같은 나눔 활동으로 이 대표는 2008년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코멘다토레’ 문화훈장을 받았고, 2011년에는 대통령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2007년 에트로 한국시장 진출 15주년과 2012년 20주년에는 자선 패션쇼를 열어 각각 2억원과 3억원을 기부했다. 올해 25주년에는 VIP고객과 에트로와 자매 결연 되어있는 군부대 군인 등 680여명을 초청해 푸치니 오페라 ‘마농레스코’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다. “예술과 패션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예술의 발전이 곧 패션계의 성장을 의미한다”는 이 대표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넥타이를 대신해 목에 두른 에트로 스카프는 이충희 대표의 시그니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넥타이를 대신해 목에 두른 에트로 스카프는 이충희 대표의 시그니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듀오는 위기를 기회 삼아 1998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꿋꿋히 버티며 성장세를 이어왔다. 에트로는 2014년 에트로 남성 단독 매장을 현대백화점 본점에 열며 고객 범위를 남성으로 확장시켰고, 2015년엔 아울렛 시장에 진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이천점을 시작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명품 슈즈 브랜드 ‘산토니’를 국내에 론칭하며 새로운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듀오는 이 같이 25년간 꾸준한 성장과 매장 확대로 한국에서의 에트로 브랜드 인지도를 확고히 굳히는 한편, 향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유통 회사로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 발표를 보면 2015년 기준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118억 달러, 세계 8위 규모에 달한다. 하지만 세계 경제 둔화와 국내 장기 불황으로 명품 시장의 성장세는 주춤한 상황이다. 두 번의 경제위기를 무사히 지나며 지속적인 성장가도를 달리던 듀오도 올해는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이미 임원진의 임금은 줄였고, 곧 사원들도 임금이 삭감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면서 미리미리 비상 체제로 전환해 대비하고 있다”며 “사업을 하며 늘 어려움을 겪을 것을 예상해 늘 준비하지만, 이번은 예상보다 강도가 세다”고 했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준비하는 경영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충희식 유비무환’ 경영철학인 셈이다.

25년을 쉼 없이 달려온 이 대표는 이제는 주위를 돌아보며 여유를 갖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틈날 때마다 책을 읽는 ‘독서광’인 그는 요즘 여행책에 푹 빠져있다. 가고 싶은 관광지와 명소 자료와 기사를 스크랩해 ‘나만의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고 있다. “여행은 희망사항이자 이뤄야 할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은 쉴 때가 아니라는 듯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제게 일은 ‘호구지책’이었어요. 기업하는 사람은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전 비전을 가질 여유가 없었거든요.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죠. 신라호텔에 근무할 때 모시던 상사분들을 잘 만났고, 제게 판권을 준 일본 회장도 그렇고요. 그런데 25년이 흘러 여유가 생기니 이제 책임감이 커졌어요. 이젠 저 혼자가 아니라 제가 책임져야 할 직원들이 있으니까요.”

 

이충희 듀오 대표는…

△1955년 서울 출생 △1973년 서울 휘문고 졸업 △1977년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졸업 △1986년 경기대 관광경영학 대학원 졸업 △1979년 호텔신라 입사 △1991년 유로통상 입사 △1993년∼현재 듀오 대표 △2002년∼현재 백운장학재단 이사장 △2010년∼현재 백운갤러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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