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대통령 되겠다”

‘파격적 공약’ 어디까지일까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

비정규직 여성 왜 이리 많나

이들의 정규직화에 관심을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좋은 일자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좋은 일자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 성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의 실천을 보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는 밤, 여성을 외교부 장관에 지명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여성 인사수석, 여성 보훈처장에 이어 반가운 소식이다. 워낙 뒤로 갔던 9년이 있다 보니 요즘은 이렇게 무엇을 접해도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다.

일반인과 거리감 없이 어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은 수많은 변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좀 씁쓸하기도 하다. 민주국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지도자의 모습에 우리가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파격적 공약’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성차별문제 해결은 법 차원의 차별 해소에서 시작해 법이 보장한 기회의 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단계 그리고 결과의 평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인다. 김대중 정권 당시 여성정책담당관제 도입, 여성부 신설, 각종 법률의 성차별 조항 개정 움직임은 비정상적․차별적인 (법적) 기회의 불평등 문제 해결의 본격적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을 포함해 환경부, 여성부, 보건복지부에 모두 4명의 여성 장관을 임명했던 노무현 정권은 “조금만 더 하면 결과의 평등이 정상이 되는 사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마저 갖게 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양성평등 실천 의지를 강력하고 뚜렷하게 천명했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양성평등을 취임사에서 언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 취임사가 갖는 선언적 의미가 무엇일까 회의를 갖게도 한다. 그러나 김·노 두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밝힌 양성평등에 대한 의지를 법적 기회의 평등 확립과 실질적 보장으로의 이행으로 실천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쫓겨난 박근혜는 양성평등 언급 없이 ‘여성의 안전’을 강조하는 취임사를 남겼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 상황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래서 이제 비정상의 정상화를 바라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릴만큼 사회적 진보에 대한 우리의 기대 수준을 확 낮춰 버렸다.

여성 장관 4명을 임명하면서 파격적 희망을 줬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양)성평등을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취임사 맥락에서 포괄적 평등을 강조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서 성평등 인식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식의 비판은 아직 할 수 없다. 오히려 여성 장관 4명을 넘어서는 파격을 기대한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 실현을 시작했던 10여 년 전 상황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뿐이라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지만,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 비정규직 비율이 다른 기관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황에 관심은 갖고 있는지 우선 알고 싶다. 여가부 확대를 공약한 대통령으로서 말이다. 더 나아가 여성 장관 몇 명보다 수많은 비정규직 여성의 삶에 대한 관심이 진정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모습일 것이다. 공공기관 상당수에서 소속 외 인력을 포함한 비정규직 비율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소속 외 인력을 제외하고도 현 근무 인력 중 비정규직 비율이 100%와 62.4%에 달한다(무기계약직을 비정규직으로 간주했을 때).

여성인권진흥원은 정규직이 한 명도 없고 양성평등교육진흥원도 직원 10명 중 6명이 비정규직이라는 의미다.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여성의 문제입니다”라는 언급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때까지 페미니스트 대통령에 대한 희망은 유보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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