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요구에 새 정부 사법수장 임명 촉각

헌재소장·대법원장·검찰총장 등 새로 임명해야

지금까지 여성 대법관 4명·헌법재판관 3명 불과

첫 사법수장 인선은 남녀동수내각 공약한

문 대통령의 의지 짚어보는 가늠자 역할

전효숙·전수안·김영란·이정미 등 물망에

 

법조권력의 핵심인 헌법재판소장·대법관·검찰총장이 공석인 가운데 첫 여성 사법기관 수장 탄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개혁 등 법조계 개혁이 시작되면서 조직이나 기득권 보호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인사보다는 다양성을 반영한 진보 인사가 임명돼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여성 중용을 수차례 공약하면서 법조계와 여성계에선 양대 사법기관 수장에 사상 최초로 여성이 임명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시급한 사법기관 인사는 헌법재판소장이다. 지난 1월 박한철 헌재소장이 퇴임하면서 100일 넘게 소장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정미 전 재판관에 이어 현재는 김이수 재판관이 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도 오는 9월이면 끝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제청하고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을 지명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임기 6개월 안에 법조 핵심기관 수장 두 명을 모두 새로 임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이미 공석인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이상훈 전 대법관 후임 자리도 시급히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천명한 가운데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휘말린 법원 역시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비판하는 판사들의 개혁 요구가 비등하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이 공공분야에 여성을 대거 기용하겠다고 공약하면서 여성 사법기관 수장이 탄생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11일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담소를 하면서 여성 중용 의지를 또 다시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나는 참여정부 때 여성 발탁에 진짜 노력 많이 했다”면서 “참여정부 때 박주현 수석, 민정수석할 때 비서관 중에서도 복무 비서관을 여성으로, 그리고 내 보좌관도 여성으로 했었다. 박근혜 정부 때보다 정무직 여성 출신이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앞서 대선 과정에서도 “참여정부는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 최초의 여성 대법관,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장 후보, 최초의 여성 총리 이렇게 여성들의 길을 넓혀 나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00여개 여성단체 앞에서 남녀동수 내각을 실현하고, 이를 위해 초대 내각에서 30%를 여성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 재직 시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함께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다. 참여정부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지명하면서 첫 여성 헌재소장이 탄생할 뻔했다. 당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임기 문제와 지명 절차 등을 이유로 야당이 반대해 결국 첫 여성 헌재소장 탄생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사법부가 발족한 1948년 이후 여성 사법기관 수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난 70년 동안 여성 헌법재판관, 대법관 7명만 나왔을 뿐이다. 지난 2003년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법관 인사를 비판하며 일어난 파동으로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이 임명되는 인사제도 개혁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해 사법시험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이 36.7%(40명)에 달하고 여성 판사 임용률이 절반을 넘어서는 등 경력과 전문성을 갖춘 여성인재도 늘어난 만큼 이번에야 말로 여성 사법기관 수장이 등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법조계와 여성계에서 뜨겁다.

대표적인 여성 후보로는 여성 대법관 1·2호인 김영란 전 대법관과 전수안 전 대법관,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 꼽힌다. 헌재소장에 지명됐던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도 유력 인사로 거명된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부산 출신으로 경기여고·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사법연수원(10기) 수료 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한 뒤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거쳤다.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4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첫 여성 대법관이다. 김 전 대법관은 임기만료로 퇴임한 이후인 2011년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발탁됐다. 국민권익위원장 재직 당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초안을 마련하면서 이 법률은 지금도 ‘김영란법’으로 불린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울산 출신으로 마산여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16기)를 수료했다. 198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후 2011년 3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 지명으로 여성 2호 헌법재판관이 됐다. 지난 3월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문’을 낭독했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부산 출신으로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8기)를 거친 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춘천지법 부장판사, 대전고법 판사 등을 지냈다. 전 전 대법관은 사회 지도층이나 전문직 범죄, 여성 인권유린 범죄에 엄격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4년 성폭력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성폭행 피해자에게 왜 상처가 생길 정도로 더 심하게 반항하지 않았는지 탓하면서 상처가 없어 성폭행 당한 게 아니었다고 본 것은 잘못이다”라며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은 전남 승주 출신으로 순천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7기) 수료 후 77년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판사로 26년간 일하고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3년 여성으로는 처음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서울지법 부장판사 시절 여성관계법 연구회장 직을 맡아 후배 여성 판사들을 이끄는 등 사법계에 성평등 관점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장에 위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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