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말이 없니?

박상수

있었다고 믿을 뿐인 나의 이야기, 가끔 내 말소리에 내가 놀라요 후추나무처럼, 수줍은 후추나무처럼, 철지난 바닷가에서 우둘두툴 조개껍질을 손에 쥐고 난 이불을 덮죠 아무것도 빼앗기기 싫어서 입을 지운 채 앙금을 만들어요 팥앙금, 밤앙금, 허니머스타드와 말린 과일도 넣고(편리하지만 죽어가는 농담도) 졸이고 졸여 멋진 잼을 만들어요 그런 게 내게 있다고 사람들을 속이기로 해요 미니 증기선을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고기를 못 잡아요 산호보석도 없어요 난 자주 흔들리지만, 살 수 있고, 이제는 너무나 많이 지워졌지만.

나의 고민이 누군가의 고민이길 바란다. 혼자가 아니란 느낌은 의외로 안정감을 준다. 함께 커피를 마시커나 허니 머스타드를 먹으면 좀 더 달콤한 기분이 든다. 용기가 된다. 그 반대로 시간이 흘러 혼자만 아는 이야기는 다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가 온다. 이미 사라져버린 사람까지 정말 있었나, 묻고 절망할 때도 온다. 그래서 이 시가 뼈아프게 와 닿는다.

“있었다고 믿을 뿐인 나의 이야기…. 난 자주 흔들리지만, 살 수 있고, 이제는 너무나 많이 지워졌지만.”

시의 이 메시지를 아주 쉽고 감각적인 표현들이 매력적이다. 모던한 감각이 남다른 가장 개성 있는 남성시인 중 한분이다. 요즘처럼 자기 표현하려고 애쓰고,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던 시대도 없었다. 그만큼 쓴다는 것은 자기 존재확인이며, 명민해지고 깊어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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