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셔너블’한 권리의 언어와 소녀성 산업
‘패셔너블’한 권리의 언어와 소녀성 산업
  • 김애라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7.05.23 14:49
  • 수정 2017-07-12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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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하고 재수 없는’ 청순보다

개인의 센스와 노력 발휘되는

섹시함이 더 세련되고 매력적

 

소비시장과 미디어를 매개로

소녀들의 육체가 전면에 등장

 

아이유 ‘스물셋’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아이유가 젖병을 빨다 여자 인형에 우유를 뿌리는 장면이 나와 “과한 롤리타 설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이유 ‘스물셋’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아이유가 젖병을 빨다 여자 인형에 우유를 뿌리는 장면이 나와 “과한 롤리타 설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신(新)소녀시대

우리는 지금 당당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선택을 전시하고 이를 통해 자기를 주장하는 여성들을 보고 있다. 광장-인터넷 공간을 매개로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한국사회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약 10년 전의 ‘촛불소녀’는 10대 시기를 지나 ‘배운 여자’로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한 바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20대에서 30대의 소셜미디어 이용자로 최근 소라넷 폐지 청원운동과 진선미 의원 정치후원금 모금운동, 메갈리아와 트위터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스트 선언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표명 등을 이끄는 주체로 등판, 디지털 공간 생태계의 남성중심성에 도전하고 있다. 10대 시절부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이 여성들의 디지털 공간 활용 능력은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네트워킹이라는 소셜네트워크의 이상과 조우하면서 실로 대단한 폭발력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촛불소녀 세대들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디지털 공간에서 자라온 이들은 디지털 공간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가. 이들의 10년 뒤는 또 어떨까. 인터넷 공간 내 변화의 흐름을 주도해 온, 지금 디지털 공간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여성들이 10년 전 10대 여성으로 광장과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만들었다는 점은 그 10년 후인 동시대 10대 여성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대 혹은 궁금함을 갖게 한다.

지금 디지털 공간의 메갈리아와 소라넷 폐지 청원운동을 이끈 여성들의 다른 한 쪽, 혹은 이들의 또 다른 소셜미디어 계정일 수도 있는 곳에서는 ‘패션 뷰티’를 주 이슈로 부단히 자신을 전시하는 모습의 여성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전 세대 여성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지만 10대, 20대 초반의 여성 이용자들에게서 두드러진다.

특히 10대 여성들에게 디지털 공간은 그 특유의 또래문화와 학생, 미성년자라는 규범을 탈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기전시를 통한 개별적인 평판과 인기 관리와 소통하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다. 요컨대 촛불소녀였던 10대 여성들은 10년이 지난 동시대 디지털 공간에서는 어쩌면 걸그룹의 일반인 버전이라 할만한 ‘페북스타’와 그 팬의 모습이다. 10년 전 촛불소녀와 지금의 페북스타라는 당대 디지털 공간의 10대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은 얼마나 다른가, 또 이들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낙관적이고 희망적 기대를 품게 했던 새로운 디지털 공간, 관계는 실제로 촛불소녀와 같은 새로운 10대들이라는 존재의 등장, 이후 여성들의 광범위한 공적 영역에 대한 발언과 참여를 가능하게 해준 중요한 토대였다. 촛불소녀의 등장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대중화되기 직전, 인터넷 참여 활동의 대부분이 주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시기에 이뤄졌다. 이들이 몇 년 뒤 ‘배운 여자’로 나섰을 때도 이들의 인터넷 활동에는 삼국카페로 통칭되는 소위 ‘여초 카페’로 분류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여전히 그 중심에 있었다. 이후 인터넷 플랫폼이 소셜미디어로 전환되면서 여성들은 트위터,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필요에 따라 ‘메갈리아’와 같은 사이트를 개설해 따로 또 같이 활동하고 있다.

반면 지금 10대 여성들은 중학교, 빠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스마트폰과 페이스북 계정과 카카오톡 반톡방을 가진 세대다. 이들의 주근거지는 페이스북이고 필요에 따라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함께 하기도 한다. 10년 전 촛불소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기반으로 등장했다면, 오늘날 10대 여성들은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그 참여 형식을 통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플랫폼의 차이는 이용자 참여 형식을 다르게 만들며, 디지털 공간에서 어떤 ‘자기’로 등장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특히 촛불소녀와 ‘페북스타’의 차이를 만들어낸 지난 10년에는 소셜미디어라는 인터넷 플랫폼으로의 본격적 전환, 디지털 공간의 소비자본주의의 대대적 침투가 놓여 있다. 나는 이 같은 디지털 환경, 그로 인한 경험의 차이를 통해 동시대 10대 여성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자유와 권리를 말하고 향유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배우는 장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핑크빛 셔츠에 함께 몸을 넣고 하체를 드러낸 설리(왼쪽)와 구하라.
핑크빛 셔츠에 함께 몸을 넣고 하체를 드러낸 설리(왼쪽)와 구하라.
소셜미디어와 주목받고 싶은 10대 여성들

인터넷 플랫폼의 소셜미디어로의 전환은 디지털 공간에서 이용자들이 자신을 설명하거나 타인과 네트워킹하는 방식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소셜미디어의 이용자 참여 형식은 자기전시와 네트워크 내의 평판을 중심으로 하는 계정 운영이며, 멋지고 세련된 프로필 사진과 실시간의 개인 일상 전시가 중요하다. 이 같은 참여 형식과 더불어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이용자들이 업로드하는 각종 정보와 콘텐츠를 통해 광고 수익을 주요한 수익 전략으로 삼는다. 덕분에 디지털 공간은 무엇이든 팔아치울 수 있는 공간 혹은 팔아치울 만한 독특한 것을 찾을 수 있을만한 공간으로 전환돼 왔다(마윅, 2013, 권김현영, 2017).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이 올린 글과 사진, 퍼 나른 각종 기사 등은 모두 소셜미디어 콘텐츠다. 이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주목, 관심 등을 통해 디지털 경제는 수익을 만들어낸다. 추억 속의 UCC 스타, 얼짱에서부터 지금 페북스타에 이르기까지 소위 마이크로셀럽들은 어떻게 개인 이용자가 자신을 콘텐츠화해 명성과 경제적 성공을 거뒀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개인 이용자 자체가 소셜미디어에서는 일종의 콘텐츠 브랜드인 셈이다.

동시대 10대 여성들은 바로 이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소위 디지털 라이프를 꾸리기 시작했다. 디지털 공간의 이용자, 생산자라는 정체성은 단숨에 얻어지기보다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반복적이고 네트워크화된 경험을 하면서 얻어진다. 촛불소녀 세대로부터 경험한 바 있는, 폭발적인 영향력을 지닌 디지털 리터러시는, 동시대 10대 여성들의 경우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미디어를 처음 접한 초중학교 시절 시작됐다.

이들은 숙제의 정답과 소풍갈 때 입으면 좋을 옷을 검색하고, 친구들을 재미있게 만드는 드립을 날리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정하면서 매해 디지털 리터러시를 쌓아왔다. 여기에서 여성들은 네트워크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기꺼이 웃어주고 관심을 표명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디지털 공간 내 매력적인 사람으로의 평판의 중요성, 나아가 그것의 경제성을 경험했다. 이 과정을 지나 온 지금 상당수 10대 여성들의 자기 표현의 방식은 주로 화장, 패션, 다이어트와 성형, 인테리어 등 소비문화적 취향, 성적 매력의 표현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 화장품 상점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화장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 화장품 상점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화장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패셔너블’한 권리의 언어로 재탄생한 소녀성

소셜미디어는 이용자에게 정보 생산자이자 수집가로서의 참여를 독려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정보를 신자유주의 자기계발시대에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소통은 실상 자본주의 가치 창출의 새로운 자원이자 매개물로 수평적 개인 간의 경쟁적, 협력적 관계에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의 환상을 표상한다(딘, 2009).

지속적인 접속, 소통을 유도하는 소셜미디어는 개인의 감정을 가장 중요한 자리로 놓아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이해와 취향, 소비주의, 자율적 주체로서의 감각 속에서 자기계발을 추동하도록 한다. 또 소셜미디어에서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은 단지 데이터의 공유나 수집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감정적 애착, 증폭 등과 같은 정동을 만들어낸다(크라피, 2015). 이를테면 10대 여성들은 끊임없이 준비돼 있는 링크의 클릭, 댓글과 ‘좋아요’의 교환들 속에서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고 소셜미디어에의 지속적 참여는 이 감정적 강렬함의 추구에 의해 추동된다.

소통으로부터 가치를 생산하는 정보자본주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친구들과의 소통, 이로부터의 강렬한 쾌락 속에서 10대 여성들은 패션과 뷰티 상품을 매개로 한 네트워크의 일원, 이 상품들의 열렬한 팬, 덕후이자 거대한 소비자 집단이며 안내자로 명성을 쌓고 있다. 지금 10대 여성들은 짧은 플레어 스커트 모양의 테니스 스커트와 배와 가슴골이 살짝 드러나는 크롭 티셔츠, 걸그룹 스타일의 최신 메이크업 스타일을 통해 매력적인 소녀성이라는 느슨하게 동질적인 정체성을 공유한다.

혹은 매일같이 하는 스쿼트 운동을 통해 비키니 혹은 티팬티를 입고 매끄럽고 탄력 있는 엉덩이를 전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낀다. 노력과 성취의 언어는 “왜 스스로 나서서 성적 대상이 되고 있느냐”는 부정적인 시선에 맞설 수 있는 방패막이며 매끄럽고 탄력 있는 엉덩이를 드러낼 권리, 이를 통해 평판이나 인기 혹은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로 나아가게도 한다.

이 같은 10대 여성들의 권리의 언어는 10대 여성이라는 범주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담론과 결합한 소비자본주의의 진화와 무엇보다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10대 여성 당사자들이 소비시장의 각종 콘텐츠의 공유, 생산자로 시장과 직접 만나기 시작하면서 소녀 시기는 성인 여성을 예비하는 유예와 통제의 시기로부터 주체의 시기로 재정의 되고 있다. 더 이상 화장이나 성형, 연애와 스킨십 등은 성인 여성에게 더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특히 제한 없는 다양한 영역의 정보 수집과 공유가 가능해진 미디어 환경에서 10대 여성들은 각종 소비 상품과 문화적 감수성을 통해 ‘미성년’, ‘10대 여성’, ‘학생’ 등으로 정의돼 온 ‘소녀적인 것’의 속성을 바꾸고 있다. ‘순수하고’, ‘여리여리’하고 ‘러블리’한 전통적인 ‘소녀’ 스타일은 시장을 경유하면서 패션, 화장품, 성형, 여행 등의 다양한 상품과 자유로운 연애와 성이라는 문화적 감성과 결합하면서 기존의 소녀적인 것의 의미를 위반하고 또 다양화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은 10대 여성 범주의 변화와 소셜미디어와 광고 등 글로벌 미디어에서의 ‘어린 여성’들의 증가와 10대 여성의 과잉성애화(쥘, 2009)는 10대 여성들이 새로운 사회, 문화, 경제적 장의 시류를 이끌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셜미디어 참여를 통한 10대 여성들의 자기전시와 일상적 정보공유 활동은 놀이와 문화, 경제적 행위가 융합된 새로운 영역이다. 소셜미디어는 10대 여성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각종 데이터와 정보, 그 흐름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이 새로운 영역에서 10대 여성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더불어 10대 여성의 동시대적 의미 또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10대 여성’은 미성년 여성이나 여학생과 같이 기존의 10대 여성들을 범주화해왔던 연령이나 학교 체계로부터 소셜미디어의 데이터, 정보, 콘텐츠의 생산자, 매개자, 소비자로 소셜미디어의 수익 창출과 관계된 방식으로 재범주화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자본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웹2.0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든 인터넷 이용자들을 전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노동 속으로 포섭하고 있다.

또래문화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잡지나 텔레비전, 월드와이드웹 기반의 인터넷 등에서는 주로 소비자 혹은 이용자로 위치했던 10대 여성들은 이용자 참여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기술적, 문화적, 경제적 독려 속에서 소셜미디어 문화와 경제에 보다 개입적이고 참여적인 주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문화 수용자 혹은 문화산업에서는 ‘팬’이라는 다소 한정적인 지위에서 유사 생산자로 설명돼 온 10대 여성들은 지금 소셜미디어의 ‘이용자’, ‘참여자’로 이전의 10대 여성들이 시장과 맺는 관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소녀시장’(드리스콜, 2002)은 소비자로 그리고 자조적 네트워크 구성원으로의 10대 여성들의 새로운 참여 형태와 결합하며, 보다 진화한 버전의 소녀시장인 ‘소녀성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소녀성 산업은 10대 여성들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제까지의 10대 여성들이 대중문화 산업의 걸그룹과 같은 특정한 영역의 소수의 10대 여성 주체들을 매개로 소비시장에 접속해왔다면, 디지털 경제에서 10대 여성들이 소비시장과 만나는 방식에서 대중문화 산업은 여전히 중요한 매개체이지만 점차적으로 그 방식은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더 직접적이고 소규모적이며 ‘게릴라적인(세라지오, 2013)’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소녀시장을 직접적으로 매개하는 주체들은 소셜미디어와 소셜미디어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10대 여성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10대 여성들이 직접적인 생산자로 참여하게 된 소녀성 산업의 또 다른 특수성은 소녀성 산업에서 10대 여성 생산자들을 통해 주요하게 생산, 소비되고 있는 것이 광범위한 소비 실천과 결합한 ‘소녀성’의 수행이라는 점에 있다. 김예란(2014)은 오늘날 1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시장이 ‘소녀성’을 일종의 문화콘텐츠로 상품화하고 있다고 논한 바 있다. 소비자본주의의 상품이자 콘텐츠로서의 소녀성은 이제 문화 산업의 기획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기전시와 소셜네트워킹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형성된 10대 여성들의 소셜미디어 문화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참여 자체가 콘텐츠 생산이 되고 있는 오늘날 순전히 친구들과의 놀이였던 자신의 얼굴 사진이나 주변 장소에 대한 정보, 재미 있는 소식이나 우스꽝스러운 사진과 동영상 등의 공유 활동은 빠르게 또래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때 공유되고 있는 각종 정보들은 또래적 여성성의 장치이자 기술로 따라잡고 학습하면서 또래집단에 속할 수 있는, 인기와 평판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가 된다. 이 같은 공유 활동을 통해 구성된 네트워킹은 그 자체로 또래적 여성성, 소녀성을 승인하며 10대 여성 집단의 세대성을 직접적으로 노출해 10대 여성이라는 소비자 범주에 맞춰진 시장 형성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소녀성 산업은 10대 여성들에게 규범적 소녀 범주로부터 이탈할 장소를 마련하는 동시에 소녀성의 의미 자체를 확대하고 있다. 예컨대 소녀들의 일상 속에서 성별성과 연령성의 규범이 작동하는 순진하고 청순한 전통적 소녀 범주는 각종 소비 상품, 문화 상품 등을 경유하며 다양한 ‘스타일’ 중 하나로 상대화되고 있다.

소녀성의 다양화와 확대는 10대 여성 당사자들의 참여와 소녀성을 매개로 하는 상품 시장인 소녀성 산업의 확산 속에 있다. 소녀성 산업은 상품을 소녀 집단에게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녀성을 판매한다. 10대 여성 당사자들의 자기전시 문화, 각종 정보의 공유 문화 등을 활용, 이들이 걸치고 전시하는 다양한 상품들을 10대 여성들의 속성으로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이로써 10대 여성, 즉 소녀들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상품의 범위를 확장할 뿐 아니라 소녀성을 구매하고자 하는 10대 아닌 여성들에게까지로 소녀성 산업의 범위를 확대한다. 10대 여성, 소녀들을 소비 대상으로 상정하던 시장은 이제 소녀라는 인구범주층을 넘어 소녀성을 팔만한 것으로 만든다.

소녀성 산업에 관한 여성주의적 질문

소녀성 산업의 확산, 생산자로 10대 여성들의 등장과 함께 소녀성이 미성년 규범성 등과 점차 결별하고 다양한 상품, 문화적 장치와 감수성 등을 통해 선택적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된 것은 어떤 신호탄인가?

소녀성의 소비산업적 전유는 필연적으로 소녀성에 대한 모순적 의미를 생산한다. 화장과 성형, 패션 쇼핑, 연애와 성적 실천 등 과거 한국사회 10대 여성들에게 금지됐던 영역이 소비시장과 미디어를 매개로 젠더와 연령으로 인한 통제를 해제하는 동시에 ‘어림’, 소녀 육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김예란, 2014). 소녀성의 변화는 미성년 규범성에 대한 재고, 단일한 소녀성 규범에 대한 도전과 위반이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동시에 그러한 도전과 위반은 소비 문화를 경유해야만 가능한 듯 보인다. 또 소비문화를 매개한 미성년 규범성에의 도전과 위반은 오히려 소녀 육체의 강조, 유지를 통해 가능하다.

소셜미디어의 소통매커니즘 속에서 가장 최신의 소비 트렌드를 향유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성적 매력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기로 한 10대 여성들의 선택은 여성의 섹슈얼리티 이슈의 탈정치화와 관계돼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여성의 외모 가꾸기와 성적 대상화 등의 문제는 이제 10대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향유하는 문화, 개인적 즐거움과 자기계발, 노동 전망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면서 성별권력관계나 정치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패셔너블’한 감성 혹은 개인적 매력의 영역으로 완벽히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패셔너블’한 권리의 언어는 오늘날 10대 여성 범주를 새롭게 규정하고 있으며 소녀성과 소비자본의 용이한 결합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소녀성은 실제 10대 연령의 여성들을 위한 각종 상품으로부터 '롤리타' 컨셉의 19금 콘텐츠들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소녀적인 것과 소녀적인 것의 위반 사이를 넘나들며 팔리는 콘텐츠로 빠르게 확산돼 왔다. 최근 아이유, 설리의 롤리타 콤플렉스에 관한 논란에서 알 수 있듯 ’미소녀’ 문화나 소위 ‘롤리타적 취향’의 하위문화집단들 사이에서나 주로 공유되던 성애화된 소녀의 형상은 오늘날 문화 콘텐츠의 일부로 K-pop적 세련미, 소비주의 혹은 일종의 감성이나 미학, 스타일 혹은 대중문화적 ‘덕질’의 대상으로 의미화되기도 한다.

소녀적인 것과 위반적인 것 사이에서는 분명 ‘미성년 여성’이라는 연령, 젠더 규범성으로부터 자유로워보이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같은 공간은 전에 없던 조합들과 틈새, 기존의 성별 규범과 어른 세대에 대한 도발을 허용하지만 ‘자유로운’ 개인들의 욕망과 경쟁, 상호모방, 심리적 전염들을 주요한 가치로 하는 통제사회(들뢰즈, 1990) 속에 있다. 소녀성 산업이 소녀성을 활용하는 전략은 미성년성과 탈미성년성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끊임없는 차이, 세부적인 차이를 만들어내 보다 많은 소비자들을 포섭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시장 모델에 기반한다. 소녀들의 자율성과 자유의 공간은 바로 이 속에 있다.

소녀 육체의 가시화를 중심으로 하는 소녀성의 변화는 10대 여성들이 성적 존재로 자신을 인지하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이들이 성적 존재로 존재해야 하는 장의 확장과 관련된다. 10대 여성들의 참여문화를 조직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소녀성 산업은 바로 그러한 확장에 특별히 기여하고 있다. 지금 10대 여성들의 성적 자유나 권리에 대한 주장은 소녀성 산업의 소비 자본과 ‘롤리타’적 상업문화에 전유되는 동시에 서둘러 혁명, 자유라는 이름으로 연령주의의 구속에서 벗어난 세대 간 성애의 가능성(손희정, 2017)으로까지 점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거침없고 반짝이며 자유롭고 또한 위반적으로 보이는 10대 여성들이 모니터를 떠나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혹은 여성 시민일 때도 반짝이며 자유로울 것인가?

스스로의 성적인 매력을 끌어올리고 사람들로부터 이를 통해 주목을 이끌어내는 것은 너무 쉽게 주체화의 언어로, 커리어의 언어로 정상화되고 있다. 주목을 이끌어내는 것 자체의 물신화와 그 내용의 정치성이나 권력 이론은 왜 더 이상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는가. 10대 여성들은 학교나 사회의 제도화된 훈육의 자리를 대신한 소비문화 속에서 자율적으로 성별화된 여성을 선취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자유와 자율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10대 여성들을 축하하고 놀라워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그들에게 허락된 자유의 조건이 무엇인지 질문해야만 한다.

필자 김애라씨는



10대 여성들의 디지털노동과 ‘소녀성 산업’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위원이며 서울시립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거침없는 아이, 난감한 어른』의 공저가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테크놀로지를 매개로 한 여성의 몸의 변형, 성애적 소녀성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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